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제/저자사항불평등의 세대 : 누가 한국 사회를 불평등하게 만들었는가 / 이철승 지음
이철승[1971-]
발행사항서울 : 문학과지성사, 2019
형태사항361 p. : 도표 ; 21 cm
주기사항참고문헌: p. 351-361
표준번호/부호ISBN 9788932035550 03330: ₩17000
분류기호한국십진분류법-> 332.6 듀이십진분류법-> 305.5
주제명사회 문제[社會問題] 불평등[不平等] 세대론[世代論]
들어가며 = 5
프롤로그 = 14
Q 왜 ‘세대’와 ‘불평등’을 연결시키는가? = 14
Q 불평등의 세대, 무엇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 22
1장 386세대의 부상 – 권력의 세대교체 = 31
Q 왜 ‘386세대’를 이야기하는가? = 32
Q 386세대는 어떻게 권력을 형성했는가? = 37
Q 386세대의 약속은 지켜지고 있는가? = 56
Q 386세대의 리더들은 어떻게 권력을 분배하고 있는가? = 69
2장 세대와 불평등 – ‘네트워크 위계’의 탄생 = 77
Q 386세대는 어떻게 ‘새로운 불평등 구조’를 탄생시켰는가? = 78
Q 386세대는 어떻게 시장을 장악했는가? = 90
Q 386세대는 얼마나 오래, 얼마나 많은 부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 = 103
Q 386세대와 다른 세대와의 소득 격차는 얼마나 큰가? = 124
3장 산업화 세대의 형성 – 불평등의 탄생 = 137
Q 산업화 세대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 138
Q 산업화 세대는 어떻게 불평등 구조를 싹 틔웠는가? = 158
4장 세대 간 자산 이전과 세대 내 불평등의 확대 – 자산 불평등 = 181
Q 한국 사회에서 ‘세대 간 자산의 불균등한 형성’은 어떤 불평등 구조를 만들었는가? = 182
Q 386세대의 자산과 소득 구조는 산업화 세대와 어떻게 다른가? = 1213
5장 한국형 위계 구조의 희생자들 – 청년, 여성 = 225
Q 한국형 위계 구조의 희생자는 누구인가? = 226
Q 위계 구조의 희생자들 1 청년 = 230
Q 위계 구조의 희생자들 혹은 경쟁자들 2 여성 = 242
Q 나가며 – 청년과 여성의 미래 = 256
6장 세대와 위계의 결합 – 네트워크 위계 = 261
Q 세대 내 불평등이 세대 간 불평등보다 크다? = 262
Q 위계와 세대는 어떻게 서로를 재생산하는가? = 273
Q 위계 구조에서 앎이란 무엇인가? = 281
Q 위계 구조는 왜 필요한가? = 294
Q 위계 구조의 위기는 어디서 비롯되는가? = 301
7장 에필로그 – 세대 간 형평성의 정치 = 325
Q 세대 간, 세대 내 불평등과 그 불평등의 재생산 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 326
나가며 = 347
참고문헌 = 351
들어가며 = 5
5
세대는 한편으로는 (일단 구성되면) 쉽게 침범할 수 없는 구획이지만, 동시에 끊임없는 새로운 사건과 격변으로 재구성되는 느슨한 연결망이다.
6
우리는 불평등으로 인해 고통받는 구조의 희생자들이지만, 끊임없이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주체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이 두 개념과 현상을 연결시키려는 시도다. ‘세대’라는 앵글 혹은 렌즈를 통해 ‘불평등’과 ‘계급’을 이해하려는 프로젝트인 것이다.
7
내 팻말은 이런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한 세대와 다른 세대들 간의 불평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더 나아가 나는 ‘이 때문에 젊은 세대 내부의, 미래의 불평등 또한 커질 것이다’라는 또 다른 팻말을 하나 더 들고 있다.
이 책의 한 메시지가 세대 간 불평등의 증대라면, 또 다른 메시지는 한국형 위계 구조의 위기다. 이 책은 내가 ‘네트워크 위계’라고 부르는, 동아시아 특유의 연공제와 유연화된 노동시장 위계 구조에 기반을 둔 수취 체제의 -부정의injustice가 아니라- 작동과 그 성과(효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책 말미에서 나는 세대 앵글을 틀어 위계 구조 비판으로 논의를 전환할 것이다. 이 프로젝트에서 세대는 위계에 대한 비판을 위한 ‘앵글’로 재해석된다.
9
나는 한국 사회가 되풀이하는, 반복적으로 만들어내는 이 ‘세대의 운-행운과 불운’을 제도적으로 평탄화시켜야 한다고 본다. 동시에, 세대의 정치를 반복적으로 소환하는 이 사회의 위계 구조 또한 약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프롤로그 = 14
Q 왜 ‘세대’와 ‘불평등’을 연결시키는가? = 14
14
금융위기는 각 사회집단별로, 각각의 계층과 세대 집단에 다른 흔적을 남긴다. 안전한 거대 조직(예를 들면 공무원과 대기업 정규직 직원들)에 이미 밥그릇을 확보하고 20~30년의 적당한 근속 기간과 자산을 확보하고 있는 이들에게 금융 위기는 하늘이 준 기회다. 이들은 조용히 폭락한 부동산 시장의 급매물들을 찾아 나설 것이다. … 금융 위기를 버텨줄 거대 조직에 몸담고 있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 특히 이제 막 직장을 구하러 학교 문을 나서는 청년들에게 금융 위기는 지옥이다. 10여년의 교육 투자를 마무리하는 졸업식은 한숨으로 뒤덮이고, 주고 받는 꽃다발은 어색한 위로의 말들 속에서 향기를 잃을 것이다. 1997년과 2008년의 겨울에 우리가 서로 다른 위치에서 이미 목도한 금융 위기의 흔적들이다.
15
오늘의 20대가 보다 공정한 기회를 염원하며 든 촛불과, 민주화 투쟁에 젊은 날을 바치고 퇴행하던 민주주의를 구하고자 오늘의 50대가 든 촛불의 의미는 사뭇 다르다. 우리는 동일한 연대기적 시간을 살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상이한 시대를 각기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세대론은 바로 이러한 객관적 기회에 대한 주관적 경험이 서로 다르다는 데서 시작된다.
16
한국 전쟁 및 산업화 세대와 386세대가 여러 번의 충돌을 거듭하며 헤게모니 쟁탈전을 벌인 결과, 어느새 한국전쟁 및 산업화 세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386세대가 한국 사회 권력 구조의 정점에 올라 있다. 하지만 386세대가 권력을 잡고 민주주의가 공고화된 오늘날, 우리 사회는 여전히, 어쩌면 더욱 심화된 ‘불평등 구조’를 가진 사회가 되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는 심화되었고, 비정규직은 신분화되어 사회적 낙인이 찍히고 있다. 부동산 가격의 주기적 상승으로 상층 자산계급과 중하층 자산계급의 격차는 나날이 확대되고 있다. 청년 실업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교육은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아닌, 계층 고착화의 기제로 바뀌고 있다.
17
이 책은 ‘민주주의의 완성’과 ‘불평등의 심화’가 공존하는 한국 사회의 모순을 해명하기 위해 ‘세대론’, 즉 ‘세대의 정치’를 이야기한다.
이렇게 세대별로 각기 다른 ‘이념과 정체성 그리고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상호 경쟁하며 쟁투하는 과정에서, 각 세대별로 다른 수준의 응집성을 갖는 ‘세대 엘리트 집단’이 출현한다. 나는 이러한 세대 간 다른 수준의 응집성이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18
이 책은 세대 간의 다른 경험과 그에 기반한 ‘세력화’의 과정이 어떻게 불평등을 만들어내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어쩌면 이것은 세대론을 ‘문화’ 혹은 ‘담론’으로 소비하던 그간의 시도들과 단절하고, 세대론을 ‘물질화’시켜 경제적 자원 배분의 중심축으로 삼으려는 시도다.
나는 세대의 정치가 불평등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 한 가지 이야기를 덧붙인다. 그것은 내가 ‘네트워크 위계’라고 부르는, ‘한국형 위계 구조’가 진화하는 과정이다. 세대의 정치는 바로 이 한국형 위계 구조의 진화와 맞물리며 그 힘을 발휘하게 된다. ‘위계’란 무엇인가? 이 책에서 ‘위계 구조’는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쓰일 것이다. 하나는 유교 문화에서 유래하여 동아시아 관료제의 기본구조를 형성하는, 나이에 기반한 조직 내부와 외부의 ‘연공 구조’다.
다른 하나는 세계화와 함께 도입되어 확산된 노동시장 유연화 기제인 파견직 및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지배, 종속 관계, 그리고 노동조합을 통한 3중의 위계 구조가 중첩되는 과정(이철승 2017)이다.
19
나는 동아시아적 연공 구조와 세 계층으로 나뉜 노동시장 지위가 상호연계와 결합을 통해 얽히고 쌓여 제도화되고 있으며, 동시에 동아시아적, 봉건적 신분제를 현대로 소환하여 ‘신분계급화’되고 있다고 본다.
왜 신분계급화가 문제인가? … 둘이 하는 일은 같은데, 받는 보상과 보호는 다른 것이다. … 한국형 위계 구조에 의한 신분계급화는 완성된다.
20
그렇다면 ‘세대’와 ‘위계’는 어떻게 맞물리는가? 나는 특정 세대가 자신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혹은 세대의 기회(운)를 통해 이 위계 구조의 상층을 ‘과잉 점유’하면서 세대와 위계가 얽히게 된다고 주장한다.
20
‘위계’가 연공에 기반하여 조직 구성원의 직무 간 수직적 명령과 복종 및 보상 체계를 규정하는 생산과 수취의 기제라면, ‘네트워크’는 조직 상층 지도부가 조직의 목표 달성과 자신의 권력 유지 및 재생산을 위해 조직 내부와 외부에 수평적으로 구축한 사회적 연결망이다.
