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정치사상의 파노라마 : 민주주의의 이상과 정치 이념 / 테렌스 볼, 리처드 대거, 대니얼 I. 오닐 지음 ; 정승현, 강정인, 김수자, 문지영, 오향미, 홍태영 옮김
Ball, Terence[1944-] Dagger, Richard O’Neill, Daniel I.[1967-] 정승현[1955-] 강정인[1954-] 김수자[1965-] 문지영[1963-] 오향미[1965-] 홍태영[1968-]
판사항개정판
발행사항파주 : 아카넷, 2019
형태사항613 p. : 삽화, 초상 ; 23 cm
주기사항원저자명: Terence Ball, Richard Dagger, Daniel I. O’Neill
원표제: Political ideologies and the democratic ideal (9th ed.)
참고문헌과 색인수록
2017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17S1A3A2065772)
영어 원작을 한국어로 번역
표준번호/부호ISBN 9788957336236 93300: ₩20000
분류기호한국십진분류법-> 340.22 듀이십진분류법-> 321.8
주제명정치 사상[政治思想]
<목차>
감사의 글 = 5
9판 서문 = 7
제1장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들 = 17
‘이데올로기’의 작업 정의 = 23
인간본성과 자유 = 32
이데올로기와 혁명 = 38
민족주의와 무정부주의 = 41
결론 = 46
제2장 민주주의의 이상 = 49
민주주의의 기원들 = 51
민주주의와 공화국 = 58
민주주의의 회귀 = 70
이상으로서의 민주주의 = 82
결론 = 89
제3장 자유주의 = 95
자유주의, 인간본성, 그리고 자유 = 97
역사적 배경 = 100
자유주의와 혁명 = 109
자유주의와 자본주의 = 129
19세기의 자유주의 = 135
양분된 자유주의 = 143
20세기의 자유주의 = 151
오늘날의 자유주의 = 160
결론 = 167
제4장 보수주의 = 179
불완전의 정치 = 181
에드먼드 버크의 보수주의 = 184
19세기의 보수주의 = 197
20세기의 보수주의 = 208
현대 보수주의 : 분열된 가족 = 216
결론 = 226
제5장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 토머스 모어에서 마르크스까지 = 237
인간본성과 자유 = 240
사회주의자 : 선구자들 = 242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 251
제6장 마르크스 이후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 283
마르크스 이후의 마르크스주의 = 284
비(非)마르크스 계열 사회주의 = 321
오늘날의 사회주의 = 330
결론 = 338
제7장 파시즘 = 349
파시즘 : 배경 = 352
이탈리아 파시즘 = 364
독일 파시즘 : 나치즘 = 373
다른 지역의 파시즘 = 385
오늘날의 파시즘 = 388
결론 = 396
제8장 해방 이데올로기와 정체성의 정치 = 403
해방 이데올로기들의 공통점 = 404
흑인해방운동 = 407
여성해방(페미니즘) = 417
동성애자 해방운동 = 424
원주민 해방운동 = 428
해방신학 = 435
동물해방운동 = 439
결론 = 446
제9장 ‘녹색’ 정치 : 이데올로기로서의 생태학 = 463
다른 이데올로기에 대한 녹색주의의 비판 = 465
생태학적 윤리를 향하여 = 469
해결되지 않은 차이들 = 480
결론 = 490
제10장 급진 이슬람주의 = 499
이슬람 : 간략한 역사 = 501
급진 이슬람주의 = 507
인간본성과 자유 = 514
결론 = 522
급진 이슬람주의와 민주주의의 이상 = 526
제11장 후기 – 이데올로기의 미래 = 541
정치적 이데올로기 : 지속적인 영향 = 543
이데올로기와 공공정책 = 549
이데올로기, 환경 그리고 지구화 = 551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민주적 이상 = 559
이데올로기의 종언? = 563
용어 해설 = 573
9판 역자 후기 = 593
5판 역자 후기 = 597
찾아보기 = 607
민주주의의 회귀 = 70
기독교의 새로운 프로테스탄트 형태들은 개인과 하나님 간의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관계를 강조하였다. 1517년 종교개혁을 출범시켰던 독일의 사제 루터에 따르면, 진실로 중요한 것은 교회의 교리에 대한 엄격한 순응이 아니라 신앙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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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민주주의자
메사추세츠로 갔던 프로테스탄트 성직자 윌리엄스.
