

- 여행을 시작하며 올 한 해 휴학을 한 나에게는 여러 목표가 있었다. 자격증 취득 / 영어 공부 / 공모전 / 교양 및 운동 그리고 해외 장기 여행 이었다. 여행의 목적은 건축학에 관심이 있는 나에게 맞는 건축물 답사가 그것이었다. 여행지를 먼저 선정할 때 나에게 가장 큰 변수는 비용이었고, 시간은 널널했던지라, 내가 진정 가보고 싶었던 도시에 대한 고민을 조금이나마 했던 것 같다. 특정 건축물을 보기 위한 여행은 비용적 측면에서 어려움이 크다 생각해, 봐 왔던 이미지들과 언급이 많았던 건축물’들’, 즉 도시들에 대한 선택을 결정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나왔던 후보군들은 미국의 뉴욕/워싱턴/시카고 등, 서유럽(영국-네덜란드-독일), 서유럽(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 서유럽(영국-프랑스-네덜란드) 등이었다. 이 중 비용이 그나마 가장 저렴했던 것은 서유럽(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로 판단되어 그렇게 정하게 되었고, 또 다른 이유로는 서양 건축사에 있어 신고전주의까지의 여정에 있어서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프랑스 파리 IN, 로마 OUT으로 35박 36일을 계획하게 되었다.
- 후회와 결과론적인 긍정 하지만 항공권을 저렴한 것을 정하다 보니 어쩌다가 파리 8일, 바르셀로나 5일, 이탈리아 23일이 되어 버렸고, 프랑스와 스페인의 다른 도시들에 대한 여행 대비 이탈리아 여행이 너무 긴 것 아닌가 하는 후회가 많았었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전혀 아니었으며, 매우 깊은 여행이 되었던 것 같아 많은 재미와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또한 해외여행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지고 정보도 알고 경험도 쌓였다고 판단되어, 나중에 또 갈 유럽 여행에 대한 자신감은 배가되었고, 목적과 목표가 더욱 구체적으로 잡혔다는 점에서 좋았다. 예를 들어 다음 해외 여행은 답사와 여가로 목적을 나눈다면, 전자는 영국 런던-프랑스 파리(짧게)-네덜란드(여러 도시)-독일(여러 도시) 순으로 잡아 근현대건축 답사로 가면 되겠다고 판단되었고, 후자는 포르투갈-스페인-파리 남부 도시들 순으로 지중해 여행 겸 근현대건축 답사도 가능하다고 생각되어 재밌는 상상이 풍부해졌다.
- 그렇게 여행의 첫날, 인천국제공항에서 편도 15시간 직행 항공권을 구매했다. 15시간을 눈 뜬 채로 버티긴 힘들다고 판단되어 밤을 새고 왔다. 슬리퍼부터 목배개까지 만전의 준비는 다 했고, 그렇게 비행기에 탑승했다. 살면서 이렇게 긴 항공편은 뉴욕 말고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TWAY항공이라는 저가항공사의 파리행 취항으로 나는 저렴하게 항공권을 구매해 매우 합리적인 소비를 했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여정은 편안했고, 잠도 자고 유튜브 영상으로 미리 도시에 대한 이야깃거리들도 보고 언어도 보고 그러니 벌써 파리에 도착했다.


- 파리 샤를 드골 공항의 도착. 극적인 공간과 낯선 환경의 그 기쁨. 파리 샤를 드골 공항의 터미널까지의 이동하는 공간은 전이공간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매우 몰입되었다. 샛노란 뿜칠 페인트로 곡면 콘크리트 구조물 터널을 칠해놓아 이동하는 우리의 감각만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공항역에서 파리 도심으로 가기 위한 기차역도 신기했다. 보통 철골 구조로 대공간을 형성해 관문 같은 느낌의 철도역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콘크리트 벽돌인지 뭔지 층층히 쌓아 올린 구조물들의 병렬과 그 사이들로 들어오는 빛들로 공간을 이루었다. 여기서부터 처음 해매기 시작했던 것이, 공항 – 시내 기차편이 일반 지하철 기차 티켓하고 구분을 못해 좀 힘들었다. 여기서 RER B선 기차를 기다리던 중 옆에 중국인하고 가벼운 대화를 해보니, 그녀도 배낭여행 첫 날이라고 했다. 더군다나 우리 가방도 똑같아서 정말 웃었다.


파리의 관문: 유럽에서 가장 크다는 기차터미널, 파리 북역 파리 북역에 도착하자 나는 정말 파리에 도착했구나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 기차터미널의 투명한 유리 파사드에 비치는 파리의 오스망식 아파트 그 도시의 이미지가 보였기 때문이다. 아 내가 정말 파리에 왔구나. 설레고도 낯선 순간이었다. 파리 북역을 기준으로 북쪽은 치안이 안 좋기도 하고, 중심 역 답게 치안에도 유의해야 한다는 그 분위기를 정확히 느끼고 나는 빨리 호스텔에 체크인하러 밖으로 나왔다. 도시의 첫 인상은 예상대로 엄청 난잡했다. 자전거와 행인이 중심인 도시망을 처음 느꼈다. 특히 지나가면서 가볍게 찍은 위 사진은 나의 첫 파리 입성의 사진이어서 무언가 더 뜻 깊다. 그 순간의 경험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체크인을 하고 나는 무거웠던 짐들을 던지듯이 다 풀고 정리했다. 짐은 가볍게 들고 다니는 것이 맞았다. 샤워를 하고 이제 누워서 쉬려 했는데, 예상외로 엄청 시끄러워서 무슨 일인가 하고 봤더니, 알고보니 이 날 챔피언스리그 4강전에 파리 생재르맹하고 아스널이 맞붙는 날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도 1층 펍으로 내려가서 보기로 했는데, 결국 파리가 이겨 결승에 진출했고, 그 열기는 내가 유럽이 축구에 진심이구나를 첫날 부터 확실히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그날 밤은 잠을 잘 못 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