Q 불평등의 세대, 무엇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 22
22
(민주화 세대) 이 세대의 정체성은 자생적이고 자발적인 민주화 운동을 통해 사회 변동을 이끌어낸, 능동적 정체성이다.
28
결국, 이 책은 ‘세대론’의 프리즘을 통해, 그리고 ‘한국형 위계 구조’라는 틀을 통해 한국 사회의 ‘계층화 과정’ 및 ‘불평등 구조’를 해부하는 프로젝트다.
우리는 방송과 신문에서 불평등의 수치들을 ‘현상’으로 접하지만, 그 수치들은 이러한 무수한 전략들이 쟁투하는 과정의 최종 결과물일 뿐이다.
1장 386세대의 부상 – 권력의 세대교체 = 31
Q 왜 ‘386세대’를 이야기하는가? = 32
33
바야흐로 386의 시대라고들 한다. 어떤 의미에서 그런가? 왜 386세대가 권력의 중추에 진입했는데 언론, 학계, 관계, 재계가 덩달아 들썩이는가? 그것은 그들의 ‘동년배’가, 그들의 ‘친구의 친구’가 권력을 쥐었기 때문이다. 친구가, 친구의 친구가 권력을 잡았다는 것은 그만큼 나의 구너력도 증대되었음을 의미한다(Bonacich 1987).
33
산업화 세대의 네트워크는 ‘북한’과의 대결 속에서 ‘미국’의 후원 아래 ‘일본’을 따라잡고 극복하고자 하는, ‘체제 외부의 잠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공동체의 이념’을 기초로 만들어졌다.
반면, 386세대의 네트워크는 산업화 세대의 주도하에 불균형 발전을 초래한 권위주의적 폭압과의 대결 산물이다. 그것은 ‘체제 내부의 현실적 억압 구조를 극복’하고자 하는 ‘평등주의’이념을 자양분으로 성장했다. 20대에 1980년대를 보내며 이들이 구축한 정치 동원의 네트워크는 ‘(혁명적)평등주의’와 ‘(아래로부터의) 민족주의’를 그 이념으로 채택했으며, 대학과 노동 현장을 중심으로 지식인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현실에 뿌리내리게 된다. 이들의 네트워크는 20대에 ‘하방운동'(Lee 2016a, 2016b)을 거쳐, 30대에 각종 시민사회 단체와 정당을 건설하고 40대와 50대에는 정치 및 경제 권력을 장악하기에 이른다.
34
왜 이 386세대의 네트워크가 문제가 되는가? 첫째는 그 규모다. 이 베이비붐 세대는 그 규모에서 다른 모든 세대를 압도한다. 둘째는 그 네트워크의 응집성이다. 이 세대의 네트워크는 ‘평등주의’ 혹은 ‘분배 정의’라는 기치 아래 20대 초부터 선후배 및 동년배 간 지하 이념 서클, 문화 서클, 학생회, 동아리, 동문회 등의 조직을 중심으로 구축되었다. 따라서 이 세대의 네트워크는 다른 어떤 세대의 그것보다 더 조밀하고 이념적으로 균질하며 체계적이다.
Q 386세대는 어떻게 권력을 형성했는가? = 37
42
유교 윤리의 핵은 이러한 배제된 권력층에게 ‘기회’를 제공한다. 바로 유교 윤리에 내재된, 권력자의 ‘수행 성과’ 에 대한 항상적인 평가가 그것이다.
43
중국의 왕조들이 끊임없이 명멸하고, 제국을 수립하자마자 혹은 100~200년 안에 사라지기도 했던 배경에는 집권자의 ‘수행능력’에 바탕을 둔 ‘유교적 정당성론’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45
1990년대 초반은 민주화 운동의 중심 세력이 구舊사회주의권의 몰락과 함께 혁명적 사회주의 이념에서 절차적 민주주의 이념으로 ‘개종'(정수복 1993)한 시기다. 80년대가 ‘혁명의 에너지’를 잠재한 ‘좌절된 혁명’으로서의 민주화 시기였다면, 90년대는 그 에너지를 지하에서 지상으로 끌어낸 시기다. 80년대 노동자 민중을 (혁명투쟁의 전선으로) 설득하기 위해 ‘하방’했던 386세대는 90년대에 이르러 시민사회 단체의 ‘CEO’ 혹은 ‘조직, 사무총장’으로 -집단적으로- 변신한다.
55
이 세대의 권력 자원은 이들이 권위주의 국가에 대항하여 90년대부터 구축해온 시민단체들로부터 기원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Q 386세대의 약속은 지켜지고 있는가? = 56
57
‘민주주의’를 기치로 내걸었다는 점에서, 386세대는 과거의 배제된 사대부층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민주주의’의 원리를 체화한 집단이란 의미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게임 원리’에 맞춰 권력투쟁을 하는 집단이자 세력이란 의미다. 이 세대는 ‘절차주의자’들이란 점에서 형식적 민주주의자들이며, 제도 변화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집단적 믿음’을 공유한 세대란 점에서 (대만의 당외 세대와 함께) 동아시아 최초의 ‘절차적 제도주의자’들이다.
59
시민사회와 노동운동의 중핵이자 중추였던 대기업 및 공기업 노조들은 불평등의 ‘치유자’가 아닌, 불평등 구조의 ‘생산자’ 혹은 ‘수혜자’로 변모했다.
61
시민사회의 주요 인사가 권력에 진입한 예는 90년대 김영삼 정부 때부터 심심치 않게 목도되던 현상이다. 정권 교체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그 경향은 더욱 가속화되었고,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폭압과 실정에 맞서 싸우며 재결집했던 시민사회 진영은 2010년과 2014년 지방선거 그리고 2017년 조기 대선 국면을 승리로 이끌면서 정치권으로 대거 진입했다. … 시민사회가 국가화된 것이다.
62
세대의 프리즘으로 한국의 정치 구조를 들여다보면, 30년 주기로 권력 교체가 반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소세대'(10년 단위로 끊을 때)가 리더 세대로 나서면, 그 아래 두 ‘소세대’ 정도가 하부 지지 구조를 이룬다. 1930년대생들이 리더 세대로 떠오르자, 1940년대와 1950년대 초반 출생 세대가 아래에서 그들을 떠받치며 ‘산업화’를 목표로 한 ‘대세대’가 만들어졌다.
63
386세대라는 ‘시민 군대의 장교들’에 대한 ‘지지 기반’은 바로 아래의 1970년대 및 1980년대 출생 세대들에게서 발견된다.
65
따라서 촛불혁명은 세대론의 틀로 보면, 1920년대 후반 및 1930년대 출생 세대의 주도로 쿠데타를 통해 권위주의 발전국가를 수립한 70~80년대의 ‘세대교체’와 그 구조적 패턴만은 유사하다. 두 세대 모두 50대에 이르러 ‘세대의 목표, 과업’을 이루기 위한 정치적 헤게모니를 극대화했다는 점에서 그러하고, 그 바로 아랫세대의 전폭적 지지와 더불어 세대교체를 완성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하나의 ‘대세대’는 그 내부에 중위 투표자 그룹을 포함한다. ‘중위 투표자’란 소득이나 이념과 같은 유권자의 특정 성향 변수의 중간의 위치하며, 당대의 가장 중요한 이슈에 관해 자신들의 선택에 따라 ‘다수’를 구성할 수 있는 유권자 집단을 의미한다(Downs1957; Meltzer & Richards 1981).
90년대의 거의 모든 선거에서 386세대는 이 ‘세대 연대’를 구성하는 데 실패했다. 당시의 40-50-60대를 구성했던 산업화 연대가 중위 투표자층의 대부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1997년과 2002년 대통령 선거의 승리는 산업화 연대 내부의 분열 덕에 ‘신승’한 것이지, 386세대 자체의 동력으로 따낸 승리가 아니었다. 2010년대에 와서야, 386세대는 산업화 세대를 압도할 수 있는 자체 동력을 확보하게 된다.
민주화 시민 군대의 하부 지지 세력인 현재의 30대와 40대가 강력한 투표자 블록을 형성하여 386세대를 떠받치게 되었고, 인구구성에서 산업화 코어 세대가 생물학적으로(노령화와 사망에 의해) 축소되면서 386 대세대가 산업화 대세대에 비해 (유권자의) 수와 결집력에서 우위에 서게 된 것이다.
66
연공서열에 따른 정치 구조에서 반란의 씨앗은 리더 세대의 바로 아래에서 형성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권력 쟁취를 위한 연합에서 권력에 대한 약속은 공유될 수 있지만, 권력 그 자체는 나누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균열은 리더 세대의 약속위반에서 생겨난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도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은 경우는 드물다. 인류는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하기 위해 반대세력은 물론, 내부의 경쟁 세력 또한 잔인하게 숙청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반란은 권력을 쟁취한 그룹이 자신들의 ‘계보’ 위주로 권력을 재생산함에 따라, 권력 쟁취 연합과 그 지지자 그룹들과의 연대 구조가 와해되면서 시작된다.
67
권력 내부의 코어 그룹은 모든 전리품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가장 충성도가 높고 배신의 가능성이 낮은, 계보 위주의 자기 세력으로 권력을 재생산하고 싶어한다.
Q 386세대의 리더들은 어떻게 권력을 분배하고 있는가? = 69
74
특히, 오늘날 노동시장에서 고통받고 있는 청년 세대(20대와 30대)와 자신들의 권력 쟁취를 위해 바로 아래에서 희생한 후배 세대인 40대, 그리고 권력의 사다리에서 원칙적으로 배제당하는 한국형 위계 구조의 최대 희생자 집단인 여성과 비정규직을 대표하지 못한다면, (50~60대 대구,경북 남성들의 권력 독점체였던) 산업화 세대의 정치권력과 무엇이 다른가?
