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션-생명을 위한 인류애, 그리고 과학기술

때는 2015년, 중학생이던 나는 영화 ‘마션’을 보고 맷 데이먼과 리들리 스콧, 그리고 화성에 대한 정보를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작년에 개봉했던 2014년 작품 인터스텔라와 함께 나의 학문에 관한 관심사는 물리학으로, 천체 물리학으로 향했다.(그 전 관심사는 오로지 농구였다.) 도서관에 무작정 찾아가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지구를 표현한 칼 세이건의 저서 ‘코스모스’부터 그 도서의 후속 다큐멘터리의 진행을 맡았던 닐 디그래스 타이슨의 ‘스페이스 크로니클’까지, 이것저것… 중학교 3학년이 될 무렵 선행을 한다고 어머니한테 얘기해서 고등학교 1학년 통합과학을 펼쳐보았지만 결국 첫 단원인 ‘우주의 역사’에만 관심을 가지고 끝났던 나의 열정은 이 문단만큼이나 짧지만, 그때 당시의 내가 나에게 설정한 한계는 없었던 것 같다. 무지에서 오는 불안으로 가득 찬 오늘이 아닌 그 당시에는 무지 그 자체가 행복인 듯 했다.

적어보니 재밌었던 일화가 더 있는데, 내가 얼마나 의욕만이 앞서 있었나면, 어느 날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를 읽고 ‘파인만의 빨간 책’이라는 그의 물리학 강의를 읽고 싶어 서점에 갔다가, 그 내용을 보자마자 뭔 말인지 모르겠어서 멍 때리며 가격 태그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어떤 어른이 옆에 오시더니 학생인 것 같은데 이런 도서를 읽는다고 놀라시는 것이다. 곧이어 나의 무지를 아신 그 분은 이 도서는 아직 이해하기 이르다고 하시면서 나에게 ‘누구나 물리’라는 책을 추천해서 그걸 재밌게 읽은 기억이 든다.

그렇게 나는 천체물리학에 관심을 갖다가, 우주 개발의 역사로 초점이 옮겨지더니, 1950~60 년대 달 탐사 개발 경쟁 일화를 보고 정말 흥미로웠던 것 같다. 위 사진이 중학교 3학년 때 무작정 따라 그렸던 그림이다. 마구 상상을 펼치면서, 드디어 작년 11월에 발사된 SLS 로켓에 대한 계획도 검색해 가며 그랬던 시절. 다시 돌아간다면, 기초 교양 과학부터 차근차근 공부를 했었어야 했다.

비록 화성 유인 탐사에 관련된 SLS은 아니지만… 이제 사설은 각설하고 글의 주제로 돌아오자. 아무튼 이처럼 마션의 영화를 본 나의 지적 흥분은 잊을 수가 없었고, 최근에 시간을 빌려 다시 감상을 했다. 그리고 기록을 하고자, 여기에 나의 짧은 감상문을 올리고자 한다.

마션의 줄거리는 화성에서 조난 당한 와트니(맷 데이먼)가 자급자족하면서 생존을 이어가다가 구출될 가능성을 찾아 나서는 내용이다. 생존이라는 키워드를 아무리 강조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이 영화의 핵심 주제는 생명에 대한 집단 지성, 그리고 과학적 문제 해결의 중요성, 그리고 긍정하는 태도 등이다. 구지 한 단어로 더 요약하면 ‘생명’에 대한 내용이다. 스포일러가 이제 있을 예정이지만, 이 영화를 못 본 사람이 있을 확률은 나의 이 글을 정독하는 사람이 있을 확률이지 않을까 싶다.

어릴 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어떤 설정이어도 재밌었던, 완전한 영화였던지라, 딱히 생각을 더 해 볼 점은 없었다. 구지 그때의 감상을 말한다면 ‘찐 감자나 해먹고 싶다?’, ‘David Bowie의 ‘starman’의 노래가 좋다?’ 등이다. 그러나 최근에 봤을 때는 이 생각이 결론적으로 든다.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몇 천억을 쓰는 것일까?’ 동시에 맷 데이먼의 출연작들을 본 나로써는, ‘그동안의 모든 맷 데이먼에게 한 나라의 예산이 들어갔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판’이라는 웃긴 생각도 든다. (다들 알다시피 연관되어 있는 작품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 ‘마션’, ‘본 시리즈’ 등)

영화 외적인 요소는 자제하고, 그만큼 ‘마션’에서 생명에 대한 강조, 그리고 그 구출 과정에서 드러나는 문제 해결 논리의 본질은 생명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동시에 이 영화의 마지막에서 맷 데이먼이 학생들에게 말했던 삶의 태도인 다음 대사가 감명 깊었다.

