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제/저자사항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 지은이: 진중권
진중권[1963-]
판사항2판
발행사항서울 : Humanist(휴머니스트출판그룹), 2021
형태사항349 p. : 삽화(일부천연색) ; 22 cm
표준번호/부호ISBN 9791160806236 03600: ₩23000
분류기호한국십진분류법-> 609.2 듀이십진분류법-> 709.4
주제명모더니즘[modernism] 서양 미술사[西洋美術史]
지은이의 말 = 4
들어가기 : 후기 모더니즘과 네오 아방가르드 = 14
아방가르드에서 형식주의로 = 17
냉전의 역설 = 19
비평의 시대 = 21
아방가르드와 모더니즘 = 23
미술과 사물성 = 26
평판화면 = 29
모더니즘의 종언 = 31
네오 아방가르드 = 33
재현의 복귀 = 35
1 폴록 : 캔버스 안의 검투사 = 38
잭 더 드리퍼 = 41
“혼돈은 무슨 빌어먹을” = 44
추상표현주의 = 46
형식주의 비평 = 48
‘액션 페인팅’ = 51
구상으로 회귀 = 55
상징에서 지표로 = 58
폴록 그 이후 = 59
2 앵포르멜 : 무정형한 물질의 충동 = 62
점령의 트라우마 = 65
회화의 전환 = 67
형태에서 물질로 = 71
물질의 시학 = 73
기저 유물론 = 76
거름자리 위의 꽃잎 = 78
형태를 향하여 = 80
3 색면추상 : 네가 누구 앞에 서 있는지 알라 = 82
새로운 평면성 = 85
형식이 아니라 주제 = 87
무로부터의 창조 = 88
숭고는 지금 = 91
그것은 살아 숨 쉰다 = 93
열광의 감정 = 96
4 탈회화적 추상 : 뜨거운 추상에서 차가운 추상으로 = 100
두 개의 대안 = 103
회화 이후의 추상 = 105
연속과 단절 = 108
부드러움에서 딱딱함을 = 109
하드에지와 색면추상 = 111
미니멀리즘과 팝아트 = 114
5 미니멀리즘 : 네가 보는 것은 네가 보는 것이다 = 118
환영과의 고투 = 121
하나의 유일한 사물 = 123
반관계주의 미니멀리즘 = 125
현상학적 미니멀리즘 = 128
유물론적 미니멀리즘 = 133
개념적 미니멀리즘 = 135
사물성과 연극성 = 139
미니멀리즘 이후 = 142
6 개념미술 : 육체를 벗어버린 예술 = 144
예술의 종말론 = 147
오브제에서 개념으로 = 149
개념미술의 전략들 = 154
철학 이후의 예술 = 159
언제 예술인가? = 164
7 팝아트 : 사진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 168
카운터 아방가르드 = 171
브리티시 팝 = 173
프로토 팝 = 177
평판화면 = 179
핸드메이드와 레디메이드 = 182
기계와 공장 = 186
모던에서 포스트모던으로 = 189
지시와 허상 = 190
실재의 귀환 = 194
8 상황주의 인터내셔널 : 스펙터클에 맞선 전사들 = 196
팝아트와 상황주의 = 199
스펙터클의 사회 = 200
문자주의와 상상주의 = 202
예술의 폐지와 실현 = 208
상황주의의 전략들 = 209
매체의 상황주의적 사용 = 213
전환과 회복 = 216
9 해프닝 : 액션 콜라주에서 해프닝으로 = 218
폴록의 유산 = 221
회화의 파괴 = 223
연극적 전회 = 227
콜라주에서 해프닝으로 = 229
열여덟 개의 해프닝 = 232
포스트모던 아방가르드 = 235
10 플럭서스 : 정신병자들이 탈출했다 = 238
해프닝과 플럭서스 = 243
정신병자들이 탈출했다 = 247
다다와 레프 = 252
인터미디어 = 255
11 게르하르트 리히터 : 리히터의 ‘흐리기’ = 260
카멜레온 = 263
지본주의 리얼리즘 = 266
사진과 회화 = 269
리히터의 블러 = 272
푼크툼 = 275
숭고의 부정적 묘사 = 279
포스트모던 = 280
12 신표현주의 : 새로운 야만인들 = 282
새로운 야만인들 = 285
민족의 정체성과 주체성 = 288
스스로 부과한 억압 장치 = 291
독일 카페 = 295
신표현주의 논쟁 = 301
나가기 : 후기 모던이냐 포스트모던이냐 = 304
연속이냐 단절이냐 = 307
‘확장된 장’으로서 포스트모던 = 309
‘연극성’으로서 포스트모던 = 315
‘알레고리 충동’으로서 포스트모던 = 322
타자의 담론 = 325
미주 = 328
아방가르드에서 형식주의로 = 17
17
이 과정(팍스 아메리카나)에서 생긴 가장 중요한 변화는 예술의 탈정치화다. 전전의 아방가르드는 혁명운동과 연대했다. 하지만 미국의 현대미술은 “1930년대에 횡행하던 이전까지의 좌익 선동에 대한 지지를 포기하고, 영원한 인간적 자유의 챔피언으로 자기 자신을 선동했다.” 예술이 공개적인 사회적 표현을 삼가고, 개인의 자유를 표방하게 된 것이다.
18
모더니즘 운동의 주도자들은 대부분 정치적 좌익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적인 미국 사회에 모더니즘을 소개할 때, 뉴욕 현대미술관 관장 알프레드 바는 이 새로운 미술이 정치적으로 전혀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을 강조해야 했다. 그 결과 현대미술이 ‘아방가르드’로서 갖는 정치적 급진성을 희석시키고, 그것을 오로지 ‘형식의 혁신’으로 규정한 탈정치적 경향이 전면화하게 된 것이다.
18
1940~1950년대 미국의 화가들은 아직 유럽 대륙의 정신적 영향 아래 있었기에 프랑스 실존주의자들의 불안과 공포에 정서적으로 공감했다. 하지만 개인적 자유를 늘 정치적 자유와 연관시키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와 달리, 미국 화가들의 실존주의는 철저히 개인주의적인 것이었다.
비평의 시대 = 21
21
전쟁 전의 모더니즘이 ‘선언문’의 시대였다면, 전쟁 후의 네오 모더니즘은 ‘비평’의 시대였다.
<아방가르드와 키치> 그린버그의 에세이.
22
당시 미국 미술계의 맥락에서 그린버그가 말하는 ‘키치’란 미국 미술을 지배하던 아카데미 예술과, 1930년대 이후 미국 공산당의 지도 아래 있었던 사회주의 리얼리즘 예술을 가리킬 것이다.
아방가르드와 모더니즘 = 23
23
그린버그에게 모더니즘은 더 이상 과거와의 단절이 아니라, 마네와 인상주의에서 출발하여 세잔과 입체주의를 거쳐 추상표현주의에 이르는 연속적 운동일 뿐이다.
그린버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현대미술에 내재한 반미학의 충동은 결국 발현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1950년대 말에 미국의 추상운동은 그 정점에 도달한 후, 그린버그의 형식주의 비평이 허용할 수 있는 한계 너머로 발전한다. 그린버그는 끝까지 회화가 회화이기를 원했다. 즉 회화가 회화이라면, 비록 원근법적 가상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미적 가상으로 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폴록 이후에 미국의 회화는 환영주의를 파괴하고 순수성과 평면성을 향하는 미적 가상의 영역을 벗어나 아예 사물의 영역으로 진입한다. 환영주의를 완전히 떨쳐버리려면, 회화가 미적 가상이기를 포기하고 그 자체가 사물이 되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미술과 사물성 = 26
26
미니멀리즘은 작품을 사물로 만들었고, 개념미술은 미술을 문학으로 만들었으며, 팝아트는 키치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마이클 프리드의 에세이 <예술과 사물성>은 예술의 사물화 경향에 대한 형식주의 비평의 마지막 반격이라고 할 수 있다.
