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하게 된 계기 :
어쩌다가 접하게 되었다.
표제/저자사항바른 마음 :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 / 조너선 하이트 지음 ; 왕수민 옮김
왕수민 Haidt, Jonathan[1963-]
발행사항서울 : 웅진지식하우스 ; [파주] : 웅진씽크빅, 2014
형태사항689 p. : 삽화, 도표 ; 23 cm
주기사항웅진지식하우스는 웅진씽크빅 단행본사업본부의 임프린트임
원저자명: Jonathan Haidt
원표제: Righteous mind : why good people are divided by politics and religion
참고문헌(p. 649-677)과 색인수록
영어 원작을 한국어로 번역
표준번호/부호ISBN 9788901163673 03180: ₩29000
분류기호한국십진분류법-> 190 듀이십진분류법-> 170
주제명윤리[倫理] 정의(바름)[正義]
한국어판 서문 = 8
8
우리의 위선은 끝없는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제각각 자기편이 옳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고, 나아가 자기편 가치관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무엇보다 확실하므로 상대편은 어리석고 사악한 게 틀림없다고 믿는다.
나의 연구 분야는 도덕심리학이다. 즉, 우리가 어떻게 남들에 대해 판단을 내리고, 어떻게 사람들과 이런저런 팀을 이루며, 또 어떻게 갈등에 대비하는지(혹은 어떻게 용서와 화해를 구하는지) 그 정신 기제를 연구한다.
“제발, 우리 사이좋게 지내요” = 15
16
우리는 서로 사이좋게 지내기가 왜 이렇게 어려울까? 이 책은 그 까닭을 밝히기 위해 쓴 것이다.
17
내가 공부한 것은 도덕심리학인 만큼, 도덕성이야말로 문명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의 특출난 능력임을 나는 주장하고자 한다.
그래서 여행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여러분이 두 가지 주제에 대해 새로운 생각의 틀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두 가지 주제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골치 아프며 가장 편이 갈리는 문제인 정치와 종교를 말한다.
정치와 종교로 인해 일어나는 그 모든 과열, 분노, 편 가르기를 어느 정도 가라앉히고, 그 자리를 경외심, 놀라움, 호기심으로 채우는 것이 바로 이 책의 목표이다.
왜 도덕심이 아닌 바른 마음인가 = 18
18
나는 이 책의 제목을 ‘도덕적인 마음’이라고 지을 수도 있었다. … 그러나 나는 이 책의 제목을 ‘바른 마음, Righteous Mind’이라고 짓기로 결정했다. 인간 본성은 본래 도덕적이기도 하지만, 도덕적인 체하고 비판과 판단도 잘한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도덕심리학의 세 가지 원칙 = 20
도덕심리학의 세 가지 원칙
1: 직관이 먼저이고, 전략적 추론은 그 다음이다
2: 도덕성은 단순히 피해와 공평성 차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3: 도덕은 사람들을 뭉치게도 하고 눈멀게도 한다.
24
앞으로 나는 이 책에서 인간의 ‘고차원의 본성’ 덕분에 우리가 지극히 이타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러나 그 이타주의는 대부분 자신이 속한 집단의 구성원을 향한다는 사실을 보여줄 것이다. 이와 함께 나는 종교가 (아마도) 진화상 적응의 산물임을 이야기할 것이다.
25
앞으로 내가 풀어놓을 이야기는 주로 신경과학, 유전학, 사회심리학, 진화론 모델과 관련한 최신 연구들이 되겠지만, 우리가 간직해야 할 메시지는 이미 먼 옛날부터 전해지고 있었다. 우리는 누구나 독선적 위선자라는 사실, 바로 그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26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진정 이해하고 싶다면, 즉 우리가 어떤 식으로 분열되어 있고, 또 어떤 한계와 잠재력을 가졌는지 알고 싶다면, 이 순간만큼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윤리 도덕은 잠시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1부 제1원칙: 바른 마음은 철저히 이기적이며 전략적이다 – 직관이 먼저이고 전략적 추론은 그다음이다
1장 도덕성은 대체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 29
선천성도 후천성도 아니라면 = 31
35 (피아제의 주장)
아이들은 스스로 그 이치를 깨치는데, 다만 그러려면 반드시 마음의 준비가 되어야 하고, 더불어 거기에 맞는 적절한 경험이 주어져야 한다.
피아제의 주장에 따르면, 아이들이 도덕성을 이해하는 것은 그들이 유리컵에 담긴 물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과 비슷했다. 즉, 도덕성에 대한 이해는 선천적이라고 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그것을 어른에게서 직접 배운다고도 할 수 없었다. 그보다는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과 놀며 도덕성에 대한 이해를 스스로 세워나간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36
우리 인간이 합리적 존재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심리학적 합리주의의 본질이다.
사실 철학에서도 그 역사가 길고 복잡한 것이 합리주의다. 따라서 내가 이 책에서 합리주의자라고 할 때에는, 도덕적인 지식을 얻는데 있어 인간의 추론 능력을 가장 중요시하고 신뢰하는 사람을 통칭하는 것으로 한다.
진보파의 공통분모 = 39
39
콜버그가 내놓은 연구 결과 중에도 영향력이 가장 컸던 것은, 도덕적으로 가장 발달한 아이(콜버그의 채점 기법으로 따졌을 때)는 역할 바꾸기를 평상시에 자주 접하는 아이라는 사실이었다. 역할 바꾸기란 자기 자신을 상대방의 입장에 놓아보고 어떤 문제를 그 사람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40
물리적세계에 대해서 우리가 아이에게 뭔가 가르치고 싶은 것이 있을 때에는 아이에게 컵과 물을 가져다주고 그것으로 놀이를 하게 하면 된다. 물의 총량 불변의 원리를 굳이 말로 가르치려 들지 말고 말이다. 아이에게 사람과 어울려 사는 사회적 세상에 대해 가르치고 싶을 때도 이와 마찬가지여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놀게 내버려두고 다툼도 자기들끼리 해결하도록 한다. 십계명을 구구절절 말로 가르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아이들도 마땅히 지켜야 할 것을 알고 있다 = 41
튜리얼이 연구한 문화에서는 어느 곳이나 아이들은 도덕적 규칙과 규약적 규칙을 구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43(튜리얼)
즉, 개개인에게 도리를 다하는 것이 도덕성의 핵심이라고 보는 것이다. 즉, 충성심, 존경심, 의무감, 경건함, 애국심, 전통 등의 덕목보다는 타인에게 해를 가하지 않고 공평성을 지키는 것이 도덕성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한편 위계나 권위는 대체로 훌륭한 것이 못 된다. 따라서 학교나 가정에서는 권위주의적 원칙에 따라 어른들이 아이들을 훈련시키고 제약하기보다는 평등과 자율성으로 대표되는 진보적 원칙을 구현하려고 애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른 세상에는 다른 도덕이 있나 = 44
49
남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고통을 느끼는 것, 그것만으로 아이들의 도덕 발달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틀림없이 합리주의를 넘어서는 무엇이 있을 터였다.
슈웨더와 튜리얼의 대논쟁 = 49
54
한마디로 슈웨더는 오리사에 자리한 사회중심적인 문화 속에서는 사회 규약적 사고는 거의 흔적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곳에서는 “사회적 질서가 곧 도덕적 질서”인 것이다.
…슈웨더의 이런 연구 결과가 정말 사실이라면, 튜리얼의 이론은 설득력을 잃는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아이들이 스스로 도덕성을 깨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한마디로 도덕과 단순한 규약의 구별은, 도덕적 지식을 스스로 세워가며 아이들이 쓰는 연장이 아니었다. 그보다 도덕과 규약의 구별은 문화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임이 드러났다. 개인과 집단 간 문제를 개인주의적 틀에서 답하며 나온 필연적 부산물이었던 것이다.
역겨움과 경멸감 = 56
61
(나의) 연구 결과는 그야말로 명약관화하게 슈웨더의 이론을 지지하고 있었다.
62
슈웨더: 문화 집단에 따라 어디까지가 도덕이고 어디까지가 규약인지 달라진다는 것이다.
63
합리주의자가 이런 결과를 어떤 식으로 설명 해 낼지 나는 알 수 없었다.
희생자 만들기 = 65
65
우선 제일 놀라웠던 부분은 피험자 자신이 희생자를 만들어내려 한 경우가 아주 많았다는 사실이다.