그는 종교적 지도권과 시민적 지도권을 명확하게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당시 교회와 정부가 거의 동일하였던 식민지에서는 급진적인 행보였다. 식민지 권력은 1636년 윌리엄스를 식민지에서 추방하였고, 그 때문에 그와 그의 추종자들은 남쪽으로 이동하여 인디언들에게서 땅을 매입하고 로드아일랜드에 식민지를 건설하였다. 로드아일랜드는 종교의 자유를 옹호하는 것으로 유명해졌지만, 1641년 주 헌법에 따라 식민지 정부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다는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식민지 정부는 민주주의적 혹은 인민의 정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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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 건너 영국에서는 수평파라고 불리는 집단이 1640년대 내전 기간에 유사한 생각을 발전시켰다. 수평파들은 정치적 권위는 인민들의 동의를 받아야만 설립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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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수평파들의 노력과 로드아일랜드의 사례는 비록 점진적이지만 민주주의를 향한 태도에서 대단히 중요한 전환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민주공화국으로서 미국
그 당시에도, 1787년 미국헌법의 초안을 작성하던 시기에도 민주주의에 대한 우호적인 언급은 거의 없었다. 일반적으로 ‘민주주의’는 여전히 계급 지배 아니면 중우정치를 의미하고 있었다. 오래전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보았듯 그것은 인민정부의 나쁜 형태였다. 좋은 형태는 공화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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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초기에 미국에서 선호된 정부 형태는 민주주의적이 아니라 공화주의적이었다. 미국 헌법은 이 사실을 증언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민주주의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기 때문이다.
첫 번째 표식은 정부 권력의 분할로서, 각 부분이 다른 두 부분과 ‘견제와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위치에 있도록 세 부분, 즉 입법, 행정, 사법으로 분할한다. 행정부는 한 사람에 의한 통치라는 군주제적 요소, 사법부는 소수에 의한 통치라는 귀족적 요소, 그리고 입법부는 다수의 통치라는 인민적 요소에 따랐다.
원래의 계획에 따르면, 하원은 인민의 욕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민주주의적 기관이었다. 따라서 하원의원은 유권자와 밀접하게 접촉하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수시로 재선거가 필요하다는 믿음에 따라 2년의 임기를 갖는다. 다른 한편 상원의원은 정확히 6년의 임기를 복무하도록 하였는데, 그것은 그들이 유권자의 욕구보다는 의원들 자신의 판단을 따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 선거 방식은 수정헌법 제17조(1913)가 상원의원의 직접선거를 확립할 때까지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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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에 나타난 공화주의의 또 다른 특징은 ‘권리장전’, 즉 수정헌법 1조에서 10조에 나타나 있다. 예컨대 수정헌법 제1조는 의회가 인민에게서 언론과 집회의 자유 …
그리고 수정헌법 제2조에서는 시민 민병대를 강조하는 공화주의적 전통이 나타난다. 곧 “잘 정비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국가의 안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며, 무기를 보유하고 휴대할 인민의 권리는 침해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헌법은 인민적 요소를 상원, 법원 그리고 대통령이 견제하고 통제하는 정부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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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8년 잭슨의 당선과 더불어 미국은 ‘보통사람의 시대’로 알려진 시대에 들어선다. 여러 주 정부들은 투표권에서 대부분의 재산 규정을 철폐하고 거의 모든 성인 백인 남성 -여성, 노예 그리고 아메리카 인디언은 제외-에게까지 선거권을 확장하였다.
토크빌의 민주주의론
토크빌은 1830년대 초 미국을 여행한 프랑스의 귀족이다. 프랑스로 돌아온 후 그는 두 권으로 된 ‘미국 민주주의’를 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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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빌은 민주주의를 낡은 생활방식을 가진 지위, 신분, 귀족적 특권을 전복시키는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보았다.