한국 시민사회를 형성하고 그 발전을 주도했던 386세대가 국가권력을 점유하면서, 시민사회가 급속도로 쇠퇴했다는 점이다. 서구적 의미의 혁명과 대의민주주의 그리고 시민운동을 바닥부터 일구었던 이 세대가 권력에 진입하며 남겨놓은 빈자리는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듯 싶다. 정치권력에서 그러했듯이, 이 세대는 시민사회에서도 세대를 뛰어넘는 인적 자원과 가치를 재생산하는 구조까지는 구축하지 못했다. 한국의 시민사회 운동과 민주화 프로젝트는 이런 면에서 한 세대에 의해 일구어졌지만, 그 세대에 의해 문이 닫힌 한시적 프로젝트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한 세대가 스스로를 ‘제도의 일부’로 만들고 국가를 장악함으로써 비어버린 시민사회는 누가, 어떤 이슈로, 어떤 조직으로 채우고 있는가? 시민사회는 비어버린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이슈와 주제, 세력이 형성되고 있는 와중인가?
2장 세대와 불평등 – ‘네트워크 위계’의 탄생 = 77
Q 386세대는 어떻게 ‘새로운 불평등 구조’를 탄생시켰는가? = 78
79
산업화 세대가 ‘자유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파시즘적 통치와 통제를 일삼았다면, 386세대는 실질적, 절차적 의미의 ‘자유민주주의’를 이 땅에 도입한 첫 세대다. 자유주의는 비로소 민주주의를 만난 것이다. 자유주의가 파시즘과 결별하고 민주주의를 만나게 되기까지, 이 세대가 흘린 피와 눈물에 대해 다른 모든 세대는 ‘경의’를 표할 만하다.
하지만 이제 평가의 시간이다.
81
세계화와 민주화는 산업화 세대의 ‘정당성’을 뿌리부터 뒤흔들었다. ‘세계화’가 산업화 세대의 성장주의와 연공에 바탕을 둔 위계 구조에 균열을 일으켰다면, ‘민주화’는 산업화 세대가 구축해온 국가와 기업 간의 유착 관계(협력, 부패)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83
동아시아적 맥락에서 1987~1997년의 정치는 ‘세대교체의 정치학’이다. 유교 사회는 나이와 연공으로 명령 계통상의 위계구조를 만든다.
… 마지막으로, 조직 최상부의 지도자급 인사들은 ‘때 되면’ 물러나준다. 이 피라미드는 위로 올라갈수록 자리 수가 줄어들지만, 위로 올라갈 ‘기회’가 공평하다면 아래의 다수는 이 지배 구조를 받아들인다.
84
이 1000명이 둘이 되는 과정을 잘게 쪼개는 것이 관료제의 원리다. 둘 중 하나가 승진한다면, 해볼 만한 경쟁이다. 바로 한 단계 올라가는 경쟁이지만, 섬길 사람은 줄어들고 보상은 커지고 부릴 사람은 많아지니 권력의 맛은 달콤하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 피라미드 구조 자체가 바뀐 적은 없다.
다만 (앞 장에서 논의했듯이) 다른 사회와 달리, 유교 사회는 ‘나이 순’의 룰을 ‘대체로’ 지키려고 노력한다. 이 ‘나이 순’이라는 유교 사회의 기본 원리는 시장 원리와 충돌한다. 가장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팀을 리드해야 하건만,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 리드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축구를 예로 들면, 메시가 리드해야 하는 자리에 50~60대의 마라도나나 펠레가 주장 자리를 꿰차고앉아 명령만 내리고 있는 구조인 것이다. 따라서 능력 있고 야망으로 가득 찬, 개인주의를 체득한 젊은이에게 유교 사회는 ‘헬조선’일 수밖에 없다.
85
개인의 능력과 아이디어를 찾아내 보상하려는 자유주의적 시장 기제는 이 유교 사회의 연공 문화를 깨뜨리고자 한다.
유교식 연공 구조는 ‘다수의 합의’를 도출해내고, 조직을 안정시키며, 개인들을 ‘집단적 목표’로 이끄는 데 다른 어떤 조직 구조보다 탁월한 역할을 한다. ‘개인’은 매몰되지만 ‘집단’이 사는 구조인 것이다.
‘개인’은 숨이 막힐지언정 ‘집단’은 생존하는 집단주의 구조, 그것이 벼농사 생산 체제에서 진화하여 20세기 산업자본주의까지 수천 년에 걸쳐 이어지는 동아시아 특유의 협업 양식이다.
산업화 세대가 이 집단주의 위계의 문화를 경제 발전을 위해 기업과 관료 조직에 적용했다면, 386세대는 이를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학생운동과 시민단체에 적용했다고 볼 수 있다.
86
한국 현대사에서 40대에 상승 사다리가 끊기자 조직을 뒤엎는 도박을 감행한 이들이 산업화 세대의 리더들이다. 박정희는 쿠데타로, 김대중-김영삼은 40대기수론으로 ‘연공의 법칙’을 깨버렸다.
88
해본 자가 계속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며 쥐고 놔주지 않으니, 아랫사람으로서는 경험할 기회가 없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기업 조직 내부에서도 이러한 ‘경험과 노하우의 세대 독점’이 일어났다.
386세대가 국가, 기업, 시민사회를 가로질러 건설한 인적 네트워크는 한국 현대사에서 유례없는 견고한 것이 되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왜 1987년 민주화는 또 다른 ‘세대권력’을 허용했을까? 이 세대권력은 그 이전의 것과 어떻게 다른가? 그들은 유교관료제의 원칙을 따를 것인가, 민주주의의 원칙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둘 다 따르지 않을 것인가?
이 질문들에 답하려면, 1987년부터 시작된 정치적 민주주의만 봐서는 부족하다. 정치는 결국 ‘분배’의 문제로 귀착된다. ‘세대의 문제’는 ‘세대 간 분배의 문제’인 것이다.
Q 386세대는 어떻게 시장을 장악했는가? = 90
92
1997~1998년 금융 위기는 기업 내에서 이들의 권력을 극적으로 강화했다. 시민사회와 정치권의 386세대가 유교적 관료제와 결합한 권위주의에 ‘반체제 운동’으로 저항하며 ‘재야’에서부터 대항권력을 구축한 반면, 기업의 386세대는 1997년 금융 위기로 인해 ‘저절로’ 권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먼저, 1997년 금융 위기의 폭탄은 산업화 세대의 머리 위에서 폭발했다.
반면, 30대로 기업 조직의 밑바닥부터 중간 허리를 구성하고 있던 386세대는 이 칼날을 무사히 비켜나며 대부분 생존했다. 그런데 이들이 의도하지 않은, 권력을 강화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요인은 그다음 세대의 ‘전멸’로부터 비롯됐다. 1997년 금융 위기에 닥쳐 기업들은 짧게는 3~4년, 길게는 10년 가까이 ‘정규직’ 사원을 채용하지 않는다.
386세대는 졸지에 아래위가 모두 잘려나가면서 기업 조직에 사실상 홀로 남겨진 ‘거대한 세대의 네트워크 블록’이 되어버린 것이다.
93
이들은 산업화 세대와 달리 대학에서부터 컴퓨터 정보통신의 기본 원리를 체득했고, 대학을 졸업한 다음에는 정보혁명의 언어와 논리를 최초로 이해한 세대였다.
왜, 어떻게 금융 위기 이후에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자유주의 원리와 어긋나는 ‘신분적 위계화’가 더 급속하게 진행된 것인가? 결론을 조금 일찍 이야기하면, 나는 이를 자본과 386세대 (대기업) 노동조합 리더들 간의 ‘의도하지 않은 공모’라고 해석한다.
99
노동시장에서 임금 불평등이 나타나는 세 요인은, 첫째 개별 노동자가 속해 있는 기업 조직이 대규모인가 아닌가(기업 규모 혹은 사업체 규모), 둘째 고용 지위가 정규직인가 비정규직인가(고용 형태), 셋째 사업장에 노조가 존재하는가 여부다.
102
사업체 규모로 이난 계층 내부(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정규직 간)의 임금격차보다, 고용 형태로 인한 상층과 중층 계층 간 (대기업 정규직과 대기업 비정규직 간) 의 임금격차 혹은 노조 존재 여부로 인한 계층 간 의 격차가 더 큰 것이다. 이 상층 계층은 전체 임금노동자의 약 20퍼센트를 차지한다.
나는 결합노동시장 지위가 세 그룹으로 분절되는 과정이 386세대의 위계 구조 수립 과정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특히, 이 세대가 상층 노동시장의 다수를 점유하며 중하층 노동시장 지위 그룹들과 스스로를 차별화하는 과정 자체가 ‘네트워크 위계’의 출현 과정이며, 한국 사회 불평등 구조의 심화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Q 386세대는 얼마나 오래, 얼마나 많은 부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 = 103
106
‘100대 기업 이사진 시기별-세대별 분포’ 참고
107
그런데 가장 최근인 2017년 자료를 보면, 한 세대가 그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연공제 패턴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50대와 60대의 이사진 비율은 정치권에서 동일 세대들이 국회를 장악한 비율(83퍼센트)과 비슷하면서 더 높은 86퍼센트에 이른다.
115
사실, 세대에 따른 ‘네트워크 위계’의 형성, 그로부터 수혜를 받는 과정은 ‘상층’ 노동시장에 한정된 이야기다. ‘386세대’라는 담론도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들을 지칭하여 만들어진 사회적 ‘집단화’의 일환일 뿐이다.
116
한국 사회에서 ‘세대’가 아니면서, ‘세대’와 함께 각 개인들의 일상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기준, 즉 개인들이 정보와 자원을 동원하고 협력을 통해 개인 삶의 복지를 높이기 위해 의지하는 네트워크는 어떤 것일까? 아마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독자의 다수가 같을 것이다. 그것은 ‘학연 혹은 학벌’이다. 산업화 세대도, 386세대도, 포스트 386 세대도 이 원칙에는 큰 변화가 없고 앞으로도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아 보인다.