66
이렇게 피해를 가정하는 것 대부분은 사후 조작일 것이 뻔했다. 사람들이 이야기 속의 행동을 비난하는 것은 보통 아주 순식간이었는데, 자신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결정하는 데에는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 없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희생자를 제시하는 일에는 종종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다. 희생자를 댈 때도 보통 건성으로, 그리고 거의 변명하듯 이유를 제시했다.
67
피험자들이 논리적 추론을 하기 위해 무척이나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진리를 찾기 위한 추론이 아니었다. 자신들의 감정에서 나온 반응을 뒷받침하기 위한 추론이었던 것이다.
-흄 “이성은 열정의 하인이며, 오로지 열정의 하인이어야 마땅하다. 이성은 열정에 봉사하고 복종하는 것, 그 외의 다른 직은 결코 탐낼 수 없다.”
도덕적 추론이 종종 도덕적 감정의 하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으니, 당시 도덕심리학계를 장악하고 있던 합리주의적 접근 방식에는 큰 도전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결론을 내렸다.
69
- 도덕성의 범위는 문화에 따라 달라진다. 서양적이고, 교육 수준이 높고, 개인주의적인 문화에서는 도덕성의 범위가 몹시 좁다. 반면 사회중심적 문화에서는 도덕성의 범위를 넓히는 경향이 있는데, 이로써 삶의 더 다양한 측면을 아우르고 통제한다.
- 사람들이 갖는 직감(특히 역겨움 및 경멸감과 관련된 것)은 때로 도덕적 추론을 진행시키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도덕적 추론은 때로 사후 조직과 다름없는 양상을 보인다.
- 도덕성은 아이들이 피해의 개념을 잘 이해하게 되었을 때 스스로 세워나가는 것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틀림없이 문화를 통한 학습이나 문화적인 유도가 합리주의 이론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역할을 할 것이다.
2장 도덕은 너무나도 감성적이다 =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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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이 이제껏 이성을 숭배하고 감정을 불신해온 역사는 수천 년에 이른다. 합리주의의 전통은 플라톤에서 시작되어 임마누엘 칸트를 거쳐 로런스 콜버그에까지 곧바로 이어지고 있다.
진화론과 도덕의 관계 = 77
77
도덕성에 관한 한 다윈은 선천론자였다. 우리의 마음은 자연선택에 의해 주어지며, 도덕적 감정은 그 마음속에 애초부터 들어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80
윌슨은 흄과 입장이 같았다. 도덕철학자들이 하는 일이란 알고 보면 자기들 뇌의 “감정 중추에 의견을 구해” 그것을 조작하듯 정당화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는 비난했다.
철학, 생물학, 진화의 이러한 결합은 윌슨이 꿈꾸던 ‘새로운 종합’에 해당하는 것이었고, 나중에 윌슨은 이를 통섭이라고 불렀다. 여러 사상이 “경계를 뛰어넘어 다 같이” 하나의 통일된 지식 체계를 이루게 된다는 의미였다.
어쩌다 도덕을 이성의 영역이라 생각하게 되었나 = 81
82
다마지오의 해석에 따르면 이는 합리적 사고에는 반드시 직감 및 신체의 반응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였고, 심사숙고하는 의식의 활동에 직감을 통합시키는 것이 바로 vmPFC(전전두엽피질)의 일이라는 것이었다.
무신론자도 영혼을 팔려고 하지 않는다 = 84
84
합리적 추론에는 감정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보이는 대로 판단하기 vs 합리적 이유 찾기 = 94
97
인간은 판단이 내려지면(판단 자체도 뇌 속의 비의식적인 인지 장치를 통해 일어나기 때문에, 옳을 때도 있고 옳지 않을 때도 있다), 그 근거를 하나둘 만들어내 그것들이 자신이 내린 판단의 설명이 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근거라는 것들은 사실 (해당 주장에 대한) 사후 합리화에 지나지 않는다.
마골라스의 의견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판단을 내리거나 문제를 해결할 때 머릿속에서는 두 가지의 전혀 다른 인지 과정이 작동하는데, 바로 ‘보이는 그대로의 인지 과정’과 ‘이유를 찾아내는 인지 과정’이다. ‘보이는 그대로의 인지 과정’에서는 동물의 뇌가 수억 년에 걸쳐 해오던 식으로 패턴 연결이 이루어진다. 예를 들면, 제아무리 단순한 동물이라도 특정 종류의 패턴이 입력되면 그에 따르는 구체적인 행동을 보이도록 회로가 짜여 있다. 동물들은 새로운 패턴도 쉽게 익혀 기존의 행동에 연결시킬 줄 알며, 기존 행동을 새로운 패턴 속에 짜 맞출 줄도 안다.
98
반면 ‘이유를 찾아내는 인지 과정’은 “우리가 어떤 사고를 거쳐 특정 판단에 이르렀는지 설명할 때, 혹은 내가 보기에 다른 사람이 어떻게 그런 판단에 이를 수 있었는지 설명할 때, 혹은 내가 보기에 다른 사람이 어떻게 그런 판단에 이를 수 있었는지 설명할 때” 이용된다. ‘이유를 찾아내는 인지 과정’은 언어를 가진 생물체, 그리고 스스로의 입장을 남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는 생물체에게서만 일어난다.
101
감정은 말 못하는 벙어리도 아니다. 다마지오의 환자들이 얼토당토않은 결정을 내렸던 것도 의사결정에 이용되던 감정 쪽의 입력값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감정은 일종의 정보처리 과정인 것이다.
105
사회적 직관주의자 모델 참고
107
흄은 이 문제(사람들의 논변을 완전히 논박하는 것으로는 그들의 마음을 바꿀 수 없음.)에 대해 오래전 다음과 같은 진단을 내린 바 있다.
“논쟁에 들어간 사람들은 그 어느 쪽도 추론을 통해서 자신의 신조를 끌어내지는 않는다. 따라서 정에 호소하지 않는 논리를 가지고 상대방이 더 올바른 원칙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코끼리에게 말 걸기 제일의 명수는 바로 데일 카네기였다. 그의 고전적 명저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에서 카네기는 상대와의 직접적 대립은 가급적 피하라고 독자들에게 재차 강조한다.
108
“만일 성공의 비결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볼 줄 아는 데에 있다. 그리고 나 자신의 눈은 물론 다른 사람의 눈으로도 사물을 바라볼 줄 아는 데에 있다.”
109
인간의 마음은 여러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모습은 마치 기수(통제적 인지 과정)가 코끼리(자동적 인지 과정)의 등에 올라타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기수는 코끼리의 시중을 들어주도록 진화했다.
110
따라서 도덕이나 정치 문제와 관련해 누구의 마음을 바꾸고 싶다면, 코끼리에게 먼저 말을 걸어야 한다.
3장 나는 바르다, 남이 잘못이다 = 112
뇌는 도덕을 어떻게 평가하나 = 117
117
뇌가 모든 것을 평가하는 기준은 하나로, 그것이 자아에 장차 위협인가 아니면 혜택인가 하는 것이다.
118
실험심리학의 창시자 빌헬름 분트는 1980년대 들어 ‘정서적 우선주의’라는 원칙을 정식화했다. 여기서 ‘정서’란 우리가 순간순간 경험하는 긍정 혹은 부정의 자잘한 느낌들을 가리키는데, 이 느낌들을 통해 우리는 무엇에 다가갈 지 아니면 그것을 피할지를 미리 준비하게 된다. 모든 감정에는 저마다 정서적 반응이 포함되어 있으나, 우리의 정서적 반응은 그야말로 찰나에 일어나기 때문에 거기에 감정이라는 말은 붙이지 않는다.
분트의 말에 따르면, 정서적 반응은 우리의 인식과 너무도 단단히 얽혀 있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을 인식하는 순간 그것에 대한 좋고 싫음을 어느새 느끼고 있으며, 때로는 그 대상이 무엇인지를 알기도 전에 그런 반응이 일어난다.
_자이언스 Zajonc 정서적 우선주의 (1980)
사회적이고 정치적일수록 더 감성적이다 = 120
120
자이언스의 말에 따르면, 사고가 느낌과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것은 이론상으로는 가능할 수 있따.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정서의 반응이 너무도 빠르고 강력하기 때문에 그것은 마치 말에게 씌우는 눈가리개의 기능을 한다. 즉, 정서 반응은 나중에 사고가 이용할 수 있는 “대안의 틀을 미리 좁혀버린다.”
