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에서 매일 걸어다닌다는 것이 상당히 고역인 것을 느꼈을 때가 이때가 아닌가 싶다. 5일 여행 일정 중 3일차 되는 날인 12월 14일 수요일 아침, 하마타면 숙소에서 늦잠을 더 잘 뻔했다. 나는 겨우 몸을 일으켜 세웠고 계획한 장소로 출발했다.
지하철도 이제는 점차 익숙해져서, 출근길의 시민들을 찬찬히 관찰도 해보기도 하면서 여유롭게 혼고산초메역에 하차를 했다. 혼고산초메 역 주변에는 도쿄 대학이 있다. 그렇다. 나는 도쿄 대학에 한 번 가보고 싶었다. 이유는 매우 단순한데, 극단적(?) 학벌주의라고 자랑할 만한 고등학교 3학년의 나는 명문 대학교들을 알아보다가 어쩌다 도쿄 대학도 알아보게 되었는데, 그 은행잎 두 장이 교차된 듯한 로고가 상당히 이쁘고, 교정 사진을 보니 나중에 일본 여행을 한다면 한 번은 가봐야지 싶어서 그렇게 이번 여행 계획에 넣은 것이다. 그리고 캠퍼스 같은 건물은 건축 상 특정 도시의 상징이 될 법도 한 주요 시설이기도 하고, 그 즉슨 시민들에게도 열려 있는, 고등 교육 기관으로서, 권위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도쿄 대학으로 가는 거리 앞 교차로에서 나는 늘어져 있는 은행나무들을 보고 길을 헤매지 않고 목적지로 바로 갈 수 있었다.


사람도 거의 없었다. 인파는 굳이 말하면 캠퍼스 투어를 온 학생들밖에 안보였다. 정말 조용했고, 은행나무들이 드리우는 그늘은 시원한 바람과 함께 편안함을 주었다. 움직이는 것은 몇몇의 행인, 그리고 나였다. 잠시 여기서 쉬고 갈 겸 벤치에 앉아 교정을 감상하고 있었는데, 워낙 조용하다 보니, 언제부턴가 내 주위에서 같이 앉아 있던 참새들이 보였다.


날씨가 좋으니 나의 체력도 좋아지는 것 같다. 그렇게 걷다가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아보니 운동장에서는 미식축구 부원들이 럭비 연습을 하고 있었다. 캠퍼스 느낌이 물씬 났다. 저 에너지, 나도 한 에너지 하는데 같이 하고 싶었다. 물론 럭비 자체를 모르지만, 아, 그래도 럭비 공을 던져본 적은 있다. 진짜 스핀을 걸어서 멀리까지 던지기는 힘들던데.. 저 선수같은 학생들은 잘만 던진다.
그렇게 도쿄대학에서 나왔다. 학생식당을 이용해보고 싶었으나, 오전 11시부터 여는 관계로,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그러나 밥을 달라는 내 배는 버티질 못해서, 혼고산초메 역 주변에 있는 이름도 모를 오니기리 집으로 갔다.

이름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아. 정말 맛있다. 배고파서 그런 것도 있지만, 배부를 때 먹어도 정말 맛있는 것 같다. 고슬고슬하게 입안에서 참깨와 섞여지는 따스한 밥알들, 그리고 적당히 짭조름한 주먹밥. 저 사진 밑에 야채가 보이는가? 깻잎 같은 잎이 있는데, 오니기리를 다 먹을 즈음에 먹게 되는데, 쌉쌀하면서 풀 향의 풍미가 제대로 나는 탓에 정말 맛있게 마무리를 했다. 여기 가게 이름은 <본고 오니기리>. 리뷰를 보니 맛집이더라. 이 오니기리가 워낙 맛있는 탓에, 다른 오니기리에 된장국 같은 것도 먹어봤다. 다른 주먹밥 이름은 우엉 오니기리.

내 입맛은 아니었다.^^..
그렇게 든든한 아침 겸 점심 배를 채우고, 다음 행선지인 아키하바라로 갔다. 아키하바라하고 여기 혼고산초메역하고는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으나, 지하철로 환승을 찾아보니 많이 불편했다. 우에노 공원을 갈까 아키하바라를 갈까 고민을 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우에노 공원은 다음 일본 여행에 필수 목적지로 설정을 해 놓았다. 그렇게 나는 아키하바라로 갔다.