평판화면 = 29
29
그린버그와 프리드의 형식주의에 결정적 타격을 입힌 또 하나의 흐름은 팝아트였다.
31
이를 테면, “테이블 윗면, 스튜디오 바닥, 게시판과 같은” 평판화면은 “오브제가 배열되거나, 데이터가 기입되거나, 정보가 수신되고 인쇄되고 각인되는 수용기”다. 이처럼 평판화면 위에서 제작되는 이미지는 일종의 메타 코드, 즉 자연의 그림이 아니라 자료와 정보의 그림이다. 스타인버그는 여기서 르네상스 이후 최초로 회화의 주제가 자연에서 문명으로 이행한다고 주장했다.
<Other Critica, 1972>
모더니즘의 종언 = 31
31
스타인버그의 논리에 따르면, 팝아트는 모던 이전으로의 퇴행이 아니라, 르네상스 이후 500년의 미술사에 종지부를 찍은 거대한 ‘사건’인 셈이다.
32
모더니즘 예술은 “타자들을 배제하는 단일한 내러티브”를 갖고 있어, 저마다 자신만이 진정으로 새롭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선언문의 시대는 끝났다.” 오늘날 다른 것을 제치고 자신만이 역사적 위임을 받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예술 형식은 존재할 수 없다. 팝아트 이후에 이렇게 변화한 예술의 상태를 단토는 ‘탈역사적’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한다. 미술이 취할 수 있는 역사적 방향 같은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역사의 짐에서 해방된 예술가들은 자신이 원하는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이 원하는 그 어떤 목적을 위해서도, 혹은 어떠한 목적도 갖지 않고 자유롭게 예술을 만들게 되었다. 이것이 동시대 미술의 징표다. … 동시대 양식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네오 아방가르드 = 33
34
네오 아방가르드는 사실 전전의 아방가르드와는 전혀 다른 맥락에 놓여 있었다. 아방가르드는 부르주아 정치체제와 예술 제도에 대한 이중의 공격이었다. 하지만 1960년대에는 예술이 정치적 연대를 표명할 혁명운동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미학적 ‘위반’은 외려 제도예술이 권장하는 예술의 ‘규칙’이 되어 있었다. 대중문화 역시 고급예술의 전략을 두루 섭렵하여 질적으로 그것을 위협하는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35
할 포스터는 네오 아방가르드가 “미술 제도를 변형시켰다기보다는 아방가르드를 제도로 변형”시켰다는 페터 뷔르거의 지적을 인정하나, 그것이 “저항으로서 수용”되었다고 주장한다. 실패한 역사적 아방가르드를 반복함으로써 네오 아방가르드는 비로소 자기 자신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제도의 해체 실험을 본격적으로 실행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반복’은 과거로의 복귀가 아니다.
재현의 복귀 = 35
36
리히터와 폴케의 1960년대 작업은 내용이나 형식의 측면에서 이미 ‘포스트모던’의 특성을 명확히 드러낸다. 두 작가 모두 미학적이든 정치적이든 일체의 신념을 불신하고, 현실의 의미를 온전히 재현할 수 있다는 생각도 거부한다. 이는 최종적 기의, 나아가 모든 기의의 거부라는 포스트모던 사유와 일치한다. 리히터와 폴케는 사진에서 출발하나, 리히터는 ‘흐리기’로, 폴케는 ‘벤-데이 망점’으로 사진의 지시 기능을 교란시킨다. 그 결과 현실은 영원히 포착되거나 파악될 수 없는 것으로 남는다.
37
리히터가 현실에 냉정한 판단중지를 실천한다면, 폴케는 패러디와 메타패러디를 통해 현실에 반어적 태도를 취한다.
1 폴록 : 캔버스 안의 검투사 = 38
잭 더 드리퍼 = 41
41
1947년 어느 날, 잭슨 폴록은 이젤의 수직으로 세운 캔버스 위에 토템(=동물) 비슷한 형태를 그리고 있었다. 그러다 무슨 생각에선지 돌연 캔버스를 바닥에 수평으로 눕히고는 그 위로 물감을 들이부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거기서 새로운 조형의 가능성을 본 것이다. 그 후 짧은 실험을 거쳐 그는 새로운 기법을 완성한다. 이를 신화로 만든 것은 한스 나무스의 영상이리라. 그의 사진 속의 폴록은 물감으로 범벅이 된 작업화를 신고, 페인트 통에 든 물감을 막대로 찍어 바닥에 깔린 캔버스 천 조각 위로 흩뿌린다. 어떤 규범에도 매이지 않고 내면의 기를 발산하는 자유로운 영혼, 이것이 폴록의 이미지다.
42
폴록이 이젤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현대적 감각의 경향이 벽화를 지향”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자품은 그림이라기보다 차라리 벽지처럼 보인다.
멕시코 벽화운동에 영향을 받았다.
“혼돈은 무슨 빌어먹을” = 44
44
언뜻 보기에 폴록의 화면은 우연으로 빚은 혼돈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착시에 불과하다. 그의 작품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나는 우연을 사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연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의 화면에는 우연의 외관 속에 고도의 미적 질서가 존재한다. 외려 “자의적인 것으로 연상되는 것과 감지될 정도로 실재하는 미적 질서 사이의 긴장”에 그의 강점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질서가 의식적 통제의 산물인 것은 물론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그의 내적 본성에서 흘러나오는 “영감, 비전, 직관적 결정”의 산물이다.
45
폴록
“회화 ‘속에’ 있을 때, 나는 무엇을 하는지 의식하지 못한다. 내가 무엇을 했는지 알게 되는 것은 일종의 ‘익숙해지는 시기’가 지난 후의 일이다.”
“… 결과가 엉망이 되는 것은 그림과 접촉을 잃었을 때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순수한 조화, 손쉬운 주고받기가 일어나 아주 좋은 작품이 나온다. 내 그림의 원천은 무의식이다.”
추상표현주의 = 46
46
유럽의 모더니즘에는 그나마 기하학적 형태라도 남아 있었지만, 폴록의 화면에서는 ‘형태’마저 해체되어 있다.
한편, 폴록의 격렬한 제스처는 초현실주의에서 유래한 ‘표현’의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즉흥적 화법은 앙드레 브르통의 ‘자동기술법’을 연상시킨다.
… 이 두 유산이 모순적으로 결합된 이 새로운 회화를 평론가 로버트 코츠는 ‘추상표현주의’라고 불렀다.
48
두개의 유산은 당연히 추상표현주의의 성격에 관해서도 대립되는 두가지 해석을 낳는다. 즉 이 새로운 미국 회화의 본질은 추상인가, 아니면 표현인가? 거기서 중요한 것은 ‘작품’인가, 아니면 ‘과정’인가?
형식주의 비평 = 48
이 두 해석 중에서 그린버그는 전자를 대표한다. “추상미술의 역사적 정당성”을 주장한 기념비적 에세이(<더 새로운 라오콘을 향하여, 1940>)에서 그는 아방가르드 운동의 두 단계를 지적한다. 그 발전의 첫 단계에서 예술을 오염시키는 관념(subject)을 추방하고, 둘째 단계에서는 다른 장르에서 온 효과마저 배제함으로써 아방가르드 예술은 스스로 ‘순수’해진다. 여기서 ‘순수’해진다는 것은 예술이 자기 매체의 고유성으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회화에서라면 화면에서 3차원 공간의 환영이 사라지는 것을 말한다.