122
ProjectImplicit.org 여러 검사
124
정치와 관련한 판단에 직관적 성격이 있다는 사실은 프린스턴 대학에 있는 알렉스 토도로프 교수의 연구에서 훨씬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신체 상태에 따라 도덕성이 좌우된다 = 126
127
우리는 “정서를 일종의 정보로” 활용하는 셈이다.
살인자에게는 오로지 생각만 있다 = 129
131
추론 능력은 있는데 거기에 도덕적 감정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이코패스는 무슨 말이든 술술 하는 법을 배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
131
사이코패스가 되고 말고는 잘못된 양육이나 어린 시절 트라우마 때문은 아닌 것으로 보이고, 그 외 양육을 바탕으로 한 설명 역시 어느 것도 사이코패스에게는 통하지 않는 듯하다. 한마디로 그것은 유전적으로 물려받을 수 있는 일종의 병증으로, 이 병증이 만들어놓은 뇌는 타인의 요구, 고통, 존중감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 감흥이 없다.
갓난아기도 착한 사람을 알아 본다 = 132
132
발달 심리학자들이 갓난아기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여러 방법을 발명하면서, 실상 갓난아기의 서판에는 이미 많은 내용이 쓰여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33
아기들은 자신들의 물리적 세계에 사건이 벌어질 때 그것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어느 정도는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것처럼 보인다.
134
연구진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개개인을 평가하는 능력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나타나며 학습에 의한 것이 아니다”라고 결론 내렸다.
4장 도덕은 표를 얻으려는 정치인과 같다 = 147
150
미국 심리학의 시조로 꼽히는 윌리엄 제임스는 심리학자들에게 마음에 접근할 때는 ‘기능주의자’ 입장을 취하라고 강조했다.
그것은 곧 어떤 것을 탐구하고자 할 때는 그것이 더 커다란 체계 안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를 살펴보라는 의미였다.
151
도덕적 추론의 기능은 무엇일까? 이제껏 도덕적 추론이 (자연선택에 의해) 형성되고 다듬어지고 정교해진 까닭을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우리에게 진실을 찾아주려고, 즉 우리에게 올바르게 행동할 길을 알려주고 나아가 잘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비난하게 하기 위해서였을까? 그렇다고 믿는다면 여러분은 플라톤, 소크라테스, 콜버그 같은 합리주의자인 셈이다.
저에게 표를 주십시오 = 152
152
책임감 연구의 선구적 학자인 필 테틀록에 따르면, 책임감의 개념은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우리가 무엇에 책임이 있다는 것은, 그 무엇에 대한 우리의 믿음, 느낌, 행동을 남들에게 정당화해야 한다는 뜻이며, 그런 정당화를 사람들이 당연히 기대한다는 뜻이다.”
154
테틀록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정교한 추론에는 두 종류가 있고 둘은 매우 다른 성격을 지닌다. 우선 그중 하나인 탐구적 사고는 우리가 “대안이 될 수 있는 여러 관점을 공평하게 헤아려보는 것”을 일컫는다. 그에 비해 확증적 사고는 우리가 “특정 관점을 합리화하기 위해 기울이는 일방적인 노력”을 말한다. 책임감이 탐구적 사고를 증가시키려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한다.
(1) 의사결정자는 어떤 견해를 갖기 전 그 견해를 나중에 자신이 청중에게 해명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2) 의사결정자는 청중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몰라야 한다.
(3) 의사결정자가 보기에 청중은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또 정확성에도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어야 한다.
155
하지만 그 외의 경우에(우리 삶은 거의 백이면 백 여기에 해당한다.), 책임감 압력은 확증적 사고만 더 증가시킬 뿐이다. 사람들은 정말 올바른 사람이 되기보다는 올바른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더 애쓰는 것이다. 사람들의 이 같은 모습을 테틀록은 다음과 같이 요약 정리한다.
우리의 도덕적 사고가 이루어지는 모습은 진리를 발견하려는 과학자보다는 유권자의 표를 잡으려는 정치인에 훨씬 더 가깝다.
여론에 집착하는 우리 = 156
내 안의 유능한 대변인 = 159
160
1960년에 피터 웨이슨(네 장의 카드 과제)은 ‘2, 4, 6문제’라는 것을 주제로 보고서를 발표했다.
…
161
사람들은 규칙을 검증하기 위해 새로운 가설을 내놓는 데에는 전혀 힘들어하지 않았고, 때로 무척 복잡한 가설을 내놓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왠만해서는 하지 않으려는 일이 있었으니, 바로 자신의 가설에 위배되는 숫자 조합을 만들어 스스로의 가설을 검증해보는 일이었다.
… 이런 현상에 웨이슨은 확증 편향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우리는 일단 사고가 일어나면 그것을 확증하는 식으로 새로운 증거를 찾고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는 의미이다. 사람들은 다른 이들이 내놓는 진술에는 잘도 이의를 제기하다가도, 자신의 믿음이 도마에 오르면 태도가 달라진다.
162
쿤의 표현을 빌리면, 사람들은 마치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자, 여기 내 이론을 뒷받침해주는 증거가 나타났군. 그러니 내 이론이 옳은 거야.”
이런 허술한 사고는 양질의 교육을 통해 고쳐나가야 하는 법이다.
데이비드 퍼킨스 실험.
163
다시 말해 학교는 사람들에게 치밀하게 추론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고 있었다. 학교는 IQ가 높은 지원자들을 선별해내는 역할을 했고, 이 IQ가 더 높은 사람들에게는 더 많은 이유를 댈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이에 대해 퍼킨스는 “사람들은 전체 쟁점을 좀 더 온전하고 공평하게 탐구하는 데 IQ를 쏟아붓기보다는 자신의 논변을 더 든든히 떠받치는 데 IQ를 쏟아붓는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167
사람들은 어느 정도까지만, 즉 스스로의 힘으로는 더 이상 정당화가 안 될 때까지만 남을 속였다. 그렇게 해서 스스로가 정직하다는 믿음을 지켜내려 한 것이다.
댄 애리얼리 실험.(Ariely. 2008)p.201
일단 믿어라, 증거는 대줄 테니 = 168
168
‘해야 한다’를 ‘할 수 있어’
우리를 지지하는 것이라면, 다 옳다 = 171
합리주의자의 망상 = 176
178
누가 되었든 진리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이성을 신봉하는 일은 이제 그만두어야 할 것이다. 증거는 칼같이 냉엄한 눈으로 대하고 이성적 추론 능력으로는 그 실상을 파악하려는 태도가 우리 모두에게는 필요하다.
최근 프랑스의 인지과학자 위고 메르시에와 당 스페르베가 이 연구들을 가져다 검토해보았다. 이들의 결론에 따르면, 우리는 이성적 추론 능력을 다른 식으로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다. 즉, 그것을 진리를 찾는 수단이 아닌 남들과의 논쟁에서 주장하고 설득하고 조작하는 수단으로 봐야만 터무니없고 우울하기까지 한 그 연구 내용이 비로소 충분히 이해된다는 것이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렇다. “논쟁 기술을 갈고닦는 사람들은 … 진실을 찾는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할 논거를 찾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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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이성적 추론은 접어두고 직감만 따라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소비자 선택이나 대인 관계 판단에서는 때로 직감이 더 나은 안내자이기는 해도, 공공 정책, 과학, 법에서는 직감을 기초로 삼았다간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 그보다 이 대목에서 내가 내거는 핵심은, 개개인이 가진 이성적 추론 능력을 과대평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180
나아가 우리의 목표가 단순히 훌륭한 사고가 아니라 훌륭한 행동이라면, 우리는 더더욱 합리주의를 손에서 놓고 직관주의를 끌어안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
사람들의 행동을 더 윤리적으로 만들고 싶을 때 우리가 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첫 번째 방법은 코끼리를 변화시키는 것으로, 이는 시간도 오래 걸릴 뿐 아니라 이루기도 쉽지 않다. 두 번째 방법은 칩 히스와 댄 히스가 쓴 <스위치>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오는 것으로, 코끼리와 기수가 어느덧 발을 들인 극 길, 즉 주변 환경에 변화를 주는 것이다.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주변 환경에 소소한 변화만 줄 수 있어도 사람들의 윤리적 행동은 크게 나아진다.