119
하지만 같은 세대 안에서 학력에 따른 소득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한국만이 아닌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세계화로 인한 급속한 기술 발전이 보다 많은 교육을 받고, 더 높은 기술을 보유한 개인들에게 더 많은 수혜를 안기기 때문이다.
121
1960년대 초반 출생 세대가 90년대 초반에서 후반에만 (금융 위기에도 불구하고!) 26퍼센틍의 소득 상승을 누린 데 비해, 이후 세대들은 (소득 상승의 황금기인 30대에) 에외 없이 한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한다.
Q 386세대와 다른 세대와의 소득 격차는 얼마나 큰가? = 124
130
요약하면, 386세대의 리더들이 구축한 ‘네트워크 위계’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다른 모든 세대를 압도하는 강력한 권력 행사의 구조다. 이 세대는 규모, 응집성, 자체 보유 자원과 동원 가능한 (다른 세대와 사회 그룹의) 자원의 모든 면에서 그 윗세대와 아랫세대를 압도한다. 그런데 이 거대 세대의 탄생은 의도된 것은 아니었다. 시민사회의 역사가 박약했던 한국 사회에서 강력한 권위주의 국가에 대항하고자 20대부터 ‘세대 네트워크’를 구축한 자발적 활동과 세계시장으로의 한국 경제의 도약기가 맞물린, 의도하지 않은 결과였다.
132
정치권력과 시장권력을 모두 장악한 386세대가 불평등을 악화시키고 있는가? 다시 말해, 한국 사회에서 ‘출생 세대’는 불평등이 중요한 요인으로 부상했는가? 데이터는 ‘그렇다’라고 답한다. 그간의 세대 담론은, 데이터 없는 ‘아우성’이었다. 이전 시대와는 다른 메커니즘이 자신들의 삶을 옥죄고 다시 설계하고 있음을 알아챈 것은 젊은이들, 오늘날의 20~30대다.
134
시장에서 지위 상승을 위해 분투해온 386세대는 (정치권의 386세대에 비해) 균일한 이념 집단이 아니다. 화이트칼라의 세계에서 경쟁을 통해 기업 조직의 정점에 오른 386세대와, 블루칼라 생산직의 세게에서 연대를 통해 ‘전투적 조합주의’ 노조를 건설한 386세대는 ‘나이만 같을 뿐’ 이념적으로는 다른, 세대 내의 상호이질적인 집단들이다.
134
한국의 ‘시장’은 자유로운 개인들의 자유주의적 경쟁 시장이 아니라, 위계적으로 분단되고 분절되어 이념, 가문, 학벌, 인맥으로 엮이고 통합된 ‘동아시아 위계 조직’들 간의 카르텔에 가깝다. 앞 문장의 ‘시장’을 ‘정치’로 바꿔도 진실 명제다.
135
우리는 시장자유주의에서 경쟁의 승자는 더 큰 보상을 패자는 더 가혹한 고통을 받는 데 반해, 사회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이 승자와 패자 간의 격차가 훨씬 작고 패자를 배려하는 복지제도가 발전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동아시아적인 한국형 위계 구조는 어느 쪽에 가까울까? 한국형 위계 구조에서 20대는 치열한 경쟁에 몰두하고, 일단 위계 구조에 진입한 후에는 승자와 패자 간의 소득 차이가 시장자유주의 못지않게 커지며, 위계 간 이동성은 경직된 노동시장으로 악명 높은 보수주의(독일) 체제에 근사하고 있다. 패자에 대한 안전망은 영미권의 시장자유주의만도 못하다.
3장 산업화 세대의 형성 – 불평등의 탄생 = 137
Q 산업화 세대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 138
139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근대화가 빠르게 일어난 사회, ‘따라잡기 근대화’를 통해 근대화를 ‘속도전’으로 감행한 사회에서 전통과 근대, 탈근대의 현상이 동시적으로 관찰될 때 이를 설명하기 위해 쓰는 표현이다.
140
이와 달리 ‘동시성의 비동시성’은 ‘동일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상이한 체험’을 의미한다.
141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사라지는 것들과 새로 생성되는 것들이 교차하는 운 좋은(혹은 운 나쁜) 스냅 샷이라면, 동시성의 비동시성은 ‘역사’라는 거대 격변을 우연히 공유한, 하지만 그 역사의 폭력에 속절없이 몸을 내맡긴 인간 군상들의 처절한 세대별 적응기다.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근대화 이론의 철학, 미학적 압축어라면, 동시성의 비동시성은 세대론의 클리셰인 것이다.
142
누군가가 내게 비동시성의 동시성과 동시성의 비동시성 모두를 가장 극명하게 경험한 세대를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1920년대 후반~1930년대 후반 출생 세대를 말할 것이다. 10대 초반에서 20대 초반에 한국전쟁을 겪었으며, 30~40대에 권위주의 발전국가에 의해 주도된 경제 도약에 참여했고 그 결실을 향유했다. 50대에는 민주화를 겪었으며 IMF 금융 위기와 함께 노동시장에서 서서히 물러난 세대다. 이 세대는 일본의 태평양전쟁 세대(1920년대생)에 비견할 만하다.
이 세대는, 전쟁을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체험하며 ‘생존주의’를 몸과 마음에 각인시켰다. 그들이 원래 지니고 있던 농촌의 따뜻하고 결속력 높은 씨족 공동체 안에서 배양된 협력과 배려의 윤리에 더해, 전쟁을 겪으며 훈련된 냉혹한 생존주의는 한일 양국의 발전국가가 이후 세계시장을 무대로 펼쳐지는 2차 전투를 위해 동원할 ‘동아시아적 회사형 인간’의 모태였다. 이들만큼 ‘부지런하고’ ‘협력에 능하며’ ‘국가의 신민’으로서 충실하게 과업에 복무한 세대 집단을 찾기란 쉽지 않다.
145
역사가 그렇듯, 출생 세대도 ‘얕은 사건사’에 대비되는 심층의 ‘깊은 구조’로서의 경험을 구축한다. 프로이트와 발달심리학자들의 연구를 따라, 이 깊은 구조로서의 경험(원체험)은 어린 시절에 형성되어 생애 전체에 걸쳐 변하지 않는 틀로 자리 잡는다고 가정해보자. 이들이 어린 시절에 겪은, 다른 세대와 구별되는 원체험으로서의 경험은 ‘제국 신민’ 교육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오늘 날 살아 있는 세대들 중 거의 유일하게 한자와 일본어를 모두 읽고 쓸 수 있는 세대다.
147
근대 교육의 목표는, 지휘관의 신호에 정확히 반응하며 한눈파는 개인에 의한 ‘다른 동작’과 ‘해태’가 발견되지 않는, 즉 모든 개개인이 거대한 유기체의 일부로서 정확히 움직이며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는 ,일사불란하게 똑같은 호흡과 리듬을 반복하는 ‘동일화된 신체’를 주조해내는 것이었다.(다츠루 2018).
… 나는 이 ‘일제식 교육에 대한 짧은 경험’이 다른 세대와 차별되는 그 세대만의 ‘자원’이자 ‘자본’이 되었을 가능성에 주목한다. 이 세대의 독특한 ‘자원’은 그들만의 생존 투쟁을 위한 ‘자양분’이자 ‘자산’이 될 것이다.
148
산업화세대, 즉 1930년대 출생 세대는 산업화를 (처음으로 이룩했다는 의미에서) ‘산업화 세대’로 불리지만, 사실은 마지막 벼농사 세대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149
서구에서 200여 년에 걸쳐 일어난, 산업화로 인한 ‘지리적 대이주great migration between sectors'(Kuznets 1955) 시기에 1930년대생들은 막 가족을 꾸린 상태에서 한국 자본주의의 심장인 서울로, 부산으로, 인천으로 대이주를 감행한 것이다.
왜 이 ‘대이주’가 문제인가? ‘이주’는 보통 다른 문화와 언어를 가진 다양한 인종과 민족 집단이 ‘섞이면서’ 동질적인 사회와는 전혀 다른 시스템을 만들어내기에 한 사회에 엄청난 도전을 야기한다. ‘이민’이 사회의 동력인 영미권 사회에서 불평등과 계층화가 출신 대륙과 문화권의 차이를 그대로 반영하며 뿌리 깊은 ‘인종주의’를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이주’는 사회구조에 ‘계급’이나 ‘성’ 못지않은 심대한 충격과 균열을 일으킨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경제 부문 간의 이주’다. 경제학자 쿠즈네츠(1955)가 불평등의 근원으로 지목한 ‘부문과 이주’는 산업화로 인해 발생하는 농촌과 도시 사이의, 다시 말해 1차 산업과 2차 산업 사이의 노동력 이주를 의미한다.
150
남한이라는 좁은 땅에서 산업화, 도시화로 시작된 대이주와 국제적 대이주 사이에는 차이점과 유사점이 공존한다. 차이점은 국가 간, 문화권 간 이주와 국가 내 이주는 ‘이질성의 규모와 차이’에서 확연히 구분된다는 것이고, 유사점은 두 이주 모두 ‘이주자’가 이전 사회와 문화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지닌 채로’ 새로운 사회의 구성원이 되고자 한다는 것이다(Portes & Rumbaut 2001).
151
… 이런 점에서 1930~1940년대 출생 세대는 1960년대 이후 출생 세대와는 질적으로 다른 집단이다. ‘민주화 투쟁;에 대한 요구와 기억이 형성되기 훨씬 이전에, 이들 다수는 ‘농사일’을 온몸과 기억에 아로새긴 집단이다. ‘농사일’에 대한 이 세대의 ‘원체험’이 한국의 산업화와 도시화에서 가장 중요한, 시민사회의 바닥을 이루는 ‘협업과 협력의 윤리’를 구성했다.
