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정치사상의 파노라마 : 민주주의의 이상과 정치 이념 / 테렌스 볼, 리처드 대거, 대니얼 I. 오닐 지음 ; 정승현, 강정인, 김수자, 문지영, 오향미, 홍태영 옮김
Ball, Terence[1944-] Dagger, Richard O’Neill, Daniel I.[1967-] 정승현[1955-] 강정인[1954-] 김수자[1965-] 문지영[1963-] 오향미[1965-] 홍태영[1968-]
판사항개정판
발행사항파주 : 아카넷, 2019
형태사항613 p. : 삽화, 초상 ; 23 cm
주기사항원저자명: Terence Ball, Richard Dagger, Daniel I. O’Neill
원표제: Political ideologies and the democratic ideal (9th ed.)
참고문헌과 색인수록
2017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17S1A3A2065772)
영어 원작을 한국어로 번역
표준번호/부호ISBN 9788957336236 93300: ₩20000
분류기호한국십진분류법-> 340.22 듀이십진분류법-> 321.8
주제명정치 사상[政治思想]
<목차>
감사의 글 = 5
9판 서문 = 7
제1장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들 = 17
‘이데올로기’의 작업 정의 = 23
인간본성과 자유 = 32
이데올로기와 혁명 = 38
민족주의와 무정부주의 = 41
결론 = 46
제2장 민주주의의 이상 = 49
민주주의의 기원들 = 51
민주주의와 공화국 = 58
민주주의의 회귀 = 70
이상으로서의 민주주의 = 82
결론 = 89
제3장 자유주의 = 95
자유주의, 인간본성, 그리고 자유 = 97
역사적 배경 = 100
자유주의와 혁명 = 109
자유주의와 자본주의 = 129
19세기의 자유주의 = 135
양분된 자유주의 = 143
20세기의 자유주의 = 151
오늘날의 자유주의 = 160
결론 = 167
제4장 보수주의 = 179
불완전의 정치 = 181
에드먼드 버크의 보수주의 = 184
19세기의 보수주의 = 197
20세기의 보수주의 = 208
현대 보수주의 : 분열된 가족 = 216
결론 = 226
제5장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 토머스 모어에서 마르크스까지 = 237
인간본성과 자유 = 240
사회주의자 : 선구자들 = 242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 251
제6장 마르크스 이후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 283
마르크스 이후의 마르크스주의 = 284
비(非)마르크스 계열 사회주의 = 321
오늘날의 사회주의 = 330
결론 = 338
제7장 파시즘 = 349
파시즘 : 배경 = 352
이탈리아 파시즘 = 364
독일 파시즘 : 나치즘 = 373
다른 지역의 파시즘 = 385
오늘날의 파시즘 = 388
결론 = 396
제8장 해방 이데올로기와 정체성의 정치 = 403
해방 이데올로기들의 공통점 = 404
흑인해방운동 = 407
여성해방(페미니즘) = 417
동성애자 해방운동 = 424
원주민 해방운동 = 428
해방신학 = 435
동물해방운동 = 439
결론 = 446
제9장 ‘녹색’ 정치 : 이데올로기로서의 생태학 = 463
다른 이데올로기에 대한 녹색주의의 비판 = 465
생태학적 윤리를 향하여 = 469
해결되지 않은 차이들 = 480
결론 = 490
제10장 급진 이슬람주의 = 499
이슬람 : 간략한 역사 = 501
급진 이슬람주의 = 507
인간본성과 자유 = 514
결론 = 522
급진 이슬람주의와 민주주의의 이상 = 526
제11장 후기 – 이데올로기의 미래 = 541
정치적 이데올로기 : 지속적인 영향 = 543
이데올로기와 공공정책 = 549
이데올로기, 환경 그리고 지구화 = 551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민주적 이상 = 559
이데올로기의 종언? = 563
용어 해설 = 573
9판 역자 후기 = 593
5판 역자 후기 = 597
찾아보기 = 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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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들 = 17
18
신나치와 급진 이슬람 테러리즘이라는 예가 보여주는 것처럼 이데올로기는 인종, 민족소속, 정부의 역할과 기능, 남녀관계, 자연 환경에 대한 인간의 책임, 그리고 그 외 많은 다른 문제들에 관한 인간들의 사고와 행동을 형성하는 일련의 이념 체계이다.
이사야 벌린
“다른 무엇보다도 다음 두 요소가 금세기 인류 역사의 형태를 지었다. 하나는 자연과학과 기술의 발달이다. … 다른 하나는 의심의 여지없이 실질적으로 전 인류의 삶을 변화시켜온 거대한 이데올로기 폭풍이다.”