2부 제2원칙: 바른 마음에는 다양한 힘이 있다 – 도덕성은 단순히 피해와 공평성 차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5장 편협한 도덕성을 넘어 = 187
189
<세상에서 가장 별난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펴냈는데, 여기에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중요한 내용들이 들어 있었다. 이들의 지적에 따르면, 심리학의 거의 모든 연구는 인류 전체 중에서도 아주 소수의 하위 집단만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즉, 서양적이고 고학력이고 산업화되고 부유하고 민주주의적인 (여기서 WEIRD라는 준말이 나왔다.) 문화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대상이라는 이야기이다. 나아가 이들이 수십 가지 연구를 검토해본 결과, 이 WEIRD권에 속하는 사람들이 통계적으로는 열외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리가 인간 본성을 일반화하고 싶을 때 연구할 수 있는 대상은 많은데, 이 WEIRD권 사람들은 그중에서도 가장 전형적이지 못하고 대표성도 가장 적다는 것이었다.
190
WEIRD의 특성이 강한 사람일수록 이 세상이 관계보다는 별개의 사물로 가득 차 있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191
WEIRD권 철학자들이 왜 대체로 개인주의적이고 원칙 지향적이고 보편주의적인 도덕 체계를 내놓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자율적 개인들이 모인 사회를 다스리려면 그런 도덕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전체적 사고방식을 지닌 비WEIRD권 사상가들에게서는 이와는 전혀 다른 도덕 체계가 나오기 마련이니, 공자의 <논어>가 대표적이다. 갖가지 잠언과 일화가 모아져 있는 <논어>의 내용은 한 가지 원칙으로는 환원될 수가 없다. 공자는 그 대신 갖가지 인간관계에 따르는 구체적 의무와 도리를 주로 이야기한다.
192
비 WEIRD권 사회에 살면서 관계, 맥락, 집단, 제도를 인식할 확률이 높은 사람의 경우에는 개인을 보호하는 일에만 초점을 맞추지는 않을 것이다. 즉, 이때에는 좀 더 사회중심적인 도덕성을 가지게 되는데, 개인들의 요구보다 집단과 기관의 요구를 우선시하는 경우가 많아진다는 뜻이다.
윤리의 세 가지 모습 = 193
194
나의 관심을 사로잡았던 것은 슈웨더가 오리사에서 연구한 내용을 토대로 하여 발전시킨 새로운 도덕성 이론이었다. 슈웨더는 그 연구를 발표하고 나서 동료들과 함께 그동안 모은 600여 개의 인터뷰 기록을 계속 분석했다. 그 결과 도덕의 주제가 크게 세 가지 군으로 나뉜다는 것을 알아낸 그들은 거기에 각각 자율성의 윤리, 공동체의 윤리, 신성함의 윤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각 윤리는 개개인이 무엇을 진정 중요한 것으로 여기느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
인도에서 발견한 새로운 도덕 = 198
202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공간에는 일종의 수직적 계열이 존재하는데, 인간의 마음은 이것을 자동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 안에 어떤 종류의 초자연적 존재가 들어가는가는 문화마다 다르고, 모든 문화에 이런 수직적 계열이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높은=훌륭함=순수함=신’, ‘낮음=열등함=더러움=동물’이라는 생각은 세계 곳곳에서 아주 널리 발견되는 게 사실이다.
207
신성함의 윤리가 있으면 고상함과 비속함에 대한 빈약한 인식(즉, 무엇이 ‘높고’ ‘낮은’ 행동인지에 대한 감각)에도 명확한 틀이 생길 수 있다. 이를 이용하면 지나친 물질주의는 물론, 지각없이 성을 가볍게 여기는 태도도 경계할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그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이 소비사회를 안타깝게 바라본 이유, 즉 스스로의 욕망을 채우는 것이 사명인 이곳을 영혼이 텅 빈 곳이라며 탄식한 이유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매트릭스 바깥으로 걸어 나오기 = 208
6장 바른 마음이 지닌 여섯 가지 미각 = 216
217
학계에는 도덕성 문제를 아직도 단 하나의 원칙에만 환원시키는 학자가 많은 실정이고, 이들은 공공복리 최대화의 원칙을 어떻게든 변화시키는 것이 보통이다.
도덕학의 탄생 = 220
221
도덕성과 관련한 흄의 업적은 계몽주의 운동의 정수로 손꼽힐 만한 것이었다. 그는 이전까지 종교가 끌어안고 있던 영역을 탐구하고 나선 것은 물론, 거기에 새로운 자연과학의 방법과 태도를 활용했다. 그는 첫 번째 걸작 <인간 본성론(A Treatise of Human Nature)>을 써낼 때도, “도덕학에 논리 추론의 실험적 방법을 도입하기 위한 노력”을 부재로 삼았다. 흄이 보기에 ‘도덕학’이 먼저 해야 할 일은 인간 본성이 어떤지 우선 그 실상부터 면밀히 파고드는 것이었다.
공감 능력을 잃은 바른 마음 = 223
224
사이먼 베런코언의 인지양식의 두 가지 차원
자폐증이 있는 사람들은 체계화 능력은 매우 높은 반면 공감 능력은 매우 낮은 경향이 있다. 도덕철학자로 중요하게 꼽히는 몇몇 인물도 그런 경향이 있었다.
도덕적 미각을 늘려라 = 230
230
심리학에서 우리 목표는 실상을 그려내는 데 있다. 우리가 알아내고자 하는 것은 마음이 어떤 식으로 작동해야 하는가보다는 마음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이다.
7장 정치는 도덕을 어떻게 이용하는가 = 243
태어나기 전에 이미 만들어진 것들 = 246
247
마커스는 종전의 내장 설계도를 대신해 한결 나은 비유를 제시한다. 즉, 인간의 뇌는 한 권의 책과 같고, 엄마의 배 속에 있는 동안 유전자가 그 초고를 쓴다는 것이다. 따라서 태어날 당시 책에는 어느 장도 완성되어 있지 않으며, 일부는 아예 개요만 대략 정해져 있어서 아동기를 거치며 그 내용을 채워야 한다. 그러나 각 장(성욕, 언어, 음식 취향, 도덕성에 관한 내용이라고 하자)은 또한 완전히 빈 여백은 아니어서 사회가 생각나는 대로 아무 말이나 써넣을 수 잇는 것도 아니다.
배려와 피해 = 248
공평성과 부정 = 254
255
진화 이론가의 이야기를 들으면 종종 유전자를 ‘이기적’이라고 말할 때가 많은데, 그 말은 유전자는 오로지 자기 복제에 도움이 될 때만 동물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그러나 도덕성 기원과 관련해 무엇보다 중요한 통찰은, 이 ‘이기적’ 유전자로부터 관용을 지닌 존재가 만들어져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다.
258
사람들이 생각하는 공평성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좌파의 공평성은 평등의 의미를 함축할 때가 많은 반면, 우파의 공평성은 비례의 원칙을 의미한다. 즉, 우파에서는 사람들이 자기가 기여한 만큼 그에 따른느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보며, 그로 인해 불가피하게 불평등한 결과가 발생해도 어쩔 수 없다고 여긴다.
충성심과 배신 = 259
261
1970년대에 일부 인류한자가 주장한 것과는 다릴, 유일하게 인간이라는 종만 전쟁을 일으켜서 동족을 죽이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밝혀진 바에 따르면, 침팬지도 자신의 영역은 지키고 라이벌의 영역은 침략하는 것으로 보이며, 역량만 되면 이웃 집단의 수컷들을 죽이고 그 집단의 땅과 암컷들을 차지한다. 더불어 오늘날 밝혀진 바로, 전쟁은 농경과 사유재산이 생겨나기 훨씬 이전부터 인간 삶의 한 부분을 늘 구성해왔던 듯하다.
262
스포츠 경기에서 작동하는 심리도 상당 부분이 충성심 기반의 통용적 동인들이 확대된 것들로, 이를 통해 사람들은 서로 하나로 엮이는 즐거움과 누군가를 해치지 않고 획득할 수 있는 전리품을 손에 넣는 즐거움을 맛본다.
권위와 전복 = 265
266
인간에게서 위계질서 존중의 욕구는 그 뿌리가 무척이나 깊은 것으로, 상당수 언어가 문법을 통해 위계질서 존중을 직접 규정하고 있을 정도이다. … 프랑스에서는 상대방에 따라 존대법과 하대법을 따로 구별해 써야 한다.
267
영장류 동물학자인 프란스 드발은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사회적 규칙을 잘 지켜야 한다는 의식이 발로되려면 서열에 대한 동의와 권위에 대한 존중이 어느 정도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고양이를 데리고 간단한 집 안 규칙을 가르쳐본 사람이라면 이 말뜻에 쉽게 수긍할 것이다.”
