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연결짓기

  1. “진화를 통해 적응을 잘 하는 개체만이 지속가능성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적응은 생존을 위한 적응이지, 행복을 위한 적응은 아니다. 그리고 행복은 외부에 대한 반응보다도 내부에서 일어나는 반응일 뿐이다. … 생화학적 조건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행복이다.”_호모 데우스, 유발 하라리

그렇게 우리는 생존과 행복을 동시에 달성하는 적응을 이뤄내야 한다. 여기서 건축은 건강한 적응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건축물은 인간에게 생존의 적응과 행복의 적응을 동시에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생존과 행복은 중첩된다. ‘행복의 건축’의 저자 알랭 드 보통은 건축이 행복의 가능성을 전한다고 보고 있으며, 그 의미는 이상에 따른 장소화에 따른 행복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1-2. 유발 하라리는 동시에 행복을 위해선 그 생화학적 기제, 프로그램을 조직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조직에 있어서 생존과는 괴리되는 경우가 몇몇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마약이고, 몇몇 이데올로기들이었다. 생화학적인 접근으로 보면, 엔도르핀과 모르핀은 구조에서 비슷하고, 그 모르핀이 변형된 것이 마약인 것이다. 넓게 보면 엔드로핀도 엄청 강력한 마약이기도 하다. 행복은 결국 호르몬적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건축이 생화학적인 기제를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다. 당장 무엇이 있는가? 안락함? 집중이 잘 되는 공간? 개인적인 공간? 보호의 의미로만 작용할 때 우리에게 행복감을 준다. 물질적으로 공간은 이제 생화학적 기제에 영향을 많이 주기는 커녕 프로그램이 중요하게 된 것이다. 예를 들면 전자기기가 없는 방으로 꾸며 독서와 수면에 집중할 수 있는 그런 공간 말이다. 전기를 공급 못하는 방을 만들면 어떨까? 재밌는 상상이다. 이는 마당으로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는 점에서, 사실 상 실내건축은 그저 행복에 영향을 많이 미치기란 미학적 조건 외에는 없는 듯 하다.

인테리어, 가구 놓기, 수납 정리 등을 통해, 우리는 질서된 공간을 보고 만족감을 느낀다. 이 행복은 우리가 이 공간에 대한 불확실성을 없앴다는 점에서 안정감을 준다. 건축가는 공간을 설계할 때 이렇게 가구의 배치를 고려해야 하는, 청소 및 인간 활동에 집중을 해야하는 역할도 있다.

2. “역사 지식의 역설이다. 행동을 바꾸지 못하는 지식은 무용지물이다. 하지만 행동을 바꾼 지식도 곧 용도 폐기된다. 우리가 데이터를 더 많이 보유할수록, 역사를 더 잘 이해할수록 역사는 그 경로를 빠르게 변경하고, 우리의 지식은 더 빨리 낡은 것이 된다.”_호모 데우스, 유발 하라리

우리 한국은 이제 축소 사회로 접어든다. 공간의 변화도 그만큼 가속화된다. 벽 중심의 건축에서 기둥 중심의 건축이 중시되고, 자유로운 변화가 가능한 평면이 요구된다. 그러나 비용을 보면 만만치 않다. 그 공간의 변경 비용은 인테리어 비용으로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축소 사회에 우리가 대응해야 할 것은, 기존 공간을 사유하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닌, 공유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이는 월세와 전세를 이용하는 이들에게는 사실 상 공유를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나 거기서 더 나아가서, 자본을 넘어 신뢰로 형성된 공간의 공유를 형성하는 것이다. 실제로 남는 방들을 게스트룸으로 하는 것을 보면, 결국 공간의 구분은 자본에 묶이는 것이 아니라 신뢰로 묶이는 것이다.

  1. 건물과 공유 주거제 -> 방을 나눠 가지기. -> 쉐어 하우스의 집단화. -> 기존 숙박 시설에 대한 다른 접근 -> 기존 숙박 시설을 주거 시설로 변경 및 공간 구조 변화 설계. 게스트 하우스.

게시자: Phronesis.ysb

건축과 도시, 그리고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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