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4. 타임머신이 있다 한들..

그동안 수없이 많은 매체와 대화 속에서 타임머신을 소재로 한 경우들이 있었다. 최근까지도 대화 중에서는 과거를 그리워하거나 후회하는 이들의 대화에서 우스갯소리로 소비되기도 한다. 그렇게 가끔 타임머신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보는 이들도 있을 터, 나도 동일하게 어제 게으르게 보낸 내 자신이 후회스러워 하루 전으로 다시 되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어쩌면 타임머신이 있다 한들 직관적 판단이 들어 이렇게 노트북을 키고 짧은 글을 작성해본다.

시간은 인류의 역사에서 수치화 되고 만물의 척도인 듯 우리 삶의 기준을 제시했었다. 매일 뜨고 지는 해를 바라보며, 점점 달라지는 계절의 분위기를 느끼며, 그리고 그 계절의 반복을 확인하며, 시간은 그렇게 추상적인 것에서 근대를 거쳐 구체화되고, 현대 사회에 와서는 1분 1초가 중요해졌는데, 시간은 과학에서부터 그 본질이 드러나듯 싶더니 이제는 철학과 나의 생각까지 개념이 재 정립되게 되었다.

루트비히 볼츠만이 그 개념적 접근의 시작을 다른 부분에서 알렸다. 열역학 제 2법칙을 통해 그는 엔트로피의 개념을 언급했고, 그 엔트로피의 증가는 ‘시간’이 존재해서는 전혀 상관 없고, 그저 공간에 따른 수많은 분산들의 경우들 중 확률적으로 높은 경우로 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말은 즉슨 공간에서의 확률적 변화의 방향이 곧 시간의 방향이고, 그 특정 방향으로 가는 확률이 거의 100%이므로 우리는 시간의 방향 또한 한 방향인 개념이라고 판단을 했던 것이다. 이 공간의 변화에 집중해보면, 그 순간 타임머신에 대한 구체적 접근도 가능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과거’로 돌아갔다고 판단을 할 만한 정도의 엔트로피 감소의 경우를 이뤄낸다면, 우리는 과거로 간 것이다. 상상은 지금부터 시작한다.

“물리학은 사물이 ‘시간 속에서’ 어떻게 진화하는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모든 사물이 각자의 시간 속에서 어떻게 진화하는지, ‘시간들’이 서로 어떻게 다르게 진화하는지를 설명한다. 즉, 시간은 첫 번째 층인 유일함을 상실했다. 모든 장소의 시간은 다른 리듬과 속도를 갖는다. 다양한 리듬의 춤 속에서 세계의 사건들이 얽힌다.”-카를로 로벨리,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24p

우리가 과거로 왔다고 치자. 그런데 과거로 왔다는 것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시계를 보고? 그것은 반복되는 것이므로, 자연에서 돌이킬 수 없는 경우를 보자면, 과거로 돌아가기 전의 쏟아진 물컵의 상태를 확인해 보면 된다. 일단 물컵이 쏟아지기 전으로 되돌아 와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우리는 과거로 왔다고 확신을 하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과거의 시공간에서 활동을 하고, 예상되는 흐름으로 세상이 흘러갈 것이다. 특히 자연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당신이 주식 투자를 하고 있었고, 미래에서 특정 주식의 최고가를 찍은 금액과 시간을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때가 올 때까지 전 재산을 넣고 기다리고 있자.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주식이 상승을 하기는 하는데, 최고가를 찍지도 못하고 전혀 다른 흐름으로 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로 돌아온 것이 맞기는 한 것일까? 맞다. 그런데, 모든 세계가 확률로 존재한다고 위의 말을 떠올려보면, 사실 상 시간여행의 이상은 좌절되고 만다.