애니메이션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가볼, 그리고 나도 당연히 아는 곳이다. 그리고 내가 오늘 여기 온 김에 할 것은, DVD를 구매하는 것이다. <너의 이름은>으로도 유명한 신카이 마코도 감독의 이전 작, <초속 5센티미터>를 감명 깊게 보았기 때문에, 매장에 들려서, 한 번 쇼핑을 하고자 했다. 중고DVD 매장이라고 알아본 <만다라케>라는 곳에서, 겨우 번역기로 물어본 결과, 있다고 한다! 특별 감독판 가격을 확인해 보니 1300엔. 나에게는 무언가 ‘여기서’ 구매를 직접 했다는 그 기념품 같은 성격으로 애초에 접근을 했던 지라, 온라인 매장하고의 가격 비교는 하지 않고 구매를 했다.

<초속 5센티미터>에 대해서 내가 짧게 평을 하자면, 디지털 변환의 과도기에 있었던 우리 세대까지, 추억으로 흐릿해진 그 단면으로만 공감할 수 있는, 그래서 더 아름답게 여운이 남는 그런 오래된 첫사랑 이야기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목적은 저것하고 비슷하다. 도쿄에 첫사랑에 빠진 것일까. 그러나 물리적, 제도적 거리로 인해 나는 멀어질 수 밖에 없다. 물론 이런 기록과 사진과 영상으로 생생히 남지만 말이다.

이상 그만 감성에 젖지 말고. 나는 붕어빵(?)도 먹고(200엔), 뽑기도 해 보았다(600엔을 날렸다..).
그리고 다음 목적지인 센소지로 향했다. 일본에 대한 궁금증이 없던 어린 나에게도 센소지의 이미지는 생생히 기억난다. 한 번은 들려야 할 곳 같았다. 역시 가보니까, 다 나 같은 사람들인지 관광객들로 정말 붐볐다.

센소지를 바라보는 긴 축 양 옆으로 노점상들이 줄지어 있고, 그 통로로 사람들이 몰린다. 구름은 높고 하늘은 넓다. 전혀 답답하지 않았다. 다양한 외국어가 들리는 이 복도 같은 공간 속에서, 나도 관광객임을 재차 느끼며 즐겼다.

당고도 궁금해서 먹어봤다. 달짝지근한 간장 소스같은 것과 쫄깃한 떡의 조화가 내 입에 물을 필요로 하게 만든다. 아 저게 200엔이다. 명동 길거리를 생각해보면 합리적인 가격(?)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스카이트리도 볼 수 있었다. 낮은 가게들과는 대비되는 높은 전파탑. 이는 원근감으로 조화롭게 어우러지고 있었다. 다음 도쿄 여행 일정은 우에노 공원-스카이 트리로 해야겠다.

운세도 뽑아보았다. 결과는 지극히 평범한 운세였다. 평범 그 자체였다. 평범한 게 제일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며 소원도 빌어보고, 이제는 센소지에서 떠날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긴자로 향했다. 저녁은 거기서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 전에 숙소를 들려 좀 쉬었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들린 곳은 <타카하시 시오라멘 긴자점>이었고, 시오라멘을 주문했다. 지금 느끼는 거지만, 나는 라멘이 입맛에 그리 맞는 건 같지 않다. 짤 수 밖에 없는 현지 음식. 그러나 그 부분을 이해한다면, 맛있었다. 저 입에서 부드럽게 혀와 녹듯이 갈라지는 닭가슴살과 따스한 시오라멘 국물의 조화, 풍미는 당연히 좋았다. 저녁을 먹고 나오니 이미 해는 지고 있었다. 긴자의 밤거리는 다시 시작되었다. 나는 시부야 야경을 보러 시부야로 향했다.