“우주에선 뜻대로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어느 순간 모든 게 틀어지고 ‘이제 끝이구나’하는 순간이 올 거야. ‘이렇게 끝나는구나.’ 포기하고 죽을 게 아니라면 살려고 노력해야 하지.그게 전부다. 무조건 시작하는 거지.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고 다음 문제를 해결하고 그 다음 문제도… 그러다 보면 살아서 돌아오게 된다.”_ 작 중에서, 마크 와트니

그는 영화 초반부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며 기록물을 남기려고 하지만, 생존의 의지를 다잡게 되는 그 전환점이 나온다. 그리고 그는 구출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추상적인 계획을 상상하기보다 눈 앞에 닥쳐 있는 문제들을 하나 씩 풀어 나간다. 그는 먼저 식량을 계산해서 생존 일수와 아레스-V 계획을 비교해 보고, 식량 부족을 확신한 그는 감자를 재배하기로 하고, 그 감자의 재배에 인분과 물을 생산하기로 하고, 그렇게 그는 주어진 조건에서 문제를 비교적 깔끔하게 처리한다. 물론 영화이므로 그 외에도 엄청난 시행착오가 있었음을 감독은 수소-산소 최초 결합 후 폭발 사고를 통해 고난을 압축시켜 놓는다. 그 후에도 여러 고난이 있지만, 그의 태도에 몰입을 이미 한 관객들은 점차 그의 미래에 대한 실존적 불안은 잠시 치워두고, 영화에서 응원하는 전 세계인들처럼 기대를 하게 만든다. 그 긍정적 에너지는 그의 태도, 그리고 그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생성된다.

지구에서는 나사 국장의 이야기도 현실적으로 합리적이었다. 비용적인 측면에서는 그렇지만, 그 모든 변수를 제치고 집중되는 단 하나는 바로 그의 생명이고, ‘그의’에서는 와트니와의 믿음으로 이루어진 관계, 그리고 ‘생명’은 인본주의에서의 최상의 가치이므로, 신뢰와 소중함으로 가득찬, 상당히 감성적인 영화임을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소설에서는 과학적인 부분에서 워낙 더 지엽적으로 서술을 해 놓았다는 점에서, 그 스탠스를 그대로 끌고 나갔다가는 감독이 제시하는 핵심 주제 키워드인 ‘생명’이 ‘과학기술’의 강조로 자칫 단순하지는 않은 분위기를 띠는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렇게 화성에서 생존해 나가는 와트니 혼자의 서사 구조와 지구에서의 집단 지성을 통해 하나의 개체로 움직이는 듯한 단일 서사 구조를 통해 화성-지구 간의 시공간적 차이를 극복하고 동기화를 헤르메스호가 화성에 도달하는 그 순간부터 이루어내고 구출까지 성공하는, 엄청난 긴장의 집중과 동시에 해소를 이뤄내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서사와 ‘생명’이라는 주제를 통해 관객에게 엄청난 몰입 후 각인을 시키는 듯 했다.

통신의 단절은 정보화의 시대에 산다고 표현되는 우리에게 극심한 불안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리고 동시에 통신의 연결은 당연한 흐름으로 느끼곤 한다. 그렇게 화성에 고립된 그는 통신이 되기 전까지는 그의 이야기와 지구에서의 이야기가 독립적으로 전개되는 듯 하지만, 통신이 된 후 영화에서 길게 표현되는 그 소통 과정을 통해 우리의 심리적 거리가 가까워졌다. 과학기술 면에서 영화에서 중요하게 표현된 것은 통신기술이고, 그 통신기술은 물리적 환경 말고도 정치적 입장으로도 단절이 될 수 있음을, 즉 인간의 태도에 대한 중요성을 나사 국장을 통해 보여준다. 자칫 잘못하면 선과 악의 대립 구도로 이어질 수 있는 바를, 감독은 그들의 논리적인 대화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생각을 같이 하게 한다. 한 조직에서 머리에 있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타인들과는 다른 논리 접근을 이용해야 한다. 그 외에 사람들은 ‘생명’을 최종 목적으로 그 수단으로 ‘과학 기술’에 접목한 논리를 전개해 나간다. 하지만 선과 악의 대립 구도가 모호해지다 못해 하나로 합쳐지는 것은 결국 양 쪽의 결정은 결국 비-과학적일 수 있는 감성적 면인 ‘생명의 가치’에 절대적으로 합의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션에서의 영화에서 나오는 과학기술들은 인간을 위한 기술이라는 직/간접적 강조들이 많이 나온다. 이 영화의 흥행에 기반이 된 것도, ‘우주’라는 새로운 감각의 장이라는 점 말고도 대중에게 이해가 되는, 이 말은 즉 현실에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과학기술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본다. 막상 들으면 당연한, 생각해 볼만한 방법이지만, 영화에서 그 생각의 순간은 직관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고 오해하면 안 될 것이, 현실에서 도움 되지 않는 과학 기술이 기술의 정의에 어울리지는 않는지라, 더 자세히 서술하자면, 우리의 생활에 익숙하게 들어와 있는 과학 기술들을 현실에서 도움이 되는 기술들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우리의 이해 대상 범위에 있는 기술들을 이용해서 그럴싸한 서사를 구축해 나가는 것, 이래서 마션을 보고 난 뒤의 우리의 상상은 더 구체화되는 것이라고 본다. 만일 양자 얽힘을 통한 양자 순간이동에 대한 기술을 다루는 내용이 나온다면, 우리는 그 서사 구조를 예술품으로 볼 것인가, 아님 건축물로 볼 것인가? 우주라는 배경이 나오는 인터스텔라라는 영화와 비교를 하자면, 그 영화는 중반부에 들어서면서 그 순간 그 영화는 쉽게 이해될 수 없는 서사를 보여줘 숭고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환상적인 영화로 인식된다. 이해보다 선행되는 것이 있다. 마션은 그와는 다르게 현실적인 영화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느낀다.