50
“후기 입체주의를 넘어섰다.”는 것은 폴록에 이르러 추상이 새로운 차원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아무리 추상적이더라도 전전의 유럽 모더니즘에는 여전히 형태가 남아 있었다. 또한 그 형태는 화면 안에서 배경과 미적으로 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액션 페인팅‘ = 51
51
평론가 해럴드 로젠버그 역시 ‘추상표현주의’라는 명칭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린버그와는 정반대의 이유에서였다. 그는 외려 그 명칭에 ‘새로운 미국 회화가 입체주의적 추상의 연장’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보았다. 그가 보기에 이는 전후 미국 회화의 본질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것이다. 새로운 미국 회화의 요체는 추상이 아니라 행위에 있으며, 거기서 중요한 것은 ‘작품(=결과)’이 아니라 ‘과정(=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이 새로운 흐름을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이라고 부를 것을 제안한다.
“특정 시점에 미국의 예술가들에게는 캔버스가 행동을 하는 격투기장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더 이상 실재하는 것이든 상상된 것이든, 대상을 재현하고, 리디자인하고, 분석하고, ‘표현’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캔버스 위에 나타나야 할 것은 그림이 아니라 사건이다. 화가는 더 이상 심상을 미리 품고 이젤에 다가서지 않는다. 그는 손에 재료를 들고 제 앞에 선 또 다른 재료에 뭔가를 하기 위해 그것에 다가선다. 이미지는 이 우연한 만남의 결과로 나올 것이다.”
-Harold Rosenberg, The American Action Painters, Art News, New York LI,(December 1952, pp.22ff)
53
로젠버그는 이렇게 그린버그의 ‘형식주의적(formalist)’ 해석에 자신의 ‘실존주의적’ 해석을 대립시킨다.
폴록 그 이후 = 59
59
평생 우울증과 알코올의존증으로 시달리던 폴록은 1956년 8월 차량전복사고로 비극적 죽음을 맞는다.
60
이로써 폴록의 표현적 제스처는 ‘해프닝’이라는 행위예술의 선구가 된다. 오늘날 ‘퍼포먼스’라는 이름으로 화가들이 마치 배우처럼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퍼포먼스는 작품을 남기지 않는다. 그저 어떤 ‘사건’이 그때, 그 자리에서 발생했다는 기록만 남길 뿐이다. 앨런 카프로의 해석은 물론 폴록의 작업을 ‘액션 페인팅’이라고 부른 로젠버그의 해석의 연장선 위에 있는 것이다.
60
작품이 환영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려면, 작품은 스스로 사물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미니멀리즘이 탄생한다.
2 앵포르멜 : 무정형한 물질의 충동 = 62
65
폴록이 미국에서 격렬한 표현적 제스처로 형 자체를 붕괴시키고 있을 때, 유럽에서는 앵포르멜(informel)이라는 흐름이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카운터파트 역할을 하고 있었다. 형태에 대한 공격, 물질성에 대한 관심, 즉흥적 화법, 표현적 제스처 등은 전전의 기하학적 추상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전후 표현적 추상의 특징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것은 이 두 흐름이 서로 상대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가운데 대서양의 양안에서 동시에 발생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그저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다. 전후 추상의 이 두 흐름은 전전의 모더니즘 기획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공통된 인식의 산물로 보인다.
점령의 트라우마 = 65
회화의 전환 = 67
67
종전 후 파리의 회화에 새로운 방향을 지시한 것은 르네 드루앵의 화랑에서 열린 장 포트리에의 ‘인질’전이었다.
인간의 신체가 파우더와 같은 물질로 분해되는 모습은 심지어 “변태적으로 에로틱한 효과”를 내기도 한다. 여기서 회화는 “거친 물질성과 무정형의 미학”으로 나아간다.
같은 화랑에서 한 달 후 독일의 작가 볼스의 전시회가 열린다.
… 1947년 드루앵의 회랑에 전시된 40점의 유화 작품들은 드리핑, 스크래칭 등 전형적인
‘앵포르멜’의 특징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다. 형태를 허물고 물질을 부각시키는 것이 당시로서는 도발이었던 모양이다.
71
세 화가(+뒤뷔페)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형태를 해체하고 물질로 돌아가려는 충동이다. 물론 그 충동에는 사회적 배경이 있을 것이다.
이 무정형의 취향에서 앵포르멜을 규정하는 또 하나의 이론이 소환된다. 바로 바타유의 ‘기저 유물론’이다. 앵포르멜 운동의 본질은 어쩌면 실존주의적 내용과 기저 유물론의 형식이 작품 속에서 만나는 양식을 통해 설명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형태에서 물질로 = 71
73
미셸 타피에는 이 새로운 흐름을 ‘반예술’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다른 예술’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 명칭은 전전의 초현실주의, 폴록의 추상표현주의, 뒤뷔페의 아르브뤼트를 포괄하는 것이어서, 변별성이 떨어진다. 적절한 것은 그가 붙인 ‘앵포르멜’이라는 명칭이리라. 이 이름에는 형을 부정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물질의 시학 = 73
74
뒤뷔페의 작품을 가리켜 ‘카카이즘’이라고 부른 앙리 장송의 말은 나름 예리한 지적이었던 셈이다. 뒤뷔페의 독특한 재료 – 물질에 대한 취향은 ‘앵포르멜’이라는 말 속에 함축된 반형태의 충동과 관련이 있다. ‘재료’와 ’대변’ 사이에는 특정한 형태를 가진 ‘요리’가 존재할 것이다.
76
뒤뷔페는 종종 작품에 질감학texturology이나 재료학materialogy이라는 제목을 사용하곤 했다. 이는 아직 형태를 갖추지 않은 재료 상태에 대한 그의 취향을 보여준다. “나는 거칠고 덜 된 것에서 만족감을 얻는다.“
기저 유물론 = 76
76
“대부분의 유물론들은, 비록 그것들이 영적 실체를 없애기를 바랐더라도, 종국에는 사물의 질서를 세우고 말았다. 그 질서의 위계적 관계가 그것을 결국 관념론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이 위계를 없애기 위해 바타유는 기저 물질에 주목한다. 앵포르멜의 화면에서 우리는 위계 없는 이 기저 물질로 돌아가려는 충동을 볼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사물을 형태와 재료로 나누곤 한다. 이런 식의 추상을 통해 우리는 형태의 극점에서 신(정신, 이데아, 로고스)이라는 관념에, 재료의 극점에서 물질이라는 관념에 도달한다.
하지만 사물을 통째로 볼 경우에 이런 구별은 매우 “자의적이고 이해 불가능한”것이다. 바타유는 이 자의적 구별들을 없애고, 그 구별로 세워진 위계들을 무너뜨리고 원래 하나였던 물질의 상태로 돌아가자고 주장한다.
바타유는 처음부터 물질을 “저 자신의 영원한 자율적 존재를 갖는 능동적 원리”로 본다.
형태를 향하여 = 80
80
앵포르멜 운동이 바타유가 강조하는 ‘죽음 충동’의 산물이었다면, 형태 없는 물질은 그 운동의 ‘종착지’일 게다. 반면 앵포르멜이 그저 새로 출발하기 위해 무전제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에 불과하다면, 형태 없는 물질은 새로운 조형의 출발점일 것이다.
81
앵포르멜은 형을 해체하기 위해 물질로 돌아간 게 아니다. 그저 창작의 한 국면에서 새로운 조형의 출발점으로 무정형을 기용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훗날 등장할 무정형의 역겨운 재료를 사용하는 혐오예술과는 구별된다.