고귀함과 추함 = 272
275
대부분의 동물은 날 때부터 자신의 식량이 뭔지 잘 알고 있다. 예를 들면, 코알라의 경우 유칼립투스 나뭇잎을 찾아 먹도록 감각 체계가 ‘경험 이전에 구조화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은 무얼 먹을지 알려면 반드시 학습을 거쳐야 한다. 생쥐나 바퀴벌레처럼 무엇이나 먹어치우는 잡식성이기 때문이다.
잡식동물은 융통성 면에서는 엄청난 이점이 있다. 우연찮게 신대륙을 발견해 발을 들이는 상황에서도 뭐든 먹을 게 있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리한 점도 있으니, 그 새로운 음식은 독이 들었을 수도, 미생물에 오염되어 있을 수도, 기생충으로 가득 차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잡식동물의 딜레마'(이 말을 처음 만든 것은 폴 로진이다.)란, 새로운 음식을 찾아 늘 탐험하지만 그것이 안전하다고 밝혀질 때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잡식동물의 처지를 말한다.
따라서 잡식동물은 평생 두 가지 동기가 엇갈리는 삶을 살아간다. 즉, 새로운 애호증과 새로운 혐오증 사이에서 헤매는 것이다.
8장 도덕적인 인간이 승리한다 = 287
288
공화당원은 도덕심리학을 잘 이해하고 있지만, 민주당원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정치적 행동을 주관하는 것은 기수가 아니라 코끼리라는 것을 공화당원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해하고 있었고, 코끼리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도 잘 알고 있다.
289
그러나 닉슨 대통령 시절 이래 공화당원들이 거의 독점하다시피 활용해온 기반은 역시 충성심과 권위였다. 293에 증거.
도덕성을 측정하다 = 291
295
진보파의 연구 중에는 보수주의자가 어떤 면에서 잘못인지를 설명하려는 것이 너무 많았다.(“보수주의자들은 왜 보통 사람들처럼 평등, 다양성, 변화를 수용하지 않는가?”하는 식으로 말이다.)
297에 증거. YourMorals.
가난한 사람들이 왜 보수 정당에 투표하는가 = 300
304
좀 더 구속적인 사회 개념을 수호해온 사람은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으로, 일찍이 아노미(무규범 상태) 현상을 경고한 그는 1897년에 이렇게 썼다. “인간은 자신이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자기보다 높은 무엇이 보이지 않으면 고차원의 목표에 애착을 가지거나 규칙에 순응하지 못한다. 사회의 모든 압력에서 자유롭게 해방된다는 것은 곧 스스로를 버리는 것이자 든든한 기반을 잃는 것이다.”
… 305. 뒤르켐의 사회가 더 중요시하는 것은 자기표현보다는 자기 절제, 권리보다는 의무, 타 집단에 대한 관심보다는 자기 집단에 대한 충성이다.
에드먼드 버크, 에밀 뒤르켐 저서 독서.
305
생각해보면 이 지구에서 성공한 나라치고 플루리부스(각양각색의 민족)로 우눔(하나의 국가)을 만들어내는 기적을 연출하지 않은 곳은 없다. 이 기적을 더 이상 연출하지 못할 때 나라는 망하거나 쪼개진다.
민주당이 플루리부스 정당이 된 것은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였다.
미처 헤아리지 못한 부분 = 307
자유와 압제 = 311
314
우리 조상들이 처음으로 명실상부한 도덕 공동체를 만들어낸 것도 언어가 출현하고 한참 뒤인 지난 50만 년 중의 한 시점일 것이라고 보엠은 주장한다.
314
물론 인간 본성이 한순간에 바뀌어 갑자기 평등주의를 지향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은 상황과 수완만 되면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고 드니까 말이다. 본성이 바뀌었다기보다는 사람들이 무기와 험담으로 자신을 무장하게 됨으로써, 보엠이 말한 “지배 서열의 전도” 현상이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 옳다.
315
그 결과 선천적으로는 위계질서 속에서 살아가야 맞는 존재들이 서로 협동하여 언제든 깨질 수 있는 정치적 평등주의를 만들어낸 것이다.
노력한 만큼 가져야 = 322
324
호혜적 이타주의 체계는 단순히 고차원의 사회성 지능이 있다고 해서 돌아가는 것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즉, 호혜적 이타주의가 나타나려면 험담 징계 도덕성을 갖춘 공동체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공동체는 언어와 무기가 등장한 이후에나 나타난다. 초창기 인류가 불한당을 처단하고 그들을 도덕 매트릭스 안에 붙잡아둘 수 있었던 힘이 바로 언어와 무기였으니 말이다.
진보주의자의 세 가지 도덕 기반 vs 보수주의자의 여섯 가지 도덕 기반 = 331
337
우리는 공평성 기반에 수정을 가해 그것이 비례의 원칙에 초점을 맞출 수 있도록 했다. 공평성 기반이 호혜적 이타주의 심리에서 출발하는 것은 맞지만, 인간이 험담과 징계가 가능한 도덕 공동체를 만들어내고부터는 공평성 기반이 짊어진 의무가 훨씬 많아졌다.
3부 제3원칙: 바른 마음은 개인보다 집단의 차원에서 더 강력하다 – 도덕은 사람들을 뭉치게도 하고 눈멀게도 한다
9장 우리는 왜 그토록 집단적이 되는가 = 341
승리하는 부족 = 346
346
이렇듯 개인 대 개인의 경쟁과 집단 대 집단의 경쟁은 인간 본성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떠밀어왔는데, 그러다 보니 오늘날 보다시피 우리 안에는 이기심과 이타심이 묘하게 뒤섞여 있다.
350
그러나 ‘다양한 사회성 덕목을 발전시키는 데에 무엇보다 중요했던 자극제’는 따로 있으니, 바로 사람들은 ‘동료의 칭찬과 책망’에 촉각을 곤두세운다는 사실이다.
나의 이익보다 우리의 이익이 더 중요하다 = 353
354
윌리엄스 : 어떤 특성이 나타나는 이유가 저차원(이를테면 개체)의 선택 효과로 충분히 설명된다면 굳이 고차원(이를테면 집단)까지 눈을 돌릴 필요가 없다고 그는 독자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나아가 윌리엄스는 집단 차원의 분석을 들이대야만 설명되는 경우도 예를 든다. 즉, 동물의 행동 중에는 개인보다도 집단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혹은 기능)인 행동 기제도 있을 수 있다.
증거 A : 진화상의 거대한 변화 = 360
365
이 세상에 사회성을 보이는 동물은 많다. 자기들끼리 이러저러하게 떼를 지어 함께 살아가는 동물은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특정 수준의 사회성 문턱을 넘어 초사회성 단계까지 진입하는 동물은 몇 되지 않는다. 초사회성이란 무척 커다란 규모로 집단을 이루고 살면서 그 안에 어느 정도 내부 구조를 갖추어 노동 분업의 이득을 얻을 줄 아는 것을 말한다.
… 인간 이외의 동물들이 초사회성으로 진입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특성 중 하나는 공동의 보금자리를 지켜내야 할 필요인 것으로 보인다.
366
휠도블러와 윌슨은 초사회성으로의 집입을 설명하는 근거로 두 가지 요인을 더 든다. 하나는 더 길어진 양육 기간 동안 새끼를 먹여 살려야 할 필요성이고, 나머지 하나는 집단 사이의 갈등이다.
증거 B :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함께 달리기 = 368
370
토마셀로에 따르면, 인간의 인지능력이 침팬지의 그것과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 것은 우리 조상들이 어느 순간 공통된 의도라는 것을 발달시키게 되면서였다.
증거 C : 유전자와 문화는 함께 진화한다 = 374
374
문화가 쌓여간다는 것은, 사람들이 서로를 통해 배우고, 그것에 스스로 혁신을 더하고, 또 자신들이 낸 아이디어를 후대에 전수해준다는 뜻이다.
377
인류학자 피터 리처슨과 롭 보이드가 주장해온 바에 따르면, 문화적 혁신의 진화 방식은 생물학적 혁신의 진화 방식과 상당 부분 동일하다고 한다.
378
이렇게 문화적 혁신에서 유전적 반응이 나올 수 있다고 하면, 도덕성과 관련된 문화적 혁신에서도 일련의 유전적 반응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볼 수 있다.