이들의 협업 윤리와 협업 양식이 농민 문화에 뿌리내리고 있다고 보는 것이 왜 중요한가? 그것은 이 세대가 도시로 이주해 정착했지만, 도시에 이웃을 만들고 일터를 조직한 ‘방식’, 즉 사무실과 공장, 동네에서 자원을 동원하고 사업을 일구고 동료를 만들고 협업 네트워크를 조직한 방식은 ‘동아시아 농민’의 정체성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152
구체적으로 ‘동아시아 농민의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집단주의collectivism’다. 탈헬름(Talhelm et al. 2014)은 이를 ‘밀 경작 문화’의 개인주의와 대비되는 ‘벼 경작 문화’의 집단협업주의로 개념화했다.
둘째는 내가 다른 글에서 개념화한 ‘협업 속의 경쟁’이다(Lee & Talhelm 2019). 역시 벼농사에서 유래하는 이 ‘협업 속의 경쟁 시스템’은 동아시아 소농 시스템(이영훈 2016)과 벼농사 시스템(백남운 1999)의 문화적 상부구조다. … 함께 작업하면서 상대의 집안에 대해 속속들이 알게 된다. … 비극은, 동아시아 소농은 협업을 하지만 수확, 즉 수확물의 소유는 따로 한다는 데 있다(Greif & Tabellini 2010). … 경쟁의 승자는 부지런한 자일 것이다.
153
이러한 협업 속의 경쟁 시스템은, 세번째 정체성인 ‘비교와 질시의 문화’를 탄생시킨다. 상호 의존적인 집단협업의 문화 속에서 경쟁과 비교, 질시가 함께 싹트는 것이다. 함께 일했건만 나의 수확량이 더 적은 것을 확인할 때 부아가 치밀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이 상호 의존적인 경쟁과 질시의 문화를 벗어날 출구가 별로 없다는 데 있다.
-씨족 공동체가 얽혀 사는 한국의 농촌에서 출구는 없다고 봐야 한다. 씨족 전체가 만주로 이주하는 옵션도 일제강점기나 되어서야 출현했다. 기껏해야, 산으로 올라가 화전을 일구는 것이 조선 후기 소농들의 대안이었다.
154
마지막으로 네번째 정체성은 ‘협업 속의 경쟁’을 보다 효율적으로 작동하게 만든 ‘위계 문화’다. 나는 이 위계 문화의 기원을 또한 벼농사 체제에서 찾는다.
-또 다른 위계 문화의 기원은 전쟁을 통한 관료제의 진화(Tilly 1989)다. 이는 다음 책의 과제로 돌린다.
155
(벼농사)는 … 경제학자 베커(Becker 1993)의 표현을 따르면, 높은 기술 특정성 skill specificity으로 인해 장기간에 걸쳐 현장 기술 교육을 습득해야 하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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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의 연장자 우대 및 지배 시스템은 유교(공자와 맹자)가 어느 날 만들어 세상에 반포한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벼농사 체제가 진화해오면서 자연스럽게 생성된 ‘노동의 사회적 분업’과정인 것이다.
157
1930년대생들은 이 동아시아 벼농사 체제에서 유래하는 유교적 위계 구조를 몸과 마음에 새긴 채 도시로 상경한 첫 세대이면서, 농촌의 기억과 윤리를 몸에 지닌 마지막 세대였다.
Q 산업화 세대는 어떻게 불평등 구조를 싹 틔웠는가? = 158
160
함께 이주한 씨족 네트워크, 동향 이웃과 농촌의 동창 네트워크가 이들의 1차적 사회 연결망이었다면, 교회와 반상회, 경로당은 이들의 2차적 사회 연결망이었다. 1930년대 출생 세대가 농촌에서 가져와 옮겨 심은 두레와 품앗이 네트워크는, 도시에서도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162
박정희가 주도한 새마을운동 덕분에 이들이 효울적으로 ‘협업’할 수 있었는가, 아니면 효율적으로 ‘협업’할 줄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새마을운동이 성과를 거둔 것인가? 전자는 기존의 발전국가론 및 위대한 영도자론의 설명이고, 후자는 ‘벼농사 체제’론의 설명이다.
164
1930년대 출생 세대는 ‘생존의 세대’라고 이름 붙일 만하다. 이는 근래 사회과학계와 언론에서 청년 세대의 신자유주의적 (혹은 신자유주의에 의해 추동된) 경쟁 문화를 개념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생존주의'(김홍중 2015)와는 -당연히- 다른 것이다. 나는 1930년대생들에게 ‘생존’은 (이데올로기로서의) ‘주의’와 결합될 수 있는 것이 아닌, 그야말로 ‘종의 보존 본능’에 가까운 생태학적인 것이었다고 본다.
168
부동산 투자로 재미를 보지 못한 이 세대 농민공들의 상당수는 벌어놓은 돈이 떨어지고 나면 자식과 국가밖에 의지할 곳이 없는 것이다.
169
산업화 세대 내부에는 엄청난 불평등이 존재한다. 벼농사 체제의 기억과 기술을 몸과 마음에 각인한 채 상경한 첫 세대라고 했을 때 이야기되지 않은 것은, 이들이 농촌의 신분적 위계 또한 지닌 채로 상경했다는 점이다. 이들이 농촌 사회에서 몸과 마음에 품고 상경한 신분적 위계 표시는 두 가지다. 하나는 반상제의 기억이고, 다른 하나는 학벌이다.
171
1930년대 출생 세대는 이 학위를 세대 내의 신분이자 자격증으로 취급했다. 양로원이나 경로당에서조차 학벌을 기준으로 무리를 짓는 이들의 행위 양식은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 비롯된다. 반상제의 유산을 몸에 지닌 채로 상경한 이 세대가 도시에서 신분을 과시하는 유일한 수단이 학벌이었던 것이다.
173
학위에 따른 세대 내부의 소득 격차는 … 산업화 코어 세대인 1930년대생들과 바로 그 앞뒤 세대들(1925~1929, 1940~1944년 출생)의 대학 학위 소지자들과 비소지자들의 은퇴 시기 소득(가구원 수로 균등화된) 추이는 하구이를 갖고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상층과 하층이 확연히 갈린다.
175
오늘날, 연금이 전혀 쌓이지 않은 이 세대 내부의 자산불평등(자산 지니계수)은 0.7에 가까우며, 20대를 제외하고는 다른 어느 세대보다도 높다. 엄청나게 많은 자산을 축적하여 상속과 절세를 고민해야 하는 상위 10퍼센트와, 자산을 쪼개 소비로 사용하고 몇 푼 안 되는 기초연금에 의지해 연명해야 하는 90퍼센트의 하위 은퇴 세대 사이에서 발생하는 자산 불평등은 70~80년대 폭발적 경제성장기에 태동된 것이다.
177
이 세대는 불평등에 익숙한 세대다. 벼농사 체제는 신분제 질서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신분제에 대한 경험과 기억을 그대로 지닌 채 상경했다. 도시에서의 성공을 향한 경쟁과 질주는 이전의 신분을 유지, 회복하거나, 도시에서의 성공으로 만회하려는 노력에 다름 아니었다. 이들이 다음 세대에게 전수한 교육과 자산 투자, 그로부터의 결실이 거시 구조 수준에서는 신분제의 도시적 재생산이었으며, 개인 수준에서는 신분제의 상층을 점유하기 위한 게임이었던 것이다.
4장 세대 간 자산 이전과 세대 내 불평등의 확대 – 자산 불평등 = 181
Q 한국 사회에서 ‘세대 간 자산의 불균등한 형성’은 어떤 불평등 구조를 만들었는가? = 182
183
교육 자본을 증식하기 위한 기예를 배우고 전수하는 곳이 서울의 강남이다. 오늘도 한국인들은 그 기예를 습득하고자, 자식들에게 그 기예를 전수하고자 강남을 바라본다. 교육 자본의 습득은 복제가 가능하다. 목동과 상계동이 대치동의 대체재로 부상하는 이유다. 하지만 강남 3구라는 성곽은 대체제가 없다
185
한국의 자산 불평등은 미국, 일본을 비롯한 여타 선진국에 비해 높은 수준은 아니다. 자산이 축적되어온 시간이 아직은 여타 선진국에 비해 짧은 탓이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급속한 경제성장과 그 과정에서 짧은 기간 동안 형성된 ‘자산 불평등’에 대해 다른 어느 나라보다 민감하게 반응한다.
… 똑같은 노동을 했음에도 집을 어디에 장만했는지에 따라 자산 보유량이 억대 이상 차이가 나니, 자산 가격의 불균등한 상승에 민감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186
중산층 서민의 입장에서 자산을 증식해야 할 필요성은 사회안전망의 부재(1930년대 및 그 이전 출생 세대의 경우)와 부족 때문이다.
산업화 세대에게 자산 투자와 운용은 생존의 문제였던 것이다.
187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나라들에서는 자산을 축적하고 그것을 아랫세대로 이전하는 행위가 시민사회의 ‘윤리’로 등극하게 된다. 물론 복지가 발전되지 못한 나라에서는 자산이 전승되는 만큼, 빈곤도 대물림된다. 불평등과 빈곤이 자산의 세대 간 이전을 통해 ‘구조화’되는 것이다.
193
가지고 있는 종잣돈으로 가족이 거주할 집 한 채보다 더 투자할 여력이 있는 상층 자산계급(자산 이전계급), 평생 집 한 채 장만하는 데 성공한 다수의 중산층(자산 소비계급), 그리고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영희 가족과 같이 입주권이 있어도 입주금을 장만하지 못해 변두리로 밀려나는 도시 빈민 및 하층 노동자(자산 빈곤계급)의 대략 세 그룹으로 자산의 계층화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204
한국전쟁 이전 출생 세대가 1997년 금융 위기 이전까지 축적해왔던 자산의 상당 부분은 아랫세대가 노동시장에 나오기 전에 이미 그들 명의로 구입한 것이었고, 자식 세대가 결혼과 동시에 ‘가구주’로 등록되기 시작한 2000년대부터 이 세대의 자산 불평등이 통계조사 데이터로 잡힌 것으로 볼 수 있다.