3 색면추상 : 네가 누구 앞에 서 있는지 알라 = 82
85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운동은 크게 두 유형 혹은 두 국면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나는 폴록과 윌렘 드 쿠닝이 주도하는 뜨거운 표현적 추상이었고, 다른 하나는 바넷 뉴먼과 마크 로스코가 이끄는 차가운 색면추상이었다.
새로운 평면성 = 85
86
뉴먼은 제 그림이 “기하학의 원리를 가진 1차 세계대전의 예술과는 아무 연결도 없다.”며, “오직 기하학이 없는 예술만이 새로운 출발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유럽의 회화가 대상의 초월에 관심이 있다면, 미국의 회화는 초월적 체험의 현실에 관심이 있다.” 유럽의 회화와 달리 자신의 작품은 대상의 추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뉴먼의 작품은 “추상이 아니며 … 어떤 재현적 암시도 함축하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해 그림의 가장자리들은 범위를 정하는 것delimit이지 한계를 짓는 것limit이 아니다.
형식이 아니라 주제 = 87
87
실제로 뉴먼과 로스코의 작품은 ‘평면적’이다.
이 두 사람은 “대상의 초월”, 즉 현실의 추상이 아니라 “초월적 체험의 현실”, 어떤 초월의 체험을 실현하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무로부터의 창조 = 88
89
8개월 침잠한 끝에 마침내 그는 그 효과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깨닫고, 비로소 자신이 의미 있는 예술적 진술을 만들었다고 확신한다. … 뉴먼은 이 작품을 자신이 고민해왔던 ‘주제’의 문제에 대한 최초의 적절한 해결로 여겼다.
<하나임 I Onement I> 은 그렇게 탄생되었다. 후에 그는 이 그림이 “나의 현재 삶의 출발”이었다고 술회한다.
91
뉴먼은 ‘장소’를 창조했다. 자신의 작품 안에서 느낀 이 기묘한 감정,, 거의 종교적 열광에 가까운 이 신성한 감정을, 당연히 관객들도 느껴야 할 것이다. 바로 이것이 그가 작품을 통해 전달하려는 ‘주제’였다. 장소에서 느끼는 고양된 느낌을 그는 ‘숭고’라고 불렀다.
숭고는 지금 = 91
<숭고는 지금>1948
91
이 에세이에서 뉴먼은 서구의 미술사를 ‘미와 숭고의 대립’으로 요약한다. 뉴먼에 따르면, 유럽인들은 오랫동안 미와 숭고를 혼동해왔다. 그 결과 유럽의 미술에서는 숭고에 대한 열망이 미의 감옥 속에 갇혀버렸다.
아름다움은 ‘형태’에서 온다. 형태는 윤곽이고, 윤곽은 유한하다. 하지만 신성의 본질은 무한함에 있기 때문에 아름다움에 갇힌 것으 온전한 신성일 수 없다. 유대의 신이 제 형상을 만드는 것은 금한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 미술은 “감각의 현실 내에 머물면서 순수한 조형성의 프레임 안에서 미술을 구축하려는 맹목적 욕망 때문”에 숭고에 도달하는 데 실패했다.
92
문제는 역시 “숭고하다고 불릴 만한 전설이나 신화가 사라진 시대에 … 어떻게 숭고한 예술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하는 것이었다. 이 새로운 유형의 숭고를 뉴먼은 이렇게 특징짓는다.
“우리가 생산하는 이미지는 자명한 계시의 이미지로, 그것은 역사에 대한 향수의 안경 없이 그 것을 바라보는 누구에게나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뉴먼은 숭고한 ‘제재’를 이용하지 않는다. 그의 숭고는 전체성의 효과를 통해 얻어진다.
추상회화의 경우에도 형태와 형태 사이에, 형태와 배경 사이에 적절한 미적 관계가 존재한다. 이를 ‘관계주의’라고 부른다. 반면 뉴먼의 것은 어떤가? 그것은 부분과 부분, 부분과 전체의 ‘관계’없이 하나의 전체적 효과로 다가온다. 이제 ‘하나임’이라는 제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93
그(뉴먼)는 관객에게 제 작품을 바로 앞에서 보라고 명한다. “큰 그림은 떨어져서 보는 경향이 있다. 이 전시회의 큰 그림들은 가까운 거리에서 보도록 의도된 것이다.”
예술로 숭고를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모순이다. 매체는 유한하나, 숭고는 무한하기 때문이다. 철학자 리오타르는 뉴먼의 방식을 ‘숭고의 부정적 묘사’라고 부른다. 즉 뭔가를 묘사하기를 포기함으로써 뭔가 묘사할 수 없는 것이 있음을 드러내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살아 숨 쉰다 = 93
94
로스코 스스로도 자신의 회화의 색채 효과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지만, 그에게 중요한 것은 저 색 덩어리들의 미적 효과가 아니었다. 어느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추상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색체와 형태, 혹은 그 밖의 어떤 것과의 관계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은 오직 비극, 엑스터시, 운명 등 기본적인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 그러므로 당신이 내 작품의 색체 관계에만 감동을 받는다면, 그것은 요점이 빗나간 것이다.”
그에게 색체는 그저 ‘분위기의 날카로움’을 위한 도구였을 뿐이다. 하지만 당시의 비평가들은 뉴먼과 로스코의 작품을 오해하고 있었다. 그들은 뉴먼과 로스코를 여전히 ‘미’의 관점에서 분석하려 했다.
로스코는 오해에 지친 나머지 1950년 이후에는 아예 제 작품에 대한 설명을 포기해버린다. 그는 “침묵이야말로 정확하다.”며, 말은 그저 관객의 정신을 ‘마비’시킬 뿐이라고 덧붙였다. 숭고는 차라리 침묵을 통해 더 전달되는 법이다.
뉴먼처럼 로스코 역시 자신의 작품을 보는 이상적 거리는 45cm라고 잘라 말했다.
열광의 감정 = 96
96
1940년대의 잭슨 폴록을 이어 뉴먼과 로스코의 회화는 1950년대의 추상표현주의 운동을 주도했다. 그들의 작품은 훗날 그린버그가 ‘탈회화적 추상’이라고 부르게 될 1960년대의 추상이 영향을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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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해야 할 것은 뉴먼과 로스코가 자신들의 작품을 미적으로 지각해야 할 ‘그림’이라기보다는 정서적으로 작동하는 ‘사물’로 간주했다는 것이다. 이는 물론 미니멀리즘 운동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주었다.
뉴먼과 로스코의 작품은 관객에게 신체적 움직임을 – 뉴먼은 1미터, 로스코는 45센티미터의 거리를- 강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두 사람의 작품은 “회화의 순전한 물질적 현전, 준건축적 기념비성”에 근접한다.
4 탈회화적 추상 : 뜨거운 추상에서 차가운 추상으로 = 100
103
회화적 추상은 유행이 되었다가, 이제는 한물갔다.
이것이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묘사하는 1960년대 초반 미국 미술계의 상황이다. 이미 1950년대 말에 추상표현주의는 초기의 급진성을 잃어버리고 미술대학에서까지 가르치는 화랑가의 유행이 되었다. 이 혁신 없는 모방자들의 기법을 그린버그는 냉소적으로 ‘10번가 양식’이라고 불렀다. 이 매너리즘에서 벗어나려면 박제로 전락한 추상표현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예술적 동력이 필요했다.
두 개의 대안 = 103
사실 1960년대 초에는 이미 초상표현주의의 대안이 될 만한 새로운 흐름이 존재했다.. 바로 앤디 워홀의 팝아트다. 하지만 팝아트를 바라보는 그린버그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그에게 팝아트는 매너리즘에 빠져 유행으로 전락한 추상표현주의 못지않게 피상적인 “또 다른 유행”일 뿐이었다.