19
다양한 비전에 근거하여 행동하는 무장한 예언자들, 곧 레닌, 스탈린, 히틀러, 무솔리니, 마오쩌둥 및 다른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열등하거나 불필요하다고 여기거나 둘 모두에 해당한다고 여긴 수백만 구의 시체로 뒤덮인 20세기의 풍경을 남겼다. 러시아 혁명의 지도자 트로츠키가 간명하게 말했듯이, “조용한 삶을 원하는 사람이 20세기에 태어난 것은 잘못된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21세기가 이전 세기보다 정치적으로 더 복잡해질 것 같아 보인다. 20세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 세 가지 정치 이데올로기, 곧 자유주의, 공산주의 그리고 파시즘의 충돌이 세계 정치를 지배하였다.
많은 다른 대립 세력들 간에 전개되는 문화 전쟁을 두루 겪고 있는 것이 그러한 세계의 모습이다.
21
신나치 스킨헤드의 사고를 이해하고 싶다면 … 그 역사를 봐야 한다. … 모든 이데올로기와 정치 운동은 과거 사상가들의 이념 속에 기원을 두고 있다.
케인즈,
“자신은 어떤 지적인 영향력으로부터도 벗어나 있다고 믿는 살아 있는 사람들은 대개 몇몇 죽은 경제학자들의 노예이다. …”
22
철학자 산타야나가 지적했듯이, 과거를 잊어버린 사람은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도록 되어 있다.
‘이데올로기‘의 작업 정의 = 23
23
이데올로기는 사회적 변화를 규정하고 유도한다.
정치 이데올로기는 역동적이다. 이데올로기들은 항상 가만히 있지 않는다.
24
‘ology’로 끝나는 다른 낱말들은 과학적 연구 분야를 지칭한다.
‘이데올로기’는 이념에 대한 과학적 연구여야 하는 것이 논리적일 것 같다. 그리고 그 단어가 18세기 프랑스에서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이데올로기는 본래 그런 뜻이었다.
그러나 지난 두 세기에 걸쳐 그 말의 의미는 상당히 변했다.
이데올로기는 그것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네가지 기능을 수행한다. ‘설명적, 평가적, 지향적, 강령적 기능.
설명
이데올로기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조건들이 특히 위기의 시기에 왜 그렇게 나타나는지를 설명한다.
평가
이데올로기의 두 번째 기능은 사회적 조건들을 평가하는 기준을 제공하는 것이다.
지향
이데올로기는 그것의 담지자에게 지향과 정체성의 의미, 즉 사람들이 속한 집단(인종, 민족, 성 등)의 정체성과 사람들이 세계의 다른 부분과 관계하는 방식을 제공한다.
정치적 강령
결과적으로 이데올로기는 그들의 추종자에게 무엇을 할지와 어떻게 할지를 말해준다.
이것이 바로 이데올로기가 하려고 하는 일이다.
28
정치 이데올로기들은 네 기능을 수행하면서 사고, 곧 이념과 신념을 행위와 연결시키려 한다.
만약 이 네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치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이데올로기에 속하지 않는 것 중의 하나는 과학이론이다.
29
과학이론은 본성상 경험적이다. 과학이론들은 세계의 양상을 기술하는 데 관심을 갖지,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처방을 내리지는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학이론이 행위에 대한 함의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이데올로기라는 뜻은 아니다. 과학자는 과학자로서 행위에 대한 함의를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지만, 이데올로그들은 분명히 그런 작업을 한다.
자주 이데올로기로 잘못 간주되는 다른 이즘과 정치 이데올로기를 구별할 것이다. 대부분의 탁월한 이데올로기들은 이즘이라는 접미사로 끝나기 때문에, 일부 사라들은 모든 이즘을 이데올로기라고 결론짓는다. 이것은 명백한 실수이다.
테러리즘은 몇몇 이데올로그들이 자신의 명분을 확장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하나의 전략일 뿐 그 자체가 이데올로기는 아니다.
… 민족주의와 무정부주의 역시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30
이 기능적 정의는 민주주의와 정치 이데올로기를 구별하는 데 도움을 준다. 사회주의, 보수주의 등의 다른 이데올로기와 달리 민주주의는 어떤 것이 왜 그렇게 존재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으며, 우리는 단지 느슨한 의미에서만 민주주의가 평가적, 지향적 혹은 강령적 기능을 갖는다고 말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거의 모든 이데올로기는 스스로를 민주주의적이라고 내세우는데, …
민주주의 혹은 인민에 의한 통치가 하나의 이데올로기라기보다는 하나의 이상(ideal)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우리의 기능적 정의가 그렇게 도움을 주지 않는 다른 경우가 있다. 정치이론 혹은 정치철학과 이데올로기를 구별하는 작업이 그것들 중의 하나이다. 이 경우 정치이론들 역시 전형적으로 동일한 네 가지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기능적 정의가 도움을 주지 않는다. 주요한 차이는 그것들이 보다 높고, 추상적이며, 좀 더 원칙적이고 아마도 보다 객관적인 수준에서 그 기능들을 수행한다는 점이다.
