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

전시회를 보러 가면, 어느새 사진을 찍는데 열중해 있는 이들이 너무 많았다. 그들은 멈춰 있었고, 그들은 작품이 아닌 그들의 화면을 보고 있었고, 그들의 정적인 행동은 전혀 살아있음을 느끼지 못했다. 근데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모르게 사진이 이쁘게 나올 거 같은 구도를 잡고, 이는 곧 인스타에 올릴 목적의 사진들을 추구하고 있는 …

결국 허무할 뿐이었다. 나는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나는 왜 이 글을 쓰고 있지? 그것도 아니다. 진정한 행위. 나의 의지로 서술되는 것이 아닌 이 무의미한.

나는 다시 생각한다. 내가 재밌게 본 부분만 촬영하고, 기념 사진은 필요 없다. 카메라를 통해선 나의 지배적인 욕망만 생성될 뿐이다. 사진을 통해 기념한다. 이 곳에 내가 왔다는 것이 아닌, 나의 기억을 기념한다. 내가 이런 활동을 했다고. 결국 나에게 필요한 것은 사진의 멋드러짐이 아닌, 사진 한 장 한 장에 대한 캡션 이었다. 짧아도 상관 없다. 나의 반응 하나 하나를 살피고 내가 어루만지는 것. 그것이 나를 인지하는 행위다.

과거에 사울 레이터라는 사진작가의 전시회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그의 특징은 황금만능주의, 팍스 아메리카가 자명하다고 누구나 느낄 1960년대, 미국에서 그는 루이스 칸처럼, 구석과 그 기단부, 그 사소한 일상이라고 느끼는 부분을 촬영했었다. 그의 작품은 현대에 와서, 그의 일상은 비일상의 시기처럼 ‘예술’로 느껴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전시가 이뤄지는 곳도, 결국 무수한 셔터 소리에 지배당했다. 본인들이 오브제가 되어, 스틸샷을 찍고,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옳은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그래서 얻은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남았던 기억은 결국 그 때 누구하고, 언제, 어느 날씨에, 어느 부분을 재밌게 봤는지 이기 때문이다.

Saul Leiter
Mondrian Worker, ca. 1954

Chromogenic print, printed later
11 × 13 4/5 in | 28 × 35 cm

현대미술. 추상 표현 회화의 지평을 연 잭슨 폴록은, 작업 과정을 통해 미술계에 이름을 알렸다. 현대 건축에서 상징과 권위적 건축은 옛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행위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주체만 달라졌지, 인간 세상사는 달라지지 않았다. 저 몬드리안의 아름다운 질서가 보이기 이전에, 그 순간을 누군가는 담았기에, 우리는 가볍게나마 다면적으로 보게 된다. 인스타그램. 인스타그램은 그렇게 매우 무겁게 다가온다. 일기장이 아니다. 무언가, 나를 상품으로 증명하는 자리인 듯하게, 혼자 의기소침해지는, 무력함을 준다. 잘 활용하면 그만큼 좋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가슴이 아픈 지금으로썬 멀리하는 것이 맞는 듯 싶다.

게시자: Phronesis.ysb

건축과 도시, 그리고 삶

댓글 남기기

워드프레스닷컴으로 이처럼 사이트 디자인
시작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