정리하자면, ‘생명’이라는 인본주의적 가치관과 ‘기술’이라는 인류 문명사의 핵심 역할을 ‘화성’에서의 생존을 통해 극적으로 강조하는 화성의 붉은 토양과 같이 따듯한 영화인 것이다. 영화 후반부에서 와트니가 말한 이 글의 위의 대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렇게 그의 태도는 곧 이 작품의 주제가 된다. 물론 영화에서의 현실적인 태도와 현실적인 조건이 ‘현실’과는 괴리되어 움직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판단되지만, 이 또한 어떠한가? 영화는 그렇게 기적을 논하고 그 2시간 넘짓의 시간동안 관객들에게 몰입을 선사한다. 마션에서의 기적은 그렇게 생명의 구출이라는 최종 목적 말고도 많은 해결될 변수들이 아레스-V 로켓의 발사 장면과 함께 끝나면서 보인다.

영화에 대한 추상적이기도 한 감상평은 여기까지 하지만, 이제는 영화 외적인 요소,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현재 시점에서의 외적인 요소, 실제 요소에 대입을 해 보며 영화와 일상의 동기화를 이뤄본다. 가장 많이 생각이 나는 지점은 미국과 중국의 우주개발에 대한 경쟁적 관계, 그 외에도 갈등이 많아지는 듯한 정치적인 국면을 느끼게 된다. 최근이 아닐 수도 있지만, 중국의 정찰 풍선이 미국에 발견된 일이 있었다. 중국의 현 기술력으로 정찰 풍선을 보냈다는 것은, 사실 상 순수한 정치적 목적만이 있는, 도발로 간주될 만한 확률도 높다. 항공우주에 대한 중국과 미국과의 갈등은 우주쓰레기부터 우주정거장, 달 탐사, 화성 탐사 등 신-냉전이라는 비유가 걸맞게 우주 개발 경쟁에서 소련 때 못지않게 치열한 듯 하다. 트럼프 행정부 때 계획되고 실제로 실행 중인 2024년 달 유인 착륙 계획인 아르테미스 계획은 대중에 대한 찬반이 거세다. 특히 예산 문제에서 정치적 문제만이 거론될 사항은 아닌 듯 하다. 하지만 타국민의 입장에서 내 생애 달 유인 탐사를 실시간으로 다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설레는 건 매한가지이다. 영화 마션에서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배경은 사실 상 중국의 도움이었다. 영화에서 나오는 중국 측 결정권자의 대사와 행동으로 보는 데 정치적인 의도는 미미했던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지금에 그 태도를 기대하기란 생각조차 들지 않을 만큼, 이는 판단을 내려주는 인공지능에게도 정답은 없다고 반박이 될 상황인 것이다. 기술적 문제는 기술로 해결 가능하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중국과 미국과의 문제들 중에는 순수하게 기술적 문제가 아닌 것이 있다고 -누구나- 알 것이다.

돌고 도는 요지가 없는 나의 글 속에서, 결국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영화 마션에서 나온 것처럼, 우리는 힘을 모아야 하고, 이는 큰 사건으로, 인류 역사의 대부분은 자연재해, 인재 등 생명을 앗아가는 최악의 상황에서 패러다임이 변경되었지만, 이제 우리는 차악의 패러다임부터라도 최선의 패러다임으로 행동을 해야 한다. 그 행동에 대한 태도는 다시 마션에서의 주인공이 보여준다. 나는 지금 그 태도가 필요하다. 이 글처럼 나의 생각이 확장된 것은 과하고, 나는 눈 앞에 있는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영화에서 그는 600일 남짓을 반복했다. 그 반복의 원동력은 생존에의 의지고, 그 생존의 목적은 믿음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렇게 영화 마션은 중학생이던 나를 기억하게 해 주었고, 그 당시에는 환상에만 있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이상은 품되 환상으로 넘어가지 않기. 그러기 위해서는 불안의 영역이 가리키는 곳을 탐구하고, 직관적 경계를 설정, 그리고 계획을 설정함과 동시에 눈 앞에 있는 과제들을 해결하는 것. 이를 반복하고 반복하는 것. 단순하다.

게시자: Phronesis.ysb

건축과 도시, 그리고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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