토크빌은 또한 민주주의가 평등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중우정 혹은 전제정-혹은 둘 모두-을 낳을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였다.
사회에 기여할 만큼 독창적이거나 뛰어난 무언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평등에 대한 사회적 압력 때문에 침묵하는 사회가 나타날 것이다. 토크빌은 이러한 순응에 대한 압력을 ‘다수의 폭정’이라고 불렀다.
민주주의는 또한 폭군정의 오래된 형태인 전제정의 위험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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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토크빌은 민주주의에서 긍정적인 가능성을 보았는데, 그것은 민주주의적 이상에 공화주의를 결합하는 것이었다.
민주주의의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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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더욱 더 대중적이 되었다. 이러한 인기는 18세기 후반과 19세기의 산업혁명 동안 수많은 사회, 경제적 발전에 힘입었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도시의 성장, 공교육의 확대, 그리고 전신, 철도와 같은 통신과 교통의 발달이다.
19세기 영국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논쟁은 두 가지 문제, 즉 자기보호와 자기계발로 집약되었다. -> 철학적 급진주의자 : 공리주의자 등장
81
공리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 <여성의 예속>
자기보호의 기회는 여성에게까지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
밀은 또한 정치적 참여는 자기계발을 위한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상으로서의 민주주의 = 82
82
민주주의는 현재 너무 대중적이어서 대부분의 정치 이데올로기들은 민주주의를 지지한다고 자처한다.
이러한 기현상에 대한 최상의 설명은 상이한 이데올로기들이 사실상 민주주의를 추구하고 증진시키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상이한 방식으로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83
민주주의는 일정한 형태를 취하는 특정한 종류의 정부라기보다는 하나의 이상이다.
84
공화주의의 인기는 민주주의가 수용되면서 서서히 희미해졌다. 공화주의가 살아남은 곳은 대부분 민주주의적 공화주의라는 혼성의 형태에서이다.
그러나 정확히 자유와 평등이 무엇인지 혹은 그것들이 어떠한 형태를 띠는지 그리고 어떻게 서로 관련되는지는 해석의 문제로 남아 있다.
이 지점에서 정치 이데올로기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치 이데올로기들은 민주주의를 수용하든 거부하든, 모두 민주주의적 이상과 타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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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모든 정치 이데올로기는 민주주의적 이상에 대한 자기 고유의 해석을 갖고 있다. 각 이데올로기는 자신의 독특한 비전에 따라 민주주의적 이상을 해석하고 규정한다.
민주주의의 세 가지 개념
자유민주주의
용어가 제시하듯이, 자유민주주의는 다음 장에서 검토할 이데올로기인 자유주의로부터 출현하였다. 일반적으로 자유주의와 함께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강조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민주주의는 인민 다수에 의한 통치이지만, 다수가 개인이나 소수의 기본적인 시민의 자유를 빼앗으려 해서는 안 되는 한에서만 그렇다.
사회민주주의
서구 민주주의, 특히 유럽에서 자유주의의 개념에 대한 중요한 도전이 사회민주주의이다. 이 견해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와 연관된다.
‘사회민주주의’적 혹은 ‘사회주의적’ 비전에서
민주주의의 핵심은 평등, 특히 사회와 정부에서 평등한 권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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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민주주의자들은 우리가 좀 더 평등한 방식으로 권력-‘경제적’권력을 포함하여-을 분배하지 않는다면, 사실상 이러한 평등한 영향력을 갖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이유에서 사회민주주의의 강령은 평등을 증진시키기 위한 부의 재분배, 선거 운동과 선거의 공영제, 천연자원과 주요 산업의 사적인 통제보다는 공적인 통제, 작업장의 노동자 통제를 전형적으로 요구한다.
인민민주주의
공산주의 국가에서 지배적인 민주주의 비전은 인민민주주의라는 형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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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자들은 우선 마르크스가 노동계급의 이익을 위한 통치로 묘사한 독재 형태인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독재를 필요로 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국가 자체가 ‘소멸’하는 미래 공산주의의 계급 없는 사회를 위해 인민들을 준비시킨다. 그 과도기에 인민민주주의는 다수 노동계급을 위해 공산당이 대신 통치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마오쩌둥이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인민민주전정’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였다.