379
그런 문화적 혁신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은 상징적 표시를 통해 자신이 속한 집단을 나타내는 것을 무엇보다도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 그리고 일부 집단은 그렇게 초기 부족주의라는 문화적 혁신이 일단 일어나자, 유전적 진화에 밑바탕이 되는 환경을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381
초창기 인간들이 스스로를 길들인 방식도 이와 비슷했다. 즉, 사람들은 친구나 파트너를 고르면서 그들이 부족의 도덕 매트릭스 안에서 잘 살아나갈 수 있을지를 따졌다. 실제로도 가축이 길들여질 떄 나타나는 양상은 우리 인간의 뇌, 신체, 행동에도 똑같이 나타난다.
증거 D : 진화는 빠른 속도로 일어날 수 있다 = 382
387
유전자의 진화 속도는 최근 5만 년 사이에 엄청난 가속도가 붙은 것이다. 선택 압력에 대한 유전자 변화는 지금으로부터 약 4만 년 전부터 그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해, 2만 년 전부터는 가속도가 점점 더 증가하는 양상을 띠었다. 그러다가 완신세를 거치면서 유전자 변화 속도는 정점에 이르렀으니, 이는 유라시아 대륙은 물론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389
문화적 변화는 매우 빠른 속도로 일어나곤 하는 바, 여섯 가지 도덕성을 기반으로 건설된 도덕 매트릭스도 그에 따라 몇 세대 만에 급속히 변화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새로 만들어진 도덕 매트릭스라도 이후 수십 세대가 지나 다소 안정된 상태에 있게 되면, 새로운 선택의 압력이 적용되어 유전자와 문화의 공진화가 다시금 일어날 수 있다.
10장 군집 스위치 : 나를 잊고 거대한 무엇에 빠져들게 만드는 능력 = 396
397
맥날은 참전 용사들에게서 갖가지 일화를 듣고 그것을 연구한 결과, 이들이 전쟁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것은 조국이나 자신의 이상을 위해서였다기보다 그와 함께했던 전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군집 가설 = 399
많이 모일수록 흥분된다 = 400
403
뒤르켐은 자신과 동시대 인물을 곧잘 비판했는데, 예를 들면 프로이트의 경우 도덕성과 종교를 개인 심리 및 그가 맺는 양자 관계의 심리로만 설명하려 한 것이 문제였다. 한편 뒤르켐의 주장은 이와는 상반되는 것이었으니, 호모 사피엔스는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차원에서 살아가는 존재기 때문에 호모 듀플렉스라고 해야 옳다. 인간은 개별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더 커다란 사회의 일부라는 것이다.
404
뒤르켐이 말하는 이 고차원의 감성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집단적 들썩임”으로서, 집단적 의식에서 생겨날 수 있는 열정과 열광을 말한다.
‘나’를 버리고 ‘우리’로 들어가는 다양한 방법 = 406
406
군집 스위치와 관련해 가장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이 스위치를 켜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 스스로가 자연의 일부임을 느끼는 순간
우리에게 일어나는 이런 경외의 감정은 다음의 두 가지 특성이 동반되는 상황에서 가장 많이 일어난다. 그 첫 번째 특성은 광대함이고, 다른 하나는 수용의 필요성이다. 경외심.
-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하는 환각제
- 수천 명이 모인 광란 댄스 파티
415
군집스위치가 시의적절하게 켜질 때 사람들이 바뀐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내 눈에는 내가 가르치던 학생들이 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비치기 시작했다.
… 학생들은 어떤 소명 같은 것을 찾고 있었다. 자신을 넘어서서 더 커다란 집단의 일부가 되었을 때만 찾을 수 있는 그런 소명을 말이다. 더불어 학생들의 그런 노력과 모색은 두 차원 모두에서 동시에 이뤄지고 있었다. 우리는 누구나 두 차원 모두에서 살아가는 호모 듀플렉스인 것이다.
416
사람들을 커다란 집단으로 엮는 방법은 진화가 진행되는 도중 어쩌다 우연히 발견된 것이라고 치자.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접착제 역할을 했을 것으로 가장 유력시되는 물질이 있으니, 바로 시상하부에서 만들어내는 호르몬이자 신경전달물질인 옥시토신이다. 옥시토신은 척수동물이 어미가 되는 채비를 할 때 널리 사용하는 물질이다.
417
옥시토신만 넣을 수 있다면, 인류가 전쟁이나 잔혹한 학대를 겪는 일은 앞으로 영영 없지 않을까?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지는 않다. 군집 스위치라는 것이 집단선택의 산물이라면, 거기에는 집단선택의 두드러진 특징이 나타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이때의 이타주의는 편파적 이타주의이다. 옥시토신의 기능은 우리를 우리의 파트너 및 집단과 뭉치게 하는 것으로서, 다른 집단과의 경쟁에서 더 효과적이 되도록 만들어준다. 옥시토신은 우리를 인류 전체와 엮어주지는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함께 모여 일하는 즐거움 = 422
422
회사를 뜻하는 영어 ‘corporation’은 ‘몸’을 뜻하는 라틴어 ‘corpus’에서 온 말이다. 문자적으로만 풀어도 회사는 곧 초개체라는 뜻이 된다.
423
이렇듯 법적 의제로서 “수많은 개인의 무리”를 새로운 개인으로 인정한 것이 결과적으로 사람들에게는 성공 전략으로 기능했다. 이 개념을 숙지하자 사람들은 새로이 등장한 배에 스스럼없이 올라탔고, 그 안에서 서로 노동을 분담하고, 무임승차를 억제했으며, 향후 엄청난 보상이 따르리라고 여겨지면 다 함께 엄청난 과업에도 도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424
로버트 호건, 로버트 카이저, 마크 판 퓌흐트의 주장에 따르면, 리더십leadership은 추종fellowship의 상보적 개념으로 볼 때에만 제대로 된 이해가 가능하다.
425
…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왜 리더가 되고 싶어 하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왜 사람들이 누구를 추종하려는 성향을 갖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정말로 풀기 어려운 문제이다.
위의 학자들은 이와 관련해 진화를 거친 인간이 살아가기에 적당한 집단의 크기는 최대 150명이 적정선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정도 크기라야 비교적 평등하게 생활하는 한편 일인자 수컷에 대한 경계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 또 연구결과에 따르면, 느닷없이 자연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람들은 서로 생면부지라도 자발적으로 리더와 추종자 그룹으로 나뉘어 활동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사람들은 자기 집단이 무엇을 해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지면, 더불어 리더로 나서는 사람이 자신의 민감한 압제 탐지기만 건드리지 않으면, 얼마든지 행복한 마음으로 리더를 따른다. 따라서 리더가 도덕 매트릭스를 건설할 때는 반드시 권위 기반(리더의 권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자유 기반(아랫사람에게 압제의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 그래서 이들이 하나로 뭉쳐 불한당 일인자를 몰아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충성심 기반이 어떤 식으로든 바탕이 되어야만 한다.
군집 쪽으로 더 옮겨가도록 부드럽게 유도할 수 있는 방법
426
- 다양성보다는 동질감을 키워나간다.
서로 간의 동질감을 더 늘려가고, 나아가 집단의 공통된 가치와 정체성을 소중히 여겨 그러한 차이를 오히려 별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 공동 활동을 적극 활용하라
- 개인보다는 팀 사이에 건전한 경쟁을 일으키라.
428
거래적 리더십은 추종자들이 누구를 따를 떄 얻게 될 개인적 이득에 호소하는 반면, 변혁적 리더십은 추종자들로 하여금 스스로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한다는 데 특징이 있다. 스스로를 더 이상 고립된 개인이 아닌, 자기보다 커다란 집단의 한 구성원으로 보게 된다는 것이다.
진보 공동체에서 보수 공동체까지 = 429
429
위대한 지도자는 뒤르켐의 사상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430
군집심리를 기괴하다 싶을 정도로까지 십분 활용한 것이 바로 파시즘이다.
–애런라이크의 <길거리에서 춤을> – 행사와 축제의 차이 참고.
11장 종교는 믿음의 문제가 아니다 = 437
외로운 독신자 = 441
441
오늘날 과학자 중에는 종교에 대해 잘못된 이해를 가진 이를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그 까닭은 다음 아니라 이 같은 원칙을 무시하고 눈앞의 현상만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종교를 연구하면서 집단과 집단 통합적인 관습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개개인과 그들의 초월적 믿음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445
깊은 신앙심이 상보적이면서도 서로 구별되는 세 가지 요소, 즉 믿음, 행위, 소속감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현재 많은 학자가 주장하고 있다.