206
자산의 대부분을 노후의 소비로 충당해야 하는 중하층 자산 계급과 달리, 상층은 자산의 일부는 자신이 소비하되 나머지는 다음 세대로 이전한다. 나는 그 결과로 인해 2000년대 이후 각 세대 내부의 자산 불평등이 급격히 증대했으며, 이 불평등의 정도는 오늘날 젋은 세대일수록 심할 것이라고 본다.
212
그 결과는 가구 세대 간 부의 이전으로 마무리된다. ‘역사적 세대’의 프로젝트가 ‘가문 세대’ 프로젝트로 탈바꿈된 것이다. 촌락형 위계를 근대화 프로젝트에 이식하고 작동시킨 산업화 세대는 이렇게 자신들의 소명을 다하고 무대에서 퇴장하고 있다. 그 소명은 그들이 농촌에서 물려받은 신분제적 위계를, 도시에서 자산을 축적하고 학벌을 획득함으로써 재생산하고나 극복하는 것이었다.
Q 386세대의 자산과 소득 구조는 산업화 세대와 어떻게 다른가? = 213
220
결과적으로 이들이 형성한 사적 자산이라는 안전망은 자산 형성기부터 불평등하게 조성되었으며, 사회안전망이 미비한 상태에서 보편적 건강보험 체제의 도입과 건강 지식의 보편화로 인해 연장된 수명은, 이 세대의 다수가 ‘자산을 소비’함으로써 빈곤층으로 서서히 편입되는 과정을 시간이 흐를수록 확장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마지막 ‘무연금 세대’와 최초의 ‘장수 세대’가 한 세대 안에서 겹쳐지며 발생한 희극이자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복지 체제가 발전하지 못한 사회에서의 고령화는 노인 빈곤율 세계 1위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21
불행히도, 공적 복지의 부재 전통과 결합된 ‘사적 안전 자산 형성을 통한 복지'(윤홍식 2017)의 문화적 DNA는 국민연금을 30년 이상 납부하면서 노후 복지의 기반이 형성된 386세대에게도 그 전통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223
따라서 자산 시장의 팽창과 그에 대한 ‘세대의 집단적 관심과 정보의 네트워크’는 중산층 노동자로 하여금 ‘일확천금’의 꿈을 잉태시키고, 자산 투자 성공담에 대한 집단적 ‘질투와 선망’의 사회 분위기를 조성한다. 뿐만 아니라 자산 가격의 급격한 상승은 자산 시장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중산층과 자산 투자 전쟁에 뛰어들 여력이 없는 저소득층을 의도하지 않은 ‘패배자’로 낙인찍으며, 자산 가격 상승에서 소외된 지역과 계층의 자산을 상대적으로 ‘저평가’함으로써 자산 불평등과 그에 기반한 계층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킨다. 이러한 ‘자산을 기반으로 한 복지 체제’의 확장이 노동 소득을 더욱더 자산 투자로 돌리려는 욕구는 증대시키고, ‘연금에 기반한 사회적 안전망’ 구축을 위한 복지세 납부에 대한 동의는 약화시킬 것이다(이철승 외 2018).
224
우리는 산업화 세대가 남긴 이 씨족 단위 각자도생 프로젝트의 유전자를 언제까지 전승시킬 것인가?
5장 한국형 위계 구조의 희생자들 – 청년, 여성 = 225
Q 한국형 위계 구조의 희생자는 누구인가? = 226
227
산업화 세대가 첫 삽을 뜨고, 386세대가 완성한 한국형 위계 구조인 ‘네트워크 위계’의 희생자는 누구인가? 청년과 여성이다. 이 교집합은 젊은 여성이다. 2010년대 후반 들어 급진화된 페미니즘이 부상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급진화된 페미니즘이 ‘미러링’을 하고 있는 젊은 남성 보수의 부상 또한 우연이 아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악화일로에 있는 청년 노동시장의 상황은 한국형 위계 구조와 그에 기반한 발전 전략 전체가 재생산 위기에 봉착했다는 한 징표다.
228
한국형 위계 구조의 위기는 약속했던 ‘과실의 분배’가 더 이상 효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공정하게 집행되지도 않는다는 데서 오고 있다.
Q 위계 구조의 희생자들 1 청년 = 230
233
오늘날의 (유사) 신분계급화는 과거처럼 반상제와 노비제라는 단순 신분계급을 통해서가 아니라, 보다 복잡해진 사회구조하의 다양한 경쟁 체제를 통해 이루어진다.
234
만일 경제활동자의 절대 다수가 이 세 지위 중 어느 한 지위로 진입한 다음 일생토록 별다른 변화 없이 그 안에 머문다면, 우리는 그 사회의 노동시장 구조가 ‘신분계급화’의 초입에 진입했다고, 다시 말해 ‘(유사)신분 계급화’했다고 볼 수 있다.
237
청년들에게 상층으로 들어가는 진입로가 좁아진 것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모든 청년이 중소기업에서 비정규직으로 자신들의 커리어를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상층 노동시장의 규모는 지난 10여 년간 조금씩 증가해왔고(20->23퍼센트), 386세대부터 시작된 출산율 저하로 인해 청년 세대의 노동인구는 오히려 감소해왔다. 따라서 상층으로 진입하는 청년 세대 전체 대비 세대 내의 상층 진출 비중은 오히려 늘어왔다.
239
(왜 그렇다면 청년 세대는 끝없는 피로감을 호소하는가?)
첫 번째 설명은, 이 세대의 높은 대학 진학율이 ‘실제 경쟁률’을 상승시켰다고 보는 것이다.
386세대가 산업화 세대에 비해 아이는 덜 낳으면서, 어떻게는 자식들은 대학에 보낸 결과다. 이들 세대가 자식의 수를 줄여 집중적으로 교육에 투자한 결과, 상츠응로 진입하기 위한 대학 졸업자들 간의 투쟁이 한층 격화된 것이다. 이 과잉 자격 세대는, 따라서 상층에 진입해야 할 자격은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진입하지 못하는 다수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240
두 번째 설명은, 이 세대는 공정성에 훨씬 민감하다는 것이다.
Q 위계 구조의 희생자들 혹은 경쟁자들 2 여성 = 242
246
이 세대의 여성들은 육아를 어느 정도 완료한 다음인 40대에 노동시장에 돌아오더라도 상층으로 재진입하지 못하고, 중하층 노동시장 -비정규직이나 파트타임-으로 진입했다. 따라서 386세대가 정치권과 시장에서 구축하고 향유한 상층 권력 네트워크는, 철저히 남성 중심 가부장 사회인 것이다.
247
이들 청년 여성들의 양성평등 사회를 위한 투쟁의 가장 큰 장벽은, 아마도, 오늘날 각 분야에서 최상부를 장악하고 있는 386세대 남성들일 가능성이 크다.
청년 여성들로서는 이토록 극단적인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따로 없을 것이다.
248
여성들이 겪는 조직 내 차별은 노동시장에서의 세대별 생존율 못지않게, 임금을 통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254
이러한 차이의 상당 부분은 이 연구에서 완벽히 통제되지 않은 기술 및 숙련도, 직종, 장기근속 후 승진 여부의 차이 때문일 수는 있다. 또한 세계화, 정보화, 기술 고도화 과정에서 여성이 소외되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격차가 확대되었을 수도 있다.
특히 상층 남성과 상층 여성 사이에서 시간이 갈수록 벌어지는 임금격차는, 교육받은 여성들이 오히려 더 큰 차별을 받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바로 한국형 위계 구조의 중요한 속성은 남성과 여성 간의 성차별이며, 2010년대에 이른 노동시장에서도 해소될 기미는 커녕 점점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Q 나가며 – 청년과 여성의 미래 = 256
257
이 책은 세대와 위계에 대한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아주 간명하게 정리한다. 그것은 386세대 리더들의 약속 위반 때문이다. 어떤 약속 위반인가?
그들은 산업화 세대가 농촌에서 옮겨온 ‘촌락형 위계’를 타파하는 대신, 그 위계를 한층 더 교묘하고 착취적인 것으로 대체 혹은 강화하는 데 협조 혹은 방관했다.
257
386세대 리더들은 여성들이 직장과 가정을 함께 영위할 수 있는 제도들을 만들기보다, 임신한 여성 직원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 결과, 오늘날 한국은 1.0에도 못 미치는 전 세계 최저라는, 처참하도록 낮은 출산율을 기록 중이다.
260
이것이 산업화 세대와 386세대가 완성한 한국 경제와 노동시장의 실상이다. 그들의 자식들은 상층 노동시장 20퍼센트, 그중 더 좋은 직장인 최상층 10퍼센트 정규직 일자리에 진입하기 위해 오늘도 학원에서, 기숙학교와 기숙학원에서, 고시원과 대학 도서관에서 목숨을 건 진입 투쟁을 할 것이다. 이 땅에 민주화를 가져온 386세대가 한국 사회의 리더가 되면 조금 달라지겠지 하고 기대했던, 나를 비롯한 아랫세대들이 아둔했던 셈이다.
6장 세대와 위계의 결합 – 네트워크 위계 = 261
Q 세대 내 불평등이 세대 간 불평등보다 크다? = 262
263
내가 불평등을 이야기하면서 ‘세대’를 화두로 꺼낸 것은 결국 ‘위계’를 말하기 위해서였다.
계급이라는 앵글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계급을 구성하는 개개인이 적대적 타자인 자본가에게 대항하여 스스로의 이익을 방어하고 쟁취하는 ‘역사적 주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피지배 계급 특유의 문화와 조직에 기반하여 ‘계급의식’을 형성하고, ‘계급의식’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이들은 사회학적 ‘계층’을 이루는(사회학자나 경제학자가 정한 소득이나 자산의 카테고리에 속하는) ‘데이터상’의 구성원이라는 의미밖에 갖지 못한다.