이 주식 사건에 대한 분석은 나비효과로도 비유될 수 있다. 기술의 발전은 인간 간의 교류를 획기적으로 증대시켜왔다. 그만큼 사건과 변화도 빈번하게 발생되고, 또 그 체감 강도도 높아진다. 어느 순간 역사를 연대기로 배우는 것처럼 시간이라는 척도로 세상을 실시간으로 정리하기란 힘들어진다. 그것은 알아서 데이터들로 입력이 되고 있지만, 우리는 점차 시간에서 의존성을 낮춰갈 수밖에 없게 되고, 변화에 집중하는 흐름이 나타나게 된다. 합리적인 판단일 것이다. 확률로 존재하는 경우들을 나열하고, 종합적 확률이 높은 곳을 선택하는 것이 -진리는 없다는 철학/과학적 담론을 통해 학습된 우리는- 최선의 경우라고 볼 수 있다. 돌고 도는 하루 속에서, 우리는 확률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하자, 세계에 대한 이해는 더욱 가능해졌다. 그렇다 우주는 단순히 확률로 존재할 뿐이다. 그 말은 한 방향으로 흐르는 ‘시간’이라는 개념은 애초부터 관념이고 인간 스케일에 맞춰진 하나의 도구였을 뿐이다. 그리고 과거는 ‘시간’에 따라 고정된 상황이 아닌, 단지 확률적으로 ‘내 기억에 존재’했을 뿐이고, 동시에 미래도 ‘내 기억으로 종합’했을 뿐이다. 우리 인류는 적응을 생존 기제로 지구에서 존속하고 있다. 적응을 하려면 우리는 미래를 예측해야 했다. 그 예측 가능성의 도구로 우리는 ‘시간’이라는 강력한 도구를 개발해 그 척도로 분석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당신이 과거로 돌아가서 자연이 아닌 대상과의 사건을 그 이전처럼 똑같이 흐르게 만들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기억하던 과거는 단순히 자신이 해석한 일종의 ‘사진’들이다. 그렇게 과거에 대한 데이터들 만을 들고 갔다가는 그저 상상으로 남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이미 답은 나와 있다. 인간 간 동기화가 빠르게 일어나는 세상의 변화에 더 잘 대응하기 위해서 우리는 사건, 관계 그리고 프로그램에 집중하고 있다. 우리가 배우던 학문들은 사건들을 암기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미래를 예측하고 만들어나가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깨끗한 감광판으로 세상에 반응하고 이를 조합하고 공유하는 방법론들을 준비해야 한다. 이는 과거로 가기 위한 준비로만 한정되는 것이 아닌, 그저 당신의 삶의 태도로 지정해야 할 뿐이다.

동시에 타임머신에 대한 가능성은 닫힌다. 당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과거로 돌린다는 것은 아직 아는 것이 없는 나에게는 망상으로 들린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모든 것에 대응되는 자연이라는 세계에서 우리를 독립적으로 고정시킬 수 있는가? 우리의 지각을 고정시킬 수 있다면, 나는 타임머신을 개발한 것이다. 당신 몸을 고정하고, 시선도 고정, 그리고 변화란 감지하지도 못하는 무색무취의 공간에 격리시키고 1년 후에 사회를 보여준다면, 당신은 시간 여행을 한 것이 아닌가? 반론에 대한 이유를 예상해보면, 시간 여행의 조건이 당신의 몸은 ‘늙지’ 않아야 한다고 본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신의 몸을 ‘늙지’ 않게 기술적으로 해결한다면? 동시에 새로운 반론에 대한 이유를 보면, 당신이 체감하던 그 긴 시간을 보면 시간 도약의 개념인 시간 여행에 맞지 않는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그 긴 시간동안의 기억’을 지워버린다면? 그렇다. 그 순간 당신은 시간 여행을 했다고 판단할 것이다. 이는 미래로 갔다고 판단을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타임머신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다. 미래로 갔다고 어떻게 판단을 하는가? 다른 이를 붙잡아 단순히 물어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그 즉슨, 미래와 과거로 갔다고 파악하는 방법은 세상과의 동기화를 이뤄내야 하는 것이고, 동시에 과거에 대한 가능성은 다시 닫힌다.

그 어떤 물리학 방정식도 과거와 미래를 구분하지 않는다. 우리의 세계에 대한 시간을 통한 해석은 결국 배제로서 작용하고, 그 시간 위에 겹겹이 쌓인 관념들은 우리 인간 간의 소통과 교류에 대한 단절을 생성하기도 한다. 시간은 애초부터 수학과 과학에서는 맞지 않는 경우들이 많이 발생해왔다. 당장 1초에 대한 정의를 보더라도, 그 정의된 ‘시간’은 결국 인간이 만들어 낸 하나의 ‘제도’일 것이다. 이는 ‘화폐’도 마찬가지이다. 시간과 화폐의 공통점은 사람 간의 약속 된 수단으로서 작용할 뿐이다. 경제의 불안정성이 증가하는 듯한 분위기처럼, 우리는 언젠가 새로운 약속 된 수단을 찾아야 한다. 그 중 인류와 함께 했던 ‘시간’과 ‘화폐’는 사라지기란 상상하기도 쉽지 않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것 외에도 다양한 도구적 수단을 배우고, 소통 기제로 작용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적응이고 생존이고 번영이다. 미래는 동시에 예측 가능한, 내가 하는 것이 미래가 된다는, 행동과 예측이 일치되는 주체적 삶이라고 느끼게 될 것이다.

게시자: Phronesis.ysb

건축과 도시, 그리고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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