더 읽을거리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제3장 자유주의 = 95
95
리버럴이라는 말과 법적인 리버티라는 말은 모두 ‘자유로운’이라는 뜻을 갖는 라틴어 liber에서 파생되었다.
96
무엇이 한 사회를 ‘free’하게 만드는가? 무엇이 ‘freedom’이며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가장 잘 증진시킬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이 자유주의자들 사이에 토론의 기반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자유주의와 다른 이데올로기들 간에 논쟁의 기반을 제공하면서 오늘날까지 300년 이상 자유주의자들을 사로잡아왔다.
자유주의, 인간본성, 그리고 자유 = 97
97
자유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자기 이익 추구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동기라는 데 동의한다.
대부분의 자유주의자들은 인간을 타인의 복지보다는 자신의 선(good)에 더 관심을 갖는 존재로 생각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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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경우 자유주의자들은 경쟁을 인간 조건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의 자유주의자들은 개인이야말로 자신의 이익이 무엇인지에 대한 최선의 판단자이고, 그래서 그와 같은 타인의 자유를 방해하기로 선택하지 않는다면 각자가 자신이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 자유를 지녀야 한다고 믿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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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들은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성공을 거둘 수 있다거나 그래야 한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은 ‘성공할 수 있는 평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역사적 배경 = 100
100
자유주의적 기원은 유럽 중세 사회의 두 가지 특징적인 현상, 즉 종교적 순응과 귀속적 신분에 대한 반발로 거슬러 올라가 추적해볼 수 있다.
종교적 순응
자유주의자들은 종교의 자유, 그리고 국가와 교회의 분리를 요청했다.
귀속적 신분
귀속적 신분에 기반을 둔 사회에서 개인의 사회적 입지는 출생에 얽매이거나 귀착되며, 개인이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다.
이것은 성취된 지위에 기초한 사회와 대조를 이루는데, …
104
귀속적 신분과 종교적 순응에 바탕을 두고 있는 이런 사회에 맞서 자유주의는 최초의 독특한 정치 이데올로기로 출현했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은 많은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변화들이 중세 질서를 교란시킬 때까지는 확실한 모양을 갖추지 못했다. 그 변화의 상당수는 르네상스로 알려진 14-15세기 창의성의 폭발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었다. 그러나 1347년에서 1351년 사이에 유럽을 초토화한 유행성 전염병, 곧 흑사병 또한 중세 사회의 해체와 관련이 있었다.
그러나 중세 질서의 쇠퇴와 자유주의의 등장에 기여했던 모든 역사적 발전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이었다.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
106
… 그리고 교회가 사제, 주교, 교황의 권위를 강조한 것 대신에 루터는 “모든 신앙의 사제됨”을 선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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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양심에 강조점을 둔 “모든 신자의 사제됨”이라는 루터의 선언은 다양한 성경 해석과 굉장히 많은 프로테스탄트 종파를 몰고 올 수문을 연 셈이 되었다. 루터는 이러한 발전을 예견하지도 환영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그는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의도하지도 않았다.
109
여기서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가들은 본래 의도와는 무관하게 자유주의를 향한 길을 준비하는 데 기여하였다.
개인의 양심에서 개인의 자유로 향하는 이동은 그 당시에는 여전히 급진적인 행보였다. 그러나 그것이 초기 자유주의자들이 취한 행보였다. 따라서 자유주의는 종교적 순응과 귀속적 신분의 억압에서 개인을 자유롭게 하려는 시도로서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이데올로기들이 그렇게 시작되듯, 자유주의는 또한 사회의 근본적인 변환을 불러일으키는 시도로서 시작되었다. 요컨대 자유주의는 혁명적인 것이었다.
자유주의와 혁명 = 109
111
영국 내전에서 펜과 잉크는 총탄과 검만큼이나 대단한 역할을 했다.
이제 우리는 자유주의의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 최초의 중요한 정치철학 저작인 홉스의 <리바이어던>에 주목해보아야 한다.