266
양적 통계 방법론의 언어로 이야기하면, 세대 내에서 계층화가 더 가속화되고 그로 인한 불평등이 커질 수록, 세대의 설명력은 감소한다고 볼 수 있다. 세대 간에 발생하는 계층화의 원인이 세대별로 불균형한 네트워크 및 권력 자원에서 비롯된다면, 세대 내에서 발생하는 계층화는 세대와 관련 없는 여타 권력 자원(대표적으로는 ‘계급’ 신광영 2009) 이 불균형하게 분포되었기 때문이다. 세대 내부에서 세대의 네트워크가 가져다주는 ‘권력 자원’의 수혜를 받지 못하는 집단이 커질수록, ‘세대정치론’은 힘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세대의 틀이 불평등의 모든 차원을 설명할 수는 없으니 당연한 귀결이다.
268
나는 세대의 이면에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이라는 계급 갈등과 반드시 겹쳐지지 않는, 깊은 구조적 배경이 있다고 본다. 첫째는 조직 내 위계와 세대가 일치한다는 점이다. … 한국 사회 조직 내의 위계 구조는 나이와 세대로 구분된다.
조선 후기 실학자 유형원이 신분제가 사라진 곳에서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유일한 버팀목으로 보았던 ‘나이'(Palais 1996)에 기반한 위계질서가 현대의 한국 사회에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조직 내 혹은 외부 세대와 연대의 단위가 일치한다는 점이다.
269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세대의 네트워크’를 통해 ‘우선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이루어질 확률이 크다.
셋째는 ‘계급’과 ‘세대’가 일치할 가능성이다. 세대 간 불평등이 계급 간 불평등과 겹쳐서 재생산되는 경우, 세대 간 불평등은 계급 갈등을 발화하는 요인이자 ‘대안적인’ 분출구로 작동할 수 있다.
271
세계화와 개방, 컴퓨터리제이션과 정보화는 승자에게는 더 많은 수혜를, 패자에게는 더 깊은 추락을 동반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Acemoglu 2003).
젊은 세대가 오늘날 겪고 있는 세대 내부의 ‘차별과 불평등’의 기원은, ‘세대 간 불평등’혹은 ‘세대 간 갈등과 경쟁, 대결’ 과정에서 세대 내부에 권력 자원을 불균등하게 축적하는 데 성공한 세력과 네트워크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Q 위계와 세대는 어떻게 서로를 재생산하는가? = 273
275
한국 사회의 세대 간 불평등 문제는 위계 구조의 문제다. 앞서 이야기한 계급(계층)과 세대의 문제는 ‘위계’를 매개로 다시 만난다. 계급(계층)과 세대가 일치하기도 일치하지 않기도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세대와 위계는 -상당히- 일치한다.
278
동아시아의 사회적 연공 구조가 단순히 나이를 먹고 그에 비례해서 지위와 권력이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는 피상적인 관찰이다. 윗세대로 구성된 상급자들의 네트워크는 그 내부에서 끊임없는 정보교환과 숙의를 통해 아랫세대 중 누가 이다음 리더(승진 대상자)로 적합한지 평가한다.
이 선발의 과정, 이 제도화된, 하지만 비제도적인 선발 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한 개인들의 몸부림 자체가 ‘정치’다. 조직의 목표를 더 잘 수행한 자, 동 세대 동료들과 협력을 잘 수행한 자, 상급자 네트워크와의 관계가 좋은 자가 살아남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달리 이야기하면 상급자의 ‘권력’을 침해하지 않고 보호해주면서, 수적으로 다수인 하급자 집단에 대한 ‘통제력’을 잘 발휘하는 자가 그 세대의 리더로 발탁된다.
Q 위계 구조에서 앎이란 무엇인가? = 281
282
동양에서, 특히 동아시아 유교 문화권에서 첫번쨰 단계의 ‘앎’이란 역사적으로 구축된 거대한 ‘위계 사회’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서구 사회에서 첫번째 단계의 ‘앎’이란 자신과 신(기독교적 신) 간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다(특히 프로테스탄트 전통의 영미권에서 ‘앎’이 이 범주에 더욱 부합한다. 가톨릭에서는 교황청과 사제가 강하게 이 신과 개인의 관계에 개입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신이 자신에게 부여한 사명과 은총을 이해하고 이 세상에 신의 뜻을 펼치는 것이다. 영미 사회(북유럽과 독일 문화권까지)의 개인주의는 이 신과 인간의 직접적 관계에 제3자나 위계, 신분 관계가 개입하지 않는다. 영미 사회 평등주의와 개인주의의 근간이다.
동아시아에서의 ‘앎’이 세속화라면, 영미권에서의 ‘앎’은 탈세속화다.
동양에서 두번째 단계의 ‘앎’은 개인과 공동체(가족, 이웃 그리고 시민사회) 및 국가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역할을 설정하는 것이다.
284
이에 반해 서양에서 두번째 단계의 ‘앎’은 신이 부여한 사명을 평등한 인간들의 공동체에서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 ‘소명’을 가슴에 품은 ‘대행자’를 만들고자 서양의 교육은 아이들을 부모의 자식, 국가의 신민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소명을 담지한 ‘주체’로 양육한다. 서양의 가정에서 아주 어릴 적부터 아이들을 어른과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가진 주체로 기르는 것은 익숙한 모습이다.
285
서양의 개인주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한 청년이 신과 독립적 계약 관계를 맺어 새로운 주체로 서는 과정이다.
286
동서양 공히 세번째 단계의 ‘앎’은 바로 이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누가 살아남는가)의 문제와 관련된다. 동양에서 세번째 단계의 ‘앎’은 신분제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가능한 한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다. 첫번째와 두번째 단계의 ‘앎’이 ‘권력’이 무엇인지 모른 채 ‘권력’에 편입되는 과정이었다면, 세번째는 권력을 맛보는 과정이다. 앞 장의 용어를 다시 사용하면, ‘세대 네트워크’가 ‘위계 구조’로 전환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다.
반면 서양에서 세번째 단계의 ‘앎’은 소명 속에서 신이 자신에게 부여한 재능과 본인의 노력을 통해 이 세상에 ‘기여’하는 것이다.
이처럼 동양에서 세번째 단계의 ‘앎’이 높은 지위로 올라서고자 ‘경쟁’하는 단계에서 필요한 지식을 편취하는 과정이라면, 서양에서 세번째 단계의 ‘앎’은 지식이 ‘권력’ 그 자체로 전환되는 과정이다.
동양의 경쟁이 ‘경쟁 자체에서 승리한 자’가 전리품에 대한 (압도적이고 전일적인) 통제권을 확보하는 시스템이라면, (적어도 ‘근대’) 서양의 경쟁은 ‘인류(시장 혹은 학계)의 앎의 수준을 높였는지 여부’에 대한 심사와 평가에 의해 ‘새로운 아이디어’가 제도와 조직을 재편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다. 이 과정에서 동양의 경쟁이 경쟁이라는 제도 자체에 인간을 종속시킨다면, 근대 이후 서양의 경쟁은 인간이 경쟁의 룰을 다시 짤 수 있는 여지를 열어둔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자가 권력에 진입했기 때문에 혹은 권력 행사의 정당성을 확보했기 때문에, 다음 경쟁의 룰은 계속해서 ‘새로운 아이디어’의 출현을 보장한다. 그 보장의 주체는 결국 인간이다.
이 세번째 단계의 ‘앎’에서 동양과 서양의 ‘권력’이 다른 형태로 출현한다. 동아시아 위계 구조에서 ‘앎’은 권력을 창출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앎은 권력에 종속된다. 이 위계 구조에 직면한 개인은 복잡하게 직조되어 있는 사다리를 타고 오르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앎’을 이용할 뿐이다. 앎은 때로 권력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소외’된다. 지식이 권력 그 자체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획득한 개개인에 의해 버려진다.
289
한국 사회에서 ‘지식의 권력으로부터 소외’가 가장 만연한 곳은 다름 아닌 학계다. 많은 저명 대학의 교수들이 일단 정교수 지위에 올라 사다리를 더 오를 필요가 없는 순간, 손에서 연구를 놓는다. 지식을 도구로 삼아 원하던 ‘지위’와 ‘자리’를 얻었기 때문이다.
290
관료를 충원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앎’의 체계에서는 ‘창조적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없다(그럴 필요도 의지도 없다). 과거제로부터 발전한 입시제와 고시제는 ‘창조’의 선행 단계인 ‘비판’과 ‘지적 파괴’를 훈련시키지 않으며, 그에 대한 보상 체계도 존재하지 않는다.(다시, 그럴 필요도 없다.)
291
중국의 엘리트들이 거대한 국가 체제를 장악하고 운영할 수 있는 것은 중국 공산당이 성장과 국공합작, 제국주의와의 투쟁, 혁명의 완성, 문화혁명, 개혁,개방 과정에서 이룩해온 당과 국가 간 관계의 틀을 이해한 자들만을 여러 공식적, 비공식적 심사 과정을 거쳐 최고 지도부로 옹립하는 그들만의 승계 절차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Q 위계 구조는 왜 필요한가? = 294
296
위계 구조는, 모든 구조가 그렇듯이 그 필요와 목적이 있다. 첫번째 목적은, 권력의 수직적 분배 및 상명하복의 윤리와 규칙을 ‘정당한 것’으로 통용되고 받아들이도록 만듦으로써 변화하는 외부의 압력에 맞서 (국가 혹은 기업) 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적응시키는 것이다.
… 이 위계 구조의 첫번째 목적에는 사회 구성원 전체의 안녕과 복지가 결부되어 있다.
보수주의가 위계구조와 친화성을 갖는 것은, 그들이 외부의 적으로부터 공동체의 안녕을 지켜야 하는 국가의 1차적 목적을 다른 어떤 것들보다도 우위에 놓기 때문이다.