104
그가 팝아트를 못마땅하게 여긴 데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다. 모더니즘에 대한 그린버그의 관념에 따르면, 회화에서 ‘현대성’은 회화가 자기 자신의 조건을 반성적으로 탐구하는 것을 통해 도달된다. 하지만 팝아트에서 회화는 자기 자신을 주제화하지 않고 자기 바깥에서 제재를 취한다.
104
그린버그에게는 추상표현주의의 대안 역시 추상예술이어야 했다. 그리하여 1964년 그는 뉴욕에서 ‘탈회화적 추상’이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기획한다.
회화 이후의 추상 = 105
탈회화적 추상은 추상표현주의와는 “급진적으로 다른 감성”을 보여준다. 폴록이나 드 쿠닝의 추상이 열정과 강렬한 감정을 전달한다면, 새로운 추상은 차갑고 냉담한 이성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이 차이를 그린버그는 ‘선적인’ 것과 ‘회화적인’ 것의 대조로 개념화한다.
폴록의 추상표현주의가 회회적이라면, 색면 사이의 경계가 뚜렷하고 색체가 명료한 새로운 선적 추상은 탈회화적이다.
미니멀리즘과 팝아트 = 114
114
주목해야 할 것은 프랭크 스텔라다. 이 ‘범례적인 탈회화적 화가’는 회화를 그림이 아니라 ‘오브제’로 간주한다. 탈회화적 추상의 화가들은 뉴먼과 로스코의 “규정하기 힘든 숭고에 대한 시적 강조”에 반대하여, 합리적 축어주의를 주창했다. 글자 그대로, “당신이 보는 것은 당신이 보는 것이다.” 이 스텔라의 구호에서 우리는 노골적인 미니멀리즘의 경향을 본다. 그가 그림을 사물로 간주하는 것은 물론 회화에서 환영주의를 피하기 위해서다. 그림이 그림인 한, 아무리 추상적이어도 거기에는 모종의 공간감이 남는다. 이를 피하려면 그림은 아예 사물이 될 수밖에 없다.
5 미니멀리즘 : 네가 보는 것은 네가 보는 것이다 = 118
121
우리는 이미 미니멀리즘의 ‘심플한 디자인’에서 미적 매력을 느낀다. Less is more. 건축가 반 데어 로에의 슬로건은 오늘날 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구호로 통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 미니멀리즘이 설정한 예술적 목표와는 별 관계가 없다. 미니멀리즘은 추상표현주의에서 출발한 미국 모더니즘 운동이 낳은 특정한 미학적 문제의 해결책으로 출현했기 때문이다.
환영과의 고투 = 121
123
환영을 쫓아내려는 엑소시즘은 결국 예술을 사물로 만들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프리드가 ‘미니멀 아트’를 ‘축어적 예술’(literal art)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나의 유일한 사물 = 123
이 예술의 트레이드마크로 통하는 ‘미니멀’한 특성은, 사실 회화적 환영을 불러일으키는 관계주의를 추방하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갖게 된 속성에 불과하다.
그러려면 작품을 부분이 없는 통짜의 사물로, 즉 도널드 저드가 ‘독특한 대상’이라고 부른 “하나의 유일한 사물”로 만드는 수밖에 없다. ‘전체성’, 단일성, 불가분성이라는 미니멀의 미학은 여기서 비롯된다. 이른바 심플한 디자인은 미니멀 아트의 자기 목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작품을 통짜의 사물에 가깝게 만들기 위해 구조를 최소화하는 과정에서 미니멀 아트가 결과적으로 갖게 된 특성에 불과하다.
반관계주의 미니멀리즘 = 125
125
도널드 저드는 미니멀리즘의 대표적 작가이자 이론가로, “그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면 미니멀리즘에 대한 설명은 완전할 수 없을 것이다.” 저드는 환영주의를 추방하려는 모더니즘의 기획에서 출발했다. 이 점에서 그는 그린버그의 강령에 충실하나 그의 반환영주의는 그린버그의 것보다 더 철저했다. 그는 아예 ‘회화’의 조건 자체를 문제삼는다.
126
모더니즘은 공간의 환영을 파괴하여 평면으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사각의 프레임이 존재하는 한, 회화의 표면에 있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자기 뒤로 공간을 갖게 마련이다.
128
작품은 액자나 받침대로 구획되는 허구의 공간을 떠나 실제의 공간 속에서 “회화도 아니고 조각도 아닌” 사물이 되어야 한다. 그 ‘사물’을 저드는 ‘특정한 객체(specific object)’라고 부른다.
여기서 모더니즘의 ‘자기 지시성’은 극한에 도달한다. 이 순수한 사물의 ‘현전(present)’이 미니멀리즘의 특성이다.
현상학적 미니멀리즘 = 128
128
저드가 회화를 환영주의로부터 구하려 한다면, 로버트 모리스의 관심은 조각을 환영주의에서 해방시키는 데 있었다. ‘유럽의 유물’과 단절하려 했던 저드와 달리, 모리스는 자신의 작업을 유럽의 전통, 특히 러시아 구축주의와 연결시킨다.
129
저드의 특정한 객체가 회화도 아니고 조각도 아니듯이, 모리스의 3차원 작품은 조각도 아니고 건축도 아닌 어떤 것이다.
131
모리스의 미니멀리즘은 이 원초적 지각의 현전, 최초 지각의 직접성을 확보하려 한다. 이는 물론 메를로퐁티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의 ‘지각의 현상학’은 ‘신체’의 움직임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모리스의 작품 역시 ‘신체의 참여’를 요구한다.
사물성과 연극성 = 139
140
아무리 회화가 추상적이더라도 그것이 회화이려면 미적 가상으로 남아야 한다. 하지만 미니멀리즘은 바로 그 영역을 떠나려 한다. 회화가 더 이상 회화가 아니라면, 또 조각이 더 이상 조각이 아니라면, 미니멀의 회화와 조각은 대체 어디로 나아가려 하는 것일까? 마이클 프리드는 바로 ‘연극’이라고 대답한다.
“사물성에 대한 미니멀리스트의 옹호는 새로운 장르의 연극을 요청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여기서 연극은 미술의 부정을 의미한다.”
141
그런 의미에서 미니멀리즘이 ‘연극적’이라는 프리드의 비난은 나름 예리한 구석이 있다. ‘객체-공간-관객’이라는 미니멀리즘의 삼각형은 사실 ‘배우-무대-관객’이라는 연극의 3요소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미니멀리즘 이후 = 142
142
‘포스트 미니멀리즘’이라고 불리는 1960~1970년대 미술의 다양한 흐름은 미니멀리즘의 특정 측면을 계승 혹은 극복하려는 시도에서 발생했다. 이를테면, 퍼포먼스는 미니멀리즘의 연극성을, 과정예술은 그것의 시간성을, 신체예술은 그것의 신체성을 각각 계승한 것이다. 설치, 대지예술, 장소특정예술 역시 사물을 특정한 장소에 집어넣어 맥락을 창조하는 미니멀리즘의 전략에 근원을 두고 있다.
미니멀리즘의 가장 큰 업적은 모더니즘의 협소한 감옥에서 미술을 해방시킨 데 있지 않을까? 미니멀리즘 이후 미술의 영역은 비할 데 없이 넓어졌다. 오늘날 미술은 종종 미술이 아닌 다른 것처럼 보인다.