홉스는 전쟁을 피해 도망가 있던 프랑스에서 <리바이어던>을 집필했고, 찰스 1세의 처형으로 전쟁이 끝난 지 2년 후인 1651년에 그것을 출판했다.
홉스에 따르면, 개인은 권력을 쥔 자가 자신을 보호해주는 동안에는 그 권력자가 누구든지 간에 복종해야 한다. 보호와 안정의 제공은 애초에 정부가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다.
112
그는 … 자연상태를 제시 … 자연권이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인간의 본성이다.
“나는 오직 죽음에 이르러서야 멈추는, 힘을 추구하는, 힘에 대한 영속적이고 중단 없는 욕망을 모든 인류의 일반적인 성향으로 꼽는다.” 권력을 향한 이 “중단 없는 욕망”은 개인들을 상호 갈등 속으로 몰아넣으며 자연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되게 하는데, 거기서는 삶이 “고독하고, 빈곤하며, 불결하고, 야만적이며, 순간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홉스의 자연상태는 전쟁상태가 되었다.
따라서 자연상태에서 공포에 가득 찬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개인은 정치적 권위를 확립하기 위해 사회계약을 맺는다.
117
홉스의 자연상태와 달리 로크의 자연상태는 전쟁 상태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권리를 기꺼이 존중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불편한’ 상태다.
118
미국 혁명
물론 미국 혁명도 프랑스 혁명도 로크 저작들의 직접적인 결과는 아니었다. 두 경우 모두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종교적 요소들이 철학적, 정치적 쟁점들과 결합되며 혁명으로 이어졌다.
119
식민지인들은 부분적으로는 1776년에 집필, <상식> … 페인은 그 논변을 생생하고 기억하기 좋도록 표현했다. 페인은 사회란 언제나 신의 은총이지만, 정부는 제아무리 최선의 정부라고 하더라도 ‘필요악’이라고 말했다.
120
페인은 미국 식민지들이 대영제국과 연대를 끊고 그들 스스로 독립된 자치국가를 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만일 그것이 진정으로 자치적이라면 새 국가는 공화국이어야 했다. 페인에게 이 말은 새로운 국가에는 왕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상식>이 출판된 지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1776년 7월 2일 [미] 대륙 의회는 “이들 식민지 연합은 자유롭고 독립적인 국가들이며, 또 마땅히 그래야 한다” 라고 선언했다. 두 달 후 의회는 독립선언서를 채택했는데, 그것은 제퍼슨이 초안을 작성한 문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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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독립선언서는 로크와 페인 그리고 다른 초기 자유주의자들이 제시한 여러 논리를 압축해서 채용한 셈이다. 특히 이러한 논변의 두 가지 특징이 주목을 받을 만하다. 첫째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 …”는 주장이다.
122
평등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그들은 부지불식간에 민주주의의 성장과 참정권의 확장에 기여했던 것이다.
독립선언서의 주목할 만한 두 번째 특징은 정부에 대한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옹호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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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중국 헌법은 이러한 결합을 통해 이루어졌다. 합중국 헌법은 강한 중앙집권적 정부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여러가지 방법으로 정부의 권한을 제어한다. 이 점에서 정부의 틀은 자유주의적일 뿐 아니라 공화주의적이다. 그러나 합중국 헌법은 시민적 덕성을 함양하기 위한 어떤 직접적인 조항도 마련하고 있지 않다.
이 점에서 시민적 덕성에 대한 관심의 결여는 특히 종교와 성격을 함양하는 등의 사적인 범주에 속하는 생활 영역에 대해 정부가 간섭하지 못하도록 하는 미국 연방헌법의 자유주의적 요소를 시사한다.
1787년에 초고가 작성되고 1788년에 비준된 미합중국 헌법은 1789년부터 시행되었다. 2년 후 권리장전이 추가되었다. 1787년, 1788년, 1789년은 미합중국에 중요한 해이지만, 다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로 정치 이념의 발전에 중요한 해였다. 바로 이때 프랑스에서 혁명이 시작되었으며, 그것은 적어도 미합중국의 틀을 형성한 사건만큼이나 중요한 세계적 사안임이 입증될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