즉, 우리가 가진 믿음은, 자신이 저지른 어떤 일을 정당화하기 위해 혹은 자신이 속한 어떤 집단을 편들기 위해 우리가 나중에 만들어낸 구상물일 때가 많다.
신무신론자의 논지 : 종교는 망상이다 = 446
더 조리 있는 설 : 종교 역시 인간이 선택한 것 = 453
453
신무신론파에 합류하지 않은 과학자들의 경우에는 종교가 적응의 결과일 수 있음을 논지로 삼으려는 경향이 훨씬 더 강하게 나타난다.
… 신무신론파가 그랬듯이, 이들의 설도 두 단계로 되어 있으며 그 첫단계는 신무신론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갖가지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인간은 적응의 결과로 다양한 인지 모듈과 능력을 발달시키게 되었다. 그런데 이 장치들에서 종종 오작동이 일어나면서 일련의 믿음이 생겨났고, 이는 다시 인류 역사 초창기에 반종교적 행위들이 나타나는 데 기여했다.
… 그리고 신무신론파가 그랬듯이, 이들의 경우에도 두 번째 단계에 이르면 문화적(유전적이지 않은) 진화가 등장한다. 그러나 애트런과 헨리히가 보기에 종교는 기생 밈이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진화한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 종교는 일련의 문화적 혁신으로서, 집단의 단결성과 협동성이 더 향상될 때까지 퍼져나간다.
454
인간 집단이 농경을 받아들여 그 규모가 좀 더 커지면, 신들도 훨씬 더 도덕적인 모습이 된다. 규모가 큰 집단의 신들일수록 집단 내에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행동, 이를테면 살인, 간통, 위증, 서양 파기 등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 상례이다. 이렇듯 집단 내 이기심과 불화를 처단하도록 (문화적으로) 진화하는 것이 신이라면, 신은 집단 내에 협동심과 신뢰를 돈독히 다지는 데 활용될 수 있다.
455
실제로 종교가 집단의 단결력을 높이고, 무임승차자 문제를 해결하며, 집단 차원의 생존경쟁에서 승리하게 해준다는 증거는 현재 학계에 숱하게 나와 있다.
그중 가장 확실한 증거가 인류학자 리처드 소시스의 연구로, 19세기 미국에 세워졌던 공동생활촌 200여 개의 역사를 담고 있다.
종교적 생활촌이 더 오랜 수명을 자랑 … 왜 일부는 스러지는지? … 그 변수란 –
… 한 가지 중대 변수가 드러났다. 각 공동생활촌이 구성원들에게 값비싼 희생을 얼마나 요구했느냐가 결정적 변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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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스의 주장에 따르면, 의례와 법률을 비롯한 각종 제약은 그것이 신성시될 떄 가장 잘 작동하기 떄문이다. 이와 관련해 소시스는 인류학자 로이 라파포트의 말을 빌려온다. “사회적 규약에 신성함을 부여한다는 것은 곧 그것이 가진 자의성을 필요성의 망토로 덮어버리는 것과 같다”
… 그러나 비종교적인 단체의 경우 조직에서 희생을 요구하면 사람들은 비용 대 이득의 잣대로 제각각 희생을 분석하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뒤르켐의 설 : 공동체를 이끄는 강력한 힘 = 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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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 스티븐 랜싱의 연구를 바탕으로 한 발리 섬에서 쌀농사를 짓는 농부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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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 섬에서는 사회조직의 가장 낮은 단계에 있는 사람들을 수박이라고 부르는데, 대가족 몇 가구가 하나로 뭉친 집단으로서 이들 내에서의 의사결정은 민주적으로 이루어지는 편이다. 이 수박집단에는 자기들 고유의 조그만 사원이 하나씩 있었으며, 그 안에서 자기들 고유의 신을 따로 모셨다. 발리 섬의 힘든 쌀농사를 집단으로 뭉쳐 해낸 것이 바로 수박 집단들이었다.
… 공공시설 건설과 유지의 문제를 발리인들은 기막힌 종교적 해법으로 풀었으니, 관개시설이 뻗어 나오는 갈래마다 조그만 사원을 하나씩 지은 것이다. 그러자 사원 아래에 사는 수박들이 다 같이 이 사원의 신을 섬기면서 하나의 공동체로 통합되었고, 이로써 수박들은 더러 분쟁이 일어나도 좀 더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467
니콜라스웨이드<신앙본능>
… “[종교로 단결되는]이런 사회에 속해 있는 것이 단결력이 약한 집단에 속해 있는 것보다 생존과 번식 확률이 더 높다. 단결력이 약한 집단의 경우 적에게 파멸당할 수도, 집단 내 불화로 자멸할 수도 있기 떄문이다. 따라서 전체 인구 속에서 유전자는 종교적 행동들을 더욱 늘려가려는 경향을 가지며, 나아가 단결력이 약한 집단은 쇠하고 단결력이 강한 집단은 흥하는 과정 속에서 이러한 종교적 행동들은 세대가 거듭될수록 더욱 흔해진다.”
신은 과연 선한가 악한가 = 469
473
종교적 이타주의는 과연 외부인에 대한 은덕일까 아니면 저주일까?
이와 관련해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과 데이비드 캠벨은 <아메리칸 그레이스 : 종교는 어떻게 사회를 분열시키고 통합하는가>라는 책을 써서, 종교 유무에 따라 미국인들의 모습이 어떻게 다른지를 갖가지 자료를 통해 설명해낸다.
474
즉, 지옥을 믿는가, 매일 기도하는가, 가톨릭, 개신교, 유대교, 모르몬교 중 무엇을 믿는가 등의 이 모든 것은 종교인이 베푸는 아량과 아무 상관이 없었다. 종교가 이루어내는 도덕적 선행과 확실하고 강하게 연관된 사실은 단 하나, 바로 사람들이 동료 종교 인과의 관계에 얼마나 단단히 얽혀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도덕 매트릭스 안에서 맺어지고 이루어지는 우정과 집단 활동이 이타심을 강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에게서 최선을 이끌어내는 힘도 바로 그것이었고 말이다.
신과 종교 없이 살 수 있을까 = 475
475
퍼트넘과 캠벨은 믿음을 강조했떤 신무신론파의 입장을 거부하고 마치 뒤르켐의 입에서 나온 듯한, 다음과 같은 결론에 다다른다. “이웃을 사랑하는 데에서 중요한 것은 종교적 믿음이 아니라, 바로 종교적 소속감이다.”
476
로벝트 페이프는 지난 100년 간의 자살 테러 공격을 모아 일일이 데이터베이스화해보았는데, 자살 폭탄 테러는 애국심에서 나오는 반응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것은 문화적으로 전혀 이질적인 민주주의 세력이 자신들 나라를 군사적으로 점령하는 데 대한 반발이었다. 즉, 군화와 장갑차로 자기들 땅을 밀고 들어오는 데 대한 반응이었지, 하늘에서 폭탄이 몇 발 떨어졌다고 해서 보인 반응이 아니었다.
즉, 어떤 것이든 사람들을 하나의 도덕 매트릭스로 엮을 수 있기만 하면, 그리하여 내부 집단은 미화하고 동시에 타 집단은 악으로 몰 수 있기만 하면, 거기에서 도덕을 내세운 살인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종교는 이러한 과업을 이루기에 딱 좋은 형태인 것이고 말이다. 따라서 종교는 잔혹 행위를 일으키는 원동력이기보다 잔혹 행위의 방조자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종교에는 어느 정도 고마운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다. 인류가 써온 그 오랜 역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또 거의 기적과도 같이 희한하게 진화한 우리의 바른 마음을 바라보고 있으면, 종교가 없었어도 과연 우리가 이만큼이나 올 수 있었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침내 등장하는 도덕성의 정의 = 478
479
도덕성 정의에 대한 내 작업이 다음과 같은 뒤르켐의 말로 시작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결국 사람들 간에 연대를 형성시키는 모든 것, 나아가 … 자신의 자아보다 … 커다란 무엇을 통해 인간이 스스로의 행동을 규제하게 만드는 모든 것, 그것이 바로 도덕이다.” 뒤르켐은 사회학자였던 만큼 개인의 자아를 제약하는 사회적 사실들에 주로 초점을 맞추었다.
… 그러나 나는 심리학자인 만큼 도덕성과 관련한 요소가 마음 바깥은 물론 우리의 마음 안에도 자리 잡고 있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이 책에서 소개한 갖가지의 진화한 심리 기제들, 즉 도덕적 감정들, 내면의 변호사, 여섯 가지 도덕성 기반, 군집 스위치 등이 이러한 내적인 요소에 해당한다.