6 개념미술 : 육체를 벗어버린 예술 = 144
147
작품을 전시회에 출품하는 게 아니라 잡지에 기고하는 화가들이 있다. ‘개념미술가’라고 불리는 이들이 그들이다. ‘개념미술’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헨리 플린트로 알려져 있다. 1961년에 쓴 에세이에서 그는 개념미술을 이렇게 정의한다. “개념미술은 무엇보다도 개념을 재료로 하는 미술이다. 음악의 재료가 소리인 것처럼 말이다. 개념들은 언어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개념미술은 언어를 재료로 하는 미술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구조예술, 특히 총렬음악에서 개념미술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오브제에서 개념으로 = 149
149
개념미술의 근원은 다다에 있겠지만, 운동에 직접적 단초가 된 것은 미니멀리즘이었다.
미니멀리즘이 개념미술로 진화하는 것은 논리적 필연일지도 모른다. 사실 미니멀리즘에 속하는 작품들은 ‘사물’과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굳이 ‘작품’을 제작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151
여기서 미니멀리즘은 개념미술로 진화한다. 솔 르윗에 따르면, 개념미술에서는 “생각이나 관념”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측면이 된다. 그의 말대로 예술가가 예술에 개념적 형식을 사용한다는 것은 곧 모든 계획과 결정이 미리 만들어지고 실행은 요식행위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152
본격적인 의미에서 최초의 개념미술가는 멜 보크너였다. 킨홀즈가 실행을 포기한 것이 ‘임시방편’이었다면, 보크너는 물리적 실행을 ‘개념적’으로 포기하기 때문이다.
개념미술의 전략들 = 154
154
르윗이 <아트포럼>이라는 잡지에 기고한 <개념예술에 관한 패러그래프들>은 오늘날 개념미술의 강령으로 여겨진다.
156
알렉산더 알베로는 “개념미술을 낳은 다양한 미술사적 계보학”에 대해 언급한다. 거기에 따르면, 1960년대의 개념미술은 ‘네 가지 궤도’가 하나로 수렴한 결과라고 한다.
첫째, 전통적 예술 작품의 구조를 해체한 모더니즘 회화의 자기반성적 경향, 둘째, 작품을 시각적 오브제에서 개념적 텍스트로 되돌리는 환원주의적 경향, 셋째, 마르셀 뒤샹에게서 유래하는 반미학 혹은 비미학의 경향, 넷째는 예술 작품이 전시되고 소통되는 장소를 문제 삼는 경향이다. 위에서 언급한 개념미술의 네 형식은 이 네 가지 궤도가 복잡하게 결합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60년대 말에 미술이 개념적으로 변한 데에는 물론 배경이 있다. 때는 마침 지식계에서 ‘텍스트로 전환’이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기호학은 사진 이미지에 숨은 이념의 언어를 보여주었고,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은 우리의 세계가 언어적 관습으로 구축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철학 이후의 예술 = 159
161
중요한 것이 예술의 본성, 예술의 기능에 관한 물음이라면, 현대미술사는 다시 쓰여야 할 것이다. 그린버그에게 현대미술의 역사는 결국 ‘추상화’의 과정이다. 그것은 피카소의 입체주의에서 출발하여 폴록의 추상표현주의와 그 이후로 이어진다. 반면 코수스에게 현대미술의 역사는 예술을 새로 ‘정의’하고 ‘확장’하는 과정이다. 그것은 뒤샹에서 출발하여 로젠버그를 거쳐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팝아트와 그 이후로 이어진다. (이 경우 미적 현대를 상징하는 인물은 피카소가 아니라 뒤샹일 것이다.) 오늘날 현대 예술에 대해 우리가 가진 관념은 그린버그의 것보다 코수스의 것에 가깝다. 그사이 예술의 관념 자체가 바뀐 셈이다.
167
유파로서 개념미술은 종언을 고했지만, 코수스의 지적대로 어떤 의미에서는 현대미술 전체가 ‘개념미술’이다. … 헤겔의 말대로 예술은 죽었다. 아니, 예술의 육신은 죽고 영혼만 남아 비물질성에 도달했다. 물질을 떠난 예술은 우리의 영혼처럼 마침내 파괴될 수 없는 불멸성에 도달했다.
7 팝아트 : 사진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 168
카운터 아방가르드 = 171
172
형식주의자들이 작품의 ‘미학적 특질’을 강조한다면, 팝과 미니멀리즘은 ‘쇼크’나 ‘재미’를 내세운다. 그들에게 “작품은 그저 재미있기만 하면 된다.”
브리티시 팝 = 173173
팝아트는 그 명칭과 더불어 1950년대 영국에서 탄생했다. 1952년에 결성된 ‘인디펜던트 그룹’은 모더니즘의 엘리트주의에 맞서 광고, 만화, 영화, SF 등 대중문화를 예술에 끌어들였다. 이는 종전 후에도 전전의 모더니즘을 반복하려는 영국 예술계에 대해 젊은 예술가들이 대항하는 방식이었다.
프로토 팝 = 177
177
미국의 팝은 영국의 그것과는 별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발생했다. 미국의 팝 아티스트들은 영국의 팝아트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고 한다. 미국의 팝아트에는 영국의 팝아트에는 없는 또 하나의 맥락이 존재한다. 당시 미국 미술계를 장악하고 있던 그린버그의 형식주의 비평과 예술이다.
회화가 평면성을 위해 추상이 아닌 구상의 길을 택할 때 팝아트가 탄생한다.
평판화면 = 179
182
대량생산상품의 느낌을 주는 본격적 팝아트는 로이 릭턴스타인과 더불어 시작된다.
핸드메이드와 레디메이드 = 182
184
이렇게 기계복제(만화)-수작업(드로잉)-기계복제(투영)-수작업(완성)을 오가며 릭턴스타인은 어디까지 예술가의 수공업이고, 어디까지 공장제 대량생산인지 구별할 수 없는 지점까지 나아간다.
릭턴스타인의 작품은 레디메이드가 아니라 핸드메이드, 더 정확히 말하면 그 둘을 합친 핸드메이드 레디메이드이다. 이 맥락에서 “복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재구성하기 위해” 드로잉을 한다는 그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작품 제작에 화가의 개성이 개입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릭턴스타인은 “인쇄된 이미지를 복제했지만 그것을 회화적 요소로 변형”시켰다. 그의 작품에는 아직 ‘복제’라는 산업적 생산과 ‘변형’이라는 예술적 창작 사이의 긴장이 존재한다. 그에게 작품의 비인격성이란 “그저 양식 혹은 자세”, 즉 겉으로 내세우는 외양에 불과하다.
186
릭턴스타인은 자신의 차용한 이미지에서 상품명을 제거했다. 이는 워홀과 … 대조된다. 또 상업미술과 거리를 두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릭턴스타인 여전히 창조성, 독창성의 개념을 고수한다. 반면 워홀은 자신을 ‘상업미술가’라고 불렀다.
기계와 공장 = 186
188
반복이 차이를 생산하지 못하는 ‘동일자의 무한증식’에 빠져든 것이다. 워홀은 바로 그런 시대의 증인이다. 이 ‘균등화’의 취향이 모던과 구별되는 포스트모던 특유의 감정이다.
모던에서 포스트모던으로 = 189
189
워홀은 원작의 생산에 실크스크린을 도입함으로써 복제기술을 마지막 남은 유일물의 생산에까지 확장시킨다. 파괴되는 것은 이미지의 아우라만이 아니다. 작가의 아우라마저 파괴한다.
190
주체가 해체되고, 역사가 종언을 고하며, 정치가 사라지는 것이 포스트모던의 조건이다.