297
위계 구조의 두 번째 목적은, 체제의 안정적 적응을 주도하는 지배 (엘리트) 계층이 부와 권력의 불평등한 분배 및 수취의 구조를 정당화하기 위함이다.
기존의 위계 구조가 흔들려 이때까지의 ‘균형점’을 벗어나 새롱누 틀과 협약을 필요로 하게 되는 이유들은 다양하다. 전쟁, 혁명(의 가능성), 경제 위기 등은 기존의 강고했던 위계 구조의 틀(균형점)을 외부에서부터 뒤흔든다(Skocpol 1979).
298
민주화 이후 한국 현대사에서 기존의 위계 구조가 위기에 처한 가장 최근의 격절점은 1997년이었다. IMF 금융 위기는 발전구각가 주도한 재벌 위주 성장 체제의 위기였다.
300
1997년 금융 위기 이후, 즉 산업화 후기 세대의 리더들과 노동자들이 물러난 자리에, 이 새로운 수취 기제를 실행하며 그 수혜자이자 동반자로 등극한 집단이 386세대의 기업 엘리트들과 대기업의 조직화된 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Q 위계 구조의 위기는 어디서 비롯되는가? = 301
302
‘지위’가 수행 능력 없이도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경우는 두 가지다. 첫번째는, 수행 능력의 부재를 ‘지위’간의 네트워크로 버텨내는 경우다.
303
두 번째는, 내부적으로 착취 체제를 구축하여 하급자의 수행능력을 자신의 것으로 전치시키는 것이다. 물론, 이 착취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자본’을 필요로 한다.
305
산업화 세대는 물론 386세대마저도 이러한 네트워크와 위계에 기반한 수행 능력에 의문을 달지 않았다. 그러한 능력을 ‘정치력’이라는 또 다른 차원의 수행 능력으로 격상시키기까지 했다.
307
‘네가 내 젊은 날을, 내 재능을 갈아버리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어’라는 정서는 중, 장년층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산업화 및 386세대의 중, 장년층은 미래를 할인할 줄 몰랐다. 다시 말해 위계 조직에서 세대의 네트워크를 따라 한 걸음씩 밟아가다 보면, 그에 따른 보상이 주어질 것을 ‘집단적으로’ 믿었던 세대들이다. 그에 반해 오늘의 청년 세대는 이 보상에 대한 기대의 공식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한국형 위계 구조 최초로 이 ‘공모’에 동의하지 않는 세대가 출현하고 있는 것이다.
311
한국형 위계 구조의 위기는 바로 이 ‘지식 생산과 소비 사이클’에서 (나를 포함한) 중, 장년층이 새로운 세대의 지식수준을 따라잡지 못하고 급속히 도태되는 데서 올 것이다.
318
청년 세대가 한국형 위계 구조를 업그레이드한 386세대 리더십의 ‘정당성’을 받아들이지 않고 ‘순응하는 척’할 때, 조직의 위기 그리고 한국 경제의 위기가 시작된다. 산업화 세대의 리더들에게 그 세대 전체가 보여준 ‘동의의 구조’, 386세대의 리더들에게 그 세대 전체가 보내준 ‘연대의 구조’가 형성되지 않고, 위계 구조에 ‘순응하는 척’하는 ‘적응의 세대’가 출현하면서 위계 구조는 효율성을 잃는다. 위계 구조 혹은 조직 전체를 위해 희생하며 협력하고 경쟁하는 문화가 사라지는 순간, 동아시아 벼농사 체제의 위계 구조는 작동을 멈추게 된다. ‘소확행’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의 동의와 열정이 없는 상태에서 젊은, 새롱누 아이디어가 나올리 만무하다. 산업화 세대처럼 ‘시간을 투여’하고 ‘기계적 협업’을 통해 단순조립 가공산업으로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는 시대에, 한국의 기업 조직들은 어떤 리더십으로 한국 경제의 구조적 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 바로 다양한 세대와 성별의 리더들로 구성된 ‘무지개 리더십’의 수립이다. 더 젊은, 더 새로운 아이디어와 에너지로 충전된 젊은이들과 여성들을 조직의 최상층으로 끌어올리면, 상명하복의 경직된 조직 문화와 장기 집권으로 인한 수많은 문제들 … 이 해소될 수 있다.
7장 에필로그 – 세대 간 형평성의 정치 = 325
Q 세대 간, 세대 내 불평등과 그 불평등의 재생산 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 326
327
사회적 자유주의, 형용모순이다. 자유주의는 시장을 국가와 사회의 규제로부터 독립시키고자 한다. 국가와 사회가 협의하여 만들었건, 국가가 강제했건, 현대의 (신)자유주의 이념은 국가가 권위주의적으로 혹은 사회적 협약을 통해, 심지어는 민주주의 정치 기제를 통해 시장에 개입하려는 모든 시도와 싸워왔다. 신자유주의는 국가라는 속박으로부터 ‘자유화’를 추구하며, 그 제도적 기제는 ‘규제 혁파’다. 그런데 어떻게 ‘사회적 자유주의’가 가능하겠는가? 심지어 신자유주의는 ‘사회’도 ‘국가’도 거부한다. 오직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과 그 승자에 대한 시장 나름의(?) 보상의 윤리를 지켜내는 것이 신자유주의가 꿈꾸는 세상이다.
330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데, 왜 세대 갈등을 부추기느냐고 항변할 만도 하다. 하지만 ‘개인 수준의 합리적 선택’이 ‘사회 수준의 비효율’을 초래하는 예는 비일비재하다. 공공재 게임 이론과 공유지의 비극 사례는 합리적 개인의 전략의 총합은 사회적으로 최선이 아닌 선택에 종종 이를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 최선의 선택은 개인들의 보다 사려 깊은 조율과 소통을 통해 각자의 최대 이윤 추구를 자제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목표는 ‘세대의 기회’를 아예 가져보지도 못하고 위계 구조의 압제에 ‘민주적으로’ 좌절해야 하는 자식 세대에게 최소한, 아니 최대한의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다. 롤스(Rawls 1971)의 표현을 빌리면, 그 사회에서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는 오늘의 청년 세대에게 최대의 기회를 보장해야만 ‘기회의 균등’이라는 원칙에 부합하는 것이다.
331
청년 세대의 일자리와 관련된 가장 직접적인 해결책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현재 도입된 것보다 더욱 강력한) ‘임금 피크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332
결국은 노동시장 연구자들이 주창하는 ‘연공제’에서 ‘직무제’로의 전환(정이환 2010; 정승국 2010)을 위한 사회적 대화, 교섭, 합의의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오늘의 청년 세대는 자신들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가 누렸던 ‘연차에 비례한 자동적인 임금 상승’을 보장하는 ‘연공제’가 동아시아 위계 구조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고, 청년 세대 일자리 난의 주요 요인임을 알아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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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공제는 ‘조직에서의 충성’을 확보하고 조직을 안정화하는 데는 효율적인 보상 기제다. 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노동시장 내부자와 외부자의 골을 깊게 만들고 청년 실업 문제를 악화시키는 주 요인이며, 단위 기업 차원에서는 직무의 효율적인 통합과 분산 및 숙련의 심화를 막는, 다시 말해 조직의 동맥경화를 일으키는 한 원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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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와 젊은 유권자 집단은 386세대를 통한 ‘대리정치’를 끝내고,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386세대가 장악한 정당과 국가 조직에 자신들 세대의 대표자를 더 확보하라고 주장함으로써 새로운 세대의 정치를 시도해야 한다. 정치권이, 정당이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다양한 사회 세력을 대변하는 역할을 스스로 하지 못하면, 시민사회는 표로 응징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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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영역의 기업 조직 및 학계의 상층부를 장악한 386세대를 견제하거나 대체하기 위해서는, ‘실적 평가’외에는 마땅한 대안이 없다. 기업 조직과 학계의 정당성은 ‘민주적 대표 체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장사를 잘 하느냐 혹은 연구를 잘 수행하느냐하는 ‘성과주의’에 터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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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이 선택하지도 않은 ‘적게 태어난 죄’치고는 그 죗값이 너무 가혹하다. 이 연금 구조에 손을 대지 않고, 비정규직, 정규직, 실업을 오가며 더 불안정하고 짧은 근속 기간을 채우게 될 이 세대에게 두 배 넘는 기여를 요구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내 제안은 간명하다. 연금의 틀을 뜯어고쳐야 한다. 첫번째 방안은, 자신들이 낸 연금보다 더 과도한 수혜를 누리는 1950년대생 은퇴 노인들과 앞으로 은퇴할 386세대의 소득대체율을 줄이거나 최소한 동결하는 것이다. 한 시뮬레이션 연구(이상협 2008)에 따르면, 현재의 세대 간 회계 구조에서 1960년대 출생 세대까지는 자신들이 기여한 것보다 국가로부터 더 받는 반면, 1970년대 이후 출생 세대는 자신들이 기여한 것에 비해 국가로부터 덜 돌려받는다.
일자리, 임금, 연금을 통한 희생에 이어 자식 세대를 위한 마지막 희생은 ‘주거를 위한 희생’이다. … 한국의 자산 시장 최고의 수혜 세대는 산업화 세대와 그들의 자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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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중, 장년 세대들은 자기 자식의 생존만을 걱정하고 있다.
다음 세대를 위한 산업화 세대의 배려는 한 가지였다. 빠른 경제성장을 통한 일자리의 끊임없는 창출, 386세대는 산업화 세대가 제약한 자유와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 그들을 치받았지만, 아비 세대가 제공한 ‘풍성한 일자리’와 ‘일자리를 통한 복지’ 모델의 수혜를 받은 세대다. 물론 이 세대는 민주화를 이뤄냈을 뿐 아니라, 한국 경제를 세계화 시대에 적응시켰다. 그렇다면 그 수혜가 다음 세대로 -어떤 형태로든-이전되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