확실히 긴자의 밀도보다 시부야의 밀도가 장난 없었다. 끊임없이 몰아치는 전철, 승객, 차량, 택시, 버스, 행인. 그리고 그들을 압축 시켜놓은 거대한 건물들의 숲. 나는 시부야 스크램블을 찾다가 어쩌다가 도큐 플라자로 들어갔다. 그리고 두 엘레베이터를 발견했는데,

안내판에 SHIBU NIWA : OBSERVATION DECK 이라고 적혀 있어서(정확히는 기억이 안 난다.) 문득 저 전망대는 어떨지 궁금해졌다.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엘레베이터에 탑승을 했다. 엘레베이터에서 내리자, 앞에 보이는 사람들은 다 CE LA VI 웨이팅 손님들인듯 했고, 내가 갈 곳은 경찰관 분 한 분 밖에 없었다. 나름 오픈 테라스에다가, 고층이라서 그런지, 경찰관이 나에게 오더니 모자는 날아갈 수 있으니 가방 안에 넣어두라고 해서 넣고 경치를 보러 덱으로 향했는데,
…
시부야 스크램블과 건물들의 스카이라인으로 지평선을 가린 광활한 도심이 나를 반겼다.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런 좋은 뷰에 나는 한 번 더 놀랐고, 시부야 스카이를 안 가서 아쉬울 뻔한 과거의 나는 잊혀졌다.

스크램블 교차로는 끊임없이 사람들과 함께했다. 저 멀리 보이는, 내일 갈 신주쿠의 스카이라인이 나를 더욱 설레게 함과 동시에, 온갖 도시의 소리들이 울려퍼지며 중첩되는 그 웅웅거림이 시원한 바람과 함께 나의 오감을 만족 시켜주었다. 횡단보도는 도시가 차량 중심이 아닌, 행인 중심이라고 알려주는 중요한 이벤트가 일어나는 곳이다. 목적지가 있는 사람들이 꼭 지나가야만 하는, 교차의 장소이고, 밀집의 장소이다. 그러나 이 스크램블 교차로는 이차원적 지표에서 벗어나, 삼차원적 장소를 형성했다. 그 건너는 사람들은 목적지가 스크램블 교차로 그 자체인 것이다. 그 무작위로 제 갈 길을 가는 행인들은 이 횡단보도 위에서 만큼은 복잡한 질서를 이루어 아름다움을 선사해준다.
그렇게 한참을 보고 나니, 여기에 사람은 한 명도 없고 -그 경찰관 분 빼고 말이다.- 바람도 상상 이상으로 불어와서, 추워서 이만 가보려고 했다. 그런데 그분이 말을 걸었다. 그래서 짧은 대화를 했는데, 그분도 춥다고 하시길래 정말 고생하신다고 하고 시부니와에서 내려왔다.

그렇게 시부야의 밤은 빛으로 가득했다.
나는 그 빛을 보고 오모테산도 일루미네이션도 보러 갔다. 시부야와 오모테산도는 긴자선으로 한 정거장인 만큼 가깝다. 오모테산도역에서 내리니, 여기도 정말 연말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일루미네이션이란 나무에 LED조명들로 환하게 빛을 수놓는 것이다. 그 빛은 명품 플래그쉽 매장들의 화려한 외관, 내부 인테리어에 반사되고 혼합되어 그 거리 자체가 실내에 온 듯 하였다.

시부야는 간판들이 자신들을 알린다면, 여기는 나무들이 주인공이다. 오모테산도의 나무들은 상징물이 되었다. 낮에도, 저녁에도 그들은 오모테산도를 형성한다.


그렇게 도쿄의 밤은 어느덧 10시를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몰려오는 피로를 버틴 채 숙소로 향했다. 그리고 나의 배는 나에게 야식을 먹어야 한다고 해서, <스키야>로 향했다. 아, 오는 길에는 복숭아음료도 먹었다. 사진 순서가 뒤죽박죽인데, 왼쪽 위부터 먹은 순서는 1342이다.




계란이 느끼할 줄 알았던 규동. 예상외로 맛있었다. 달콤하고 고소한 듯한, 입에서 밥알들을 날계란의 미끈거림이 코팅되어 부드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숙소로 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려 야키토리 3종, 하이볼, 생수를 사서 들어갔다. 숙소에서 먹은 야키토리는 괜찮았다. 그리고 생수는 놀란 것이, 요거트맛 생수였다. 처음 먹어 보는 매우 부드럽고 상긋한 생수에 먹는 재미가 있었다.
이 글을 마칠 때가 되니 피로가 몰아친다. 그 때를 기억하면 저 때 잠자리에 들 때 다리가 저려서 잠을 잘 못 잤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더 걸어다녔을 것이다. 그렇게 오늘 수요일 일정도 끝이 났다.

수정) 5번 후에 센소지를 들렸다. 그리고 긴자로 가서 라멘을 먹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