8 상황주의 인터내셔널 : 스펙터클에 맞선 전사들 = 196
모더니즘은 예술운동이자 정치운동이었다. 프랑스의 초연실주의, 러시아의 미래주의와 구축주의, 독일의 바우하우스는 사회주의 운동에 동조했다. 하지만 종전 후 모더니즘의 중심이 미국으로 옮겨가면서, 예술은 이 정치적 급진성을 잃는다.
팝아트와 상황주의 = 199
199
전후의 마셜 플랜과 더불어 시작된 경제 붐을 통해 유럽 사회도 완전히 ‘소비’자본주의로 모습을 바꾼다. 공장에서 생산을 하던 혁명적 ‘노동자’가 이제 마트에서 쇼핑을 하는 순응적 ‘소비자’가 되었다.
이 변화를 반영하는 예술이 바로 팝아트다. 모더니즘 예술과 달리 팝아트는 처음부터 체제에 순응적이었다.
스펙터클의 사회 = 200
202
스펙터클이 강화될수록 인간은 그 허상의 화려함과 현란함을 넋을 놓고 바라보는 한갓 ‘구경꾼’의 신세로 전락한다.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은 소비자본주의 하에서 일어나는 이 이간의 자기소외와 인간관계의 물화에 대항하여 진정한 삶, 즉 허구적 욕망의 복제가 아닌 삶의 원본을 복원하려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9 해프닝 : 액션 콜라주에서 해프닝으로 = 218
폴록의 유산 = 221
221
그린버그가 폴록의 작업을 -썩 내키지 않아하면서도- ‘추상표현주의’라고 불렀다면, 로젠버그는 그의 작업을 ‘액션 페인팅’으로 규정했다. 전자가 폴록의 ‘작품’에 주목했다면, 후자는 그리는 화가의 ‘행위’에 주목한 셈이다. 첫 번째 노선, 즉 평면성을 지향하는 ‘추상회화’의 노선은 뉴먼과 로스코를 거쳐 탈회화적 추상으로 나아간다. 두 번쨰 노선, 미술에서 화가의 행위를 강조하는 ‘퍼포먼스’의 노선은 로젠버그의 해석을 거쳐 앨런 카프로의 ‘해프닝’으로 이어진다.
회화의 파괴 = 223
223
카프로는 해프닝을 “간단히 말해 그냥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규정한다. 그의 해프닝은 세 가지 측면에서 그린버그의 형식주의와 정면으로 대립한다. 첫째, 그린버그가 미술을 ‘순수 시각성’의 영역으로 간주한다면, 카프로는 미술의 영역을 다섯 가지 감각 모두로 확장시킨다. 이는 자연스레 그린버그가 강조하는 ‘매체 특정성’의 부정으로, 즉 프리드가 그토록 비난한 ‘연극성’으로 이어진다.
224
해프닝에서는 “예술가와 관객과 외부 세계가 너무나 교호적으로 서로 얽혀” 있어, 삶과 예술을 가르는 경계가 사라진다.
연극적 전회 = 227
227
해프닝이 “1960년대의 연금술이 될 것”이라는 카프로의 예언은 과연 실현되었다. 1960년대 미술의 미술계에서는 실제로 “모더니즘 회화와 조각의 객체 기반의 관행을 이벤트의 시공간적 조정으로 끌어들이는 연극적 전회”가 일어난다.
카프로가 제시하는 해프닝의 핵심 규칙을 살펴보자. (1)”예술과 삶의 경계는 … 구별 불가능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 (2) “주제와 재료와 행위의 원천은 예술을 제외한 그 어떤 장소나 시기에 취할 수 있다.” (3) “몇 개의 넓은 장소, 때로는 이동하거나 변화하는 장소에서” 실연되어야 한다. (4) “시간은 가변적이며 불연속적이어야 한다.” (5) “단 한 번만 실연되어야 한다.” (6) “관객은 전적으로 제거되어야 한다.” (7) “특정한 길이의 시간과 특정한 장소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콜라주”여야 한다. 여기서 장소를 이동하며 공연한다거나, 반복적 공연을 금한다거나, 관객과 무대의 간극을 제거하는 것 등은 전통적인 연국의 관행에 배치된다.
228
손택은 해프닝의 충격을 이렇게 요약한다.
“해프닝의 가장 충격적 특징은 관객에 대한 대접이리라. 그 사건은 관객을 조롱하고 학대하기 위해 디자인 된 것처럼 보인다.”
콜라주에서 해프닝으로 = 229
229
카프로의 액션 콜라주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상블라주라는, 회화도 조각도 아닌 3차원의 작업으로 확장된다. 비록 차원은 달라졌지만 결합의 즉흥성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아상블라주에는 또 다른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었다.
방 자체가 하나의 프레임 혹은 포맷으로 부각될 떄, 아상블라주는 ‘환경’으로 발전한다. 오늘날에는 그것을 ‘설치’라고 부를 것이다. 카프로가 발표한 <아상블라주, 환경, 해프닝>(1966)이란 글에는 마당을 폐타이어로 가득 채운 작업(<마당>)의 사진이 실려 있다.
231
‘환경’에서는 시간, 음향, 관객의 참여가 아직 ‘종속적’ 요소로 남는다. 이 세 요소를 강화할 때 환경은 해프닝으로 진화한다. 카프로는 ‘환경’에 음향을 끌어들이려다가 우연히 해프닝에 도달했다고 한다.
“우리는 사물을 바라보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 속으로 들어가고, 그것에 둘러싸이고, 그것에 일부가 된다. … 비록 그 사실을 종종 의식하지 못하지만, 우리 자신이 형태다. 우리는 … 그러므로 작품의 비교적 고정되고 지정된 부분과 예상되지 않고 결정되지 않은 부분 사이에 변화하는 조건들의 끝없는 놀이가 존재하게 된다. 사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어떤 속도나 방향으로든 작품으로 들어가거나 그 주변을 걸어 다닐 수 있다. 마찬가지로 소리들, 침묵들, 그것들 사이의 공간들이 작의적인 시퀀스로, 혹은 동시적으로 하루 종일 이어진다. 이것이 전체 전시물을 시시각각 다르게 체험할 수 있게 해준다.
열여덟 개의 해프닝 = 232
234
””해프닝에서 벌어지는 것은 … 스펙터클에 대한 아르토의 규정을 따른다. 해프닝에서 희생양은 관객이다.” 하지만 1967년을 기점으로 해프닝의 패러다임은 “어떻게 사회적, 자연적 체계의 배열이 자아를 형성하는지”로 바뀌게 된다. 작품은 이제 벽돌 쌓기, 석재 절단, 벽 칠하기, 도로 포장 등의 육체노동의 지시로 이루어진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유체>라는 작품으로, 여기서 예술가와 실행자와 구경꾼은 얼음 벽돌을 쌓아 함께 벽을 만들게 된다.
10 플럭서스 : 정신병자들이 탈출했다 = 238
<선언> 조지 마키나우스, 1963년
241
플럭서스의 스승인 스승인 존 케이지는 뒤샹의 열렬한 추종자였다.
242
마키나우스의 플럭서스 <선언>은 ‘플럭서스’의 사전적 정의들을 인용하며 플럭서스의 정신을 이렇게 요약한다.
“세계에서 부르주아적 질병, 지성적, 직업적, 상업적 문화를 씻어내라. 세계에서 죽은 예술, 모방, 인공적 예술, 추상예술, 환영주의 예술, 수학적 예술을 씻어내라. 세계에서 유럽주의를 씻어내라! 예술에서 혁명적 밀물과 썰물을 촉진하라. 산 예술, 반예술을 진흥하고, 비평가들, 딜레탕트들, 전문가들만이 아니라 모든 이가 파악할 수 있게 비예술 현실을 촉진하라.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혁명의 간부들을 통일된 전선과 행동으로 결집하라.”