이 두 종류의 퍼즐 조각을 한데 모으면 도덕 체계에 대한 나의 정의가 다음과 같은 식으로 만들어진다.
“도덕적 체계란 가치, 미덕, 규범, 관습, 정체성, 제도, 첨단 기술 등이 진화한 심리 기제와 서로 맞물려 있는 것을 말한다. 이 둘은 도덕적 체계로서 함께 작용하여 개인의 이기심을 억제하거나 규제하며, 나아가 협동적인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게 한다.”
정치적 다양성에 관하여 = 490
490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치심리학 연구 대부분은 미국인 표본을 이 좌파, 우파의 틀로 다루고 있기 떄문에, 우리로서는 많은 경우 이 도식을 그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다.
유전자에서 도덕 매트릭스까지 = 491
491
이데올로기를 간단히 정의 내리라고 한다면, “무엇이 적합한 사회질서이고, 그것을 어떻게 이룩할 것인가에 대한 일련의 믿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789년 프랑스 혁명 당시 프랑스 의회에 모인 각기 대표들은 질서유지를 원할 경우 우측에, 변화를 원할 경우 좌측에 앉았다. 이때부터 우와 좌는 각각 보수와 진보를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
492
정치철학자들이 이 현상을 면밀히 살펴본 결과, 개인적 이득은 사람들의 정치 성향을 예측하는 데에는 별 도움을 못 주는 것으로 드러낫다.
진보주의와 보수주의의 장대한 서사 = 502
507
나는 제시 그레이엄, 브라이언 노섹과 공동 연구를 진행하여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가 서로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지 테스트해보았다.
508
그렇다면 남의 입장이 되어보는 이 테스트에서 제일 뛰어났던 것은 누구였을까?
연구 결과는 명확하고 일관된 내용을 보여주었다. … 제일 정확한 예측을 내놓는 이들은 온건파와 보수파였다. 그 반대는 진보파, “매우 진보적”이 특히 정확성이 떨어짐.
공동체를 지탱하는 도덕적 자본의 힘 = 510
511
이제까지 계몽주의에 대한 저항해온 이들은 대부분 보수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뮬러의 주장에 따르면, 현대 보수주의의 기원은 오히려 주류의 계몽주의 사상 내에서 찾을 수 있었다. 데이비드 흄이나 에드먼드 버크 같은 사상가들이 합리성, 실용성, 그리고 사실상의 공리성에 입각해 당시의 계몽주의 기조를 비판하려고 노력한 것이 현대 보수주의의 시초라는 이야기였다.
516
도덕 공동체란 단순한 혈연관계를 넘어서 성장한 집단인바, 그것이 이루어내는 기적을 이해하려면 단순히 사람 하나하나, 혹은 그 사이의 인간관계만 살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사람들의 관계가 자리 잡고 있는 완벽한 환경과 거기서 더 선한 사람들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살펴야 한다.
517
도덕적 자본이란 어떤 공동체가 가진 가치, 미덕, 규범, 관습, 정체성, 제도, 첨단 기술, 그리고 이와 맞물린 진화한 심리 기제의 정도를 말한다. 이 둘은 도덕적 체계로서 함께 작용하여 개인의 이기심을 억제하거나 규제하며, 나아가 협동적인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게 한다.
519
조직이나 사회에 변화를 꾀하면서 그 변화가 도덕적 자본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으면 공연히 문제만 일으키게 되고 만다. 내가 보기에는 이것이아말로 좌파가 가진 가장 근본적인 맹점이 아닐까 한다.
하나의 음, 두 개의 양 = 520
520
존 스튜어트 밀은 진보와 보수도 곧 이와 같다고 이야기했다.
“건강한 상태의 정치적 삶을 이룩하려면, 질서 혹은 안정을 추구하는 정당과 진보 혹은 개혁을 추구하는 정당, 이 둘이 모두 필요하다.”
두 번째 양 : 사회적 보수주의자에게 배울 점 = 539
540
YourMorals.org에서의 연구 결과 우리는 사회적 보수주의자들이야말로 누구보다 폭넓은 도덕적 관심사를 가지고 있음은 물론, 이들이 여섯 가지의 기반 모두를 비교적 골고루 중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폭넓은 관심사는 보수주의자들로 하여금 일정한 통찰력을 갖게 해주는데, 뒤르켐식 공리주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통찰력은 매우 소중한 것으로 여겨진다.
543
예를 들어 에드먼드 버크의 경우 1790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느 한곳에 애착을 갖는 것, 사회 안에서 우리가 속해 있는 그 조그만 소대를 사랑할 줄 아는 것, 이것이야말로 일반 대중을 사랑할 수 있는 첫 원칙이다. 이를 시작으로 해서 줄줄이 이어진 고리를 하나하나 거치면 우리는 차차 우리의 조국, 나아가 인류를 사랑하는 단계까지 나아갈 수 있다.”
보다 교양 있는 정치를 향하여 = 546
550
따라서 상대편을 이해하고 싶다면, 그쪽에서 신성시하는 것을 따라가 보면 된다. 그러려면 첫걸음으로 여섯 가지 도덕성 기반을 떠올려보고, 그중 해당 논쟁에서 가장 중시되고 있는 기반 한두 개를 찾아낸다. 더불어 여러분이 진정 마음을 열고 싶다면 머리가 아닌 가슴을 먼저 열어야 한다. ‘상대편’의 누구와 한 번이라도 우정 어린 만남을 갖고 나면, 어느덧 상대편의 말에 귀 기울이기가 훨씬 쉬워졌음을 알 수 있게 될 테고, 그러면 심지어 논쟁거리를 전혀 새로운 차원에서 바라보는 수도 있다.
551
사람들은 무엇을 자기 이데올로기로 삼을 때 아무것이나 고르지는 않으며, 자기 주변에 있는 사상에 물들어 이데올로기를 갖는 것도 아니다. … 모종의 유전자 조합으로 … 만들어져 있다.
글을 마치며 = 555
557
세계에서 존재하는 도덕적 다양성,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는 철학자 이사야 벌린이 그 답을 찾기 위해 평생 동안 씨음해온 문제이다. 벌린은 도덕적 상대주의를 단호히 거부하는 입장이다.
558
그 대신 벌린은 다원주의에 대한 지지를 표하는데,
“인간적인 가치들, 그러니까 내가 인간 본연의 외관과 성격을 유지한 채 추구할 수 있는 가치는 그 수가 한정되어 있다. … 그리고 이러한 다원주의의 중요한 특징은 바로, 어떤 이가 그러한 가치 중 하나를 추구할 때 나는 그 가치를 따르지 않는다 해도 왜 그 사람이 그 가치를 따르는지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그가 처한 상황에서라면 나 역시 그 가치를 따르게 될 것임을 인정할 수 있다. 바로 여기서부터 인간적 이해의 가능성이 싹튼다.”
560
이 책에서는 사람들이 왜 정치와 종교 때문에 서로 이편저편으로 나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려고 했다. 그 답은 마니교에서 이야기하는 것과는 다릴, 어떤 사람은 선하고 어떤 사람은 악해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의 마음이 집단적 바름을 추구하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 책의 답이었다. 우리 인간은 지극히 직관적인 생물체로서, 우리의 전략적 추론 능력도 사실은 직감에 따라 움직인다. 그러다 보니 나와 다른 매트릭스의 사람들을 만나면, 더구나 그런 이들의 도덕 매트릭스는 우리의 것과는 다른 식으로 배열된 도덕성 기반에 의지하고 있는 때가 많기 때문에, 그들과 연결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그러나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러니만큼 이다음에 옆자리에 나와 다른 매트릭스의 사람이 앉게 된다면, 그때는 한번 연결을 시도해보자. 하지만 그 사람의 매트릭스로 곧장 뛰어들려고 해서는 안 된다. 또 몇 가지 공통점이 발견되거나 어떤 식으로든 약간의 신뢰가 생기기 전까지는 도덕성의 문제를 꺼내 들어서도 안 된다. 그러다가 시의적절하게 도덕성 관련된 이슈를 무사히 꺼냈다 싶으면, 그때는 다른 것보다 먼저 그 사람의 입장을 얼마간 추어주고 그에 대한 진정한 관심을 표한다.
우리는 어차피 한동안은 이 땅에 다 같이 발붙이고 살아가야 한다. 그러니 서로 잘 지낼 수 있게 함께 노력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