정신병자들이 탈출했다 = 247
249
플럭서스의 작업은 ‘개념미술’에 ‘해프닝’을 결합한 것에 가까웠다.
다다와 레프 = 252
254
워홀 역시 아틀리에를 ‘공장’이라고 부르고, 작품 제작을 대량생산에 맡기며, 고급 예술과 일상생활의 위계를 무너뜨리고, 예술가의 주체성을 부정했다. 워홀이 꿈꾸는 사회 역시 “대중이 제작한 실크스크린이 내가 만든 것과 구별되지 않는 사회”였다.
인터미디어 = 255
255
플럭서스는 동양과 서양의 사상이 본격적으로 만난 최초의 예술운동이었다.
259
인터미디어를 ‘멀티미디어’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멀티미디어가 여러 매체를 통합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인터미디어는 시로서 회화, 혹은 회화로서 음악 등 매체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데 그 본질이 있기 때문이다.
화가나 조각가나 사진가의 구별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오늘날의 작가들은 더 이상 매체의 고유성을 고집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필요하면 드로잉을 하거나 페인팅을 할 수도 있지만, 필요하면 펜이나 붓을 대신에 언제라도 카메라나 비디오를 잡을 준비가 되어 있다. 혹은 일상의 오브제로 설치 작업을 하거나, 혹은 자신의 신체로 퍼포먼스를 할 수도 있을 게다. 이는 공교롭게도 아날로그 매체들 사이의 질적 차이가 지워지는 디지털의 기술적 조건과도 맞아떨어진다.
11 게르하르트 리히터 : 리히터의 ‘흐리기‘ = 260
카멜레온 = 263
263
“내 작업은 그 밖의 어떤 것보다도 전통적 예술과 관계가 있다.” 노골적으로 전통과의 연대를 선언하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리히터의 작업은 애초부터 모더니즘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늘날 그가 그토록 주목을 받는 것은, ‘포스트모던’의 특성이 그의 작업에서 수미일관하게 드러나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264
양식의 다양성은 모더니즘에서도 나타난다. 하지만 모더니즘의 양식적 다양성은 의도된 것이 아니었다. 모더니즘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새로움’의 추구에 있었고, 그러다 결과적으로 언어가 다양해진 것일 뿐이다. 오히려 모더니즘의 강령들은 저마다 ‘오직 내 것만이 진정으로 새롭다.’는 식의 배타성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포스트모던은 다르다 .여기서는 ‘다원주의’가 처음부터 의식적으로 추구된다. 심지어 전통으로 복귀하면 안 된다는 모더니즘의 터부마저 포기된다.
리히터의 작품 세계는 온갖 예술언어로 짜인 모자이크다.
지본주의 리얼리즘 = 266
266
히틀러와 스탈린의 전체주의를 체험한 그는 이데올로기를 극도로 싫어했다. 정치 이데올로기만이 아니라 예술 이데올로기도 그에게는 혐오의 대상이었다. 그가 고정된 양식에 안착하기를 거부하고 끝없이 언어를 바꾼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
“나는 스타일이 없는 것을 좋아한다. 사전, 사진, 자연, 나와 내 그림들 … 왜냐하면 스타일은 폭력이고, 나는 폭력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과 회화 = 269
269
모더니즘의 추상이 사진이 던져준 충격에 대한 회화의 반응이였다면, 추상이 생명을 다한 이상 사진과 회화의 관계 역시 재정립되어야 했다. 리히터의 전략은 구상과 추상, 혹은 사진과 회화의 차이를 넘어 양자를 모두 포괄하는 의미에서 ‘그림picture’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271
사진에는 양식도 없고, 구성도 없고, 판단도 없다. 사진은 대상을 회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재현한다. 카메라는 대상을 이해하지 않고, 그것들을 그냥 본다. 반면 손으로 그린 그림들은 일종의 시각적 종합이기에 현실을 왜곡시키고 특정한 종류의 양식화로 흘러간다. 그 결과, 현실은 이미 알려진 것으로 상투화되고 정형화된다는 것이다.
271
사진을 그린다는 점에서 리히터의 작업은 워홀의 것을 닮았다. 하지만 워홀과 달리 리히터는 자신의 작품이 정말 사진처럼 보이길 원했다. 이 점에서 그의 작업은 포토리얼리즘에 가깝다. 하지만 포토리얼리즘이 사진보다 더 높은 해상도를 구현하려 한다면, 리히터는 이들과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려 한다. 그는 사진을 그릴 때에 물감이 마르기 전에 표면 전체를 한 번 쓸어줌으로써 윤곽을 흐리게 만든다. 리히터를 포토리얼리스트들과 구별시켜주는 것이 ‘리히터의 블러’라고 불리는 이 흐리기 효과다.
274
현실의 사물과 흐려진 영상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텍스트의 바깥은 없다.”는 데리다의 말처럼, 가능한 것은 현실에 대한 해석뿐, 현실 자체는 파악될 수 없는 것으로 남는다.
푼크툼 = 275
277
역사의 기억은 집요하게 자신을 주장하나, 살기 위해서는 그것을 외면해야 한다. 그 공포는 이 불편한 기억을 대면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리라. 리히터의 작품에서 사진을 통해 복귀하는 것은 독일 역사의 외상적 기억이고, 블러링을 통해 가려지는 것은 독일 사회의 외상적 실재다.
숭고의 부정적 묘사 = 279
280
리히터의 추상은 마치 추상표현주의 작품처럼 자유로워 보이지만, 실은 자신의 작품의 디테일을 찍은 사진에 토대를 둔 것이다. 사진을 이용한 ‘복제 미학’과 추상회화를 이용한 ‘숭고 미학’의 두 흐름이 리히터에게서는 하나로 합류한다.
후기 모던이냐 포스트모던이냐
문화 정치학에서 오늘날 기본적인 대립은 모더니즘을 해체하여 현상에 저항하려 하는 포스트모더니즘과 현상을 옹호하기 위해 모더니즘을 반박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즉 저항의 포스트모더니즘과 반동의 포스트모더니즘 사이에 있다.
‘확장된 장‘으로서 포스트모던 = 309
하지만 ‘단절이냐, 연속이냐’보다 중요한 것은 물론 “모더니즘과 구별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구체적 특성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냐.”는 물음일 것이다. 할 포스터에 따르면, 모더니즘에 포스트모더니즘을 대립시키는 입장에는 크게 세 부류가 존재한다. ‘확장된 장’으로서 포스트모더니즘(로잘린드 크라우스), ‘연극성’으로서 포스트모더니즘(더글러스 크림프), ‘알레고리 충동’으로서 포스트모더니즘(크레이그 오웬스)이 그것이다. 이 세 비평가가 각자의 기준으로 제시한 특성들은 서로 교차하는 공통성(이른바 ‘가족 유사성’)을 이루어 모더니즘과 구별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을 보여준다.
‘알레고리 충동‘으로서 포스트모던 = 322
322
크레이그 오웬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으로 ‘알레고리적 충동’을 꼽는다. 이 생각의 바탕에는 물론 알레고리에 관한 발터 벤야민의 이론이 깔려 있다. 벤야민에 따르면, 알레고리의 충동은 “과거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확신과 그 과거를 현재를 위해 다시 되살리려는 욕구”다. 알레고리는 이렇게 “하나의 텍스트가 또 다른 텍스트에 의해 중첩될 때면 언제나 발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구약 성서>는 <신약>의 예시로서 해독될 때 알레고리적인 것이 된다.” 오웬스는 이 알레고리적 충동이 현대 문화의 다양한 측면에서 다시 등장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미술에서 그것은 먼저 ‘차용’의 전략으로 나타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