31
정치철학의 다른 위대한 저작들은 아주 추상적이고 복잡한 경향이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을 행동으로 옮기도록 자극하는 그런 종류의 저작은 아니다. 정치 이데올로기는 자신의 명분을 높이기 위해 과학이론을 끌어들이기도 하고, 위대한 정치철학자의 작업에 의지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고와 행위를 연결하려는 의지가 너무 앞서 있기 때문에 정치 이데올로기는 일반 대중이 정치철학자의 이념에 접근하기 쉽도록 그것을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다.
종교의 경우도 동일한 문제가 생긴다.
인간본성과 자유 = 32
정치 이데올로기는 설명적, 평가적, 지향적, 강령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인간의 잠재성 그리고 인간존재가 성취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좀 더 심도 있는 개념을 이끌어내야 한다. 이것은 모든 이데올로기에 두 가지의 양상, 즉 (1) 인간본성에 대한 기본적인 신념 체계와 (2) 자유에 대한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본성
33
인간본성에 대한 개념들은 정치 이데올로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각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네 가지 기능을 수행하는가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자유
34
모든 이데올로기는 저마다 자유를 방어하고 확장한다고 내세운다.
자유가 본질적으로 논쟁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즉 무엇을 자유롭다고 볼 것인지 그 자체가 논쟁거리이다.
35
우리는 각각의 이데올로기들의 자유 개념을 맥칼럼(MacCallum)이 제안한 삼각모델에 적용하면서 설명할 것이다. 맥칼럼에 따르면, 자유에 대한 모든 개념은 세 가지 양태를 포함한다. 곧 (A)행위자, (B)행위자를 봉쇄하는 장벽 혹은 장애물, (C)행위자가 목표하는 목적. 따라서 자유에 대한 모든 언명은 다음과 같은 형태를 취한다.
A는
C를 성취하기 위해 or C이기 위해 or C가 되기 위해
B로부터 자유롭다(or 자유롭지 못하다)
자유는 어떠한 장애물로부터 자유롭고 어떠한 목표를 성취하는 데서도 자유로운 행위자를 포함하는 관계를 가리킨다.
37
행위자
행위자는 개인, 계급, 집단, 민족, 성, 인종 심지어 종일 수 있다.
목표
행위자는 목표를 갖는다. 행위자에 따라 목표는 저마다 다르다.
장애물
이 장애물들은 다양한 형태, 즉 물질적 혹은 물리적 조건, 범죄,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이념들, 이데올로기, 제도, 실천, 전통, 신념의 형태를 띤다.
이데올로기와 혁명 = 38
38
정치적 용법에서 본래 혁명이라는 말은 이전 조건으로의 회귀를 의미하였다. … 그러나 18세기 미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 이후, 혁명은 좀 더 급진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미국 혁명은 영국인으로서의 식민지인들의 권리를 회복하려는 시도로서 시작되었지만, 새로운 정부 체계를 갖춘 새로운 나라의 창조로 끝이 났다. 그런데 이 새로운 체계가 형성되고 있는 동안에 프랑스 혁명은 낡은 방식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새로운 정치적, 사회적 질서를 도입하려는 의도로서 시작했다.
39
그 파도는 너무나 컸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여파를 느낄 수 있다. 그중에 한 가지 표식은 정치적 입장들이 오늘날에도 일상적으로 좌파, 우파 혹은 중도파로 묘사된다는 사실이다. 이 단어들은 혁명 시기 의회의 자리 배치에서 유래했다.
근본적radical이라는 말이 라틴어에서 뿌리를 의미하는 radix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40
이 점에서 정치 이데올로기들은 근대 세계의 생산물이다.
41
모든 이데올로기가 하나의 확신, 곧 인간의 삶과 사회가 극적으로 변화할 수 있고 변화해야 한다는 확신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민족주의와 무정부주의 = 41
41
두 개의 중요한 정치 세력이 이 서론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으로 남아 있다. 민족주의와 무정부주의라는 이 세력들은 때때로 그 이름 때문에 이데올로기로 간주된다. 우리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민족주의와 무정부주의는 너무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고 다른 많은 이데올로기들과 얽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들을 이데올로기로 다루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민족주의
민족주의적 감정이 오랜 역사를 통하여 존재해왔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1800년대 초 나폴레옹 전쟁 이후 특히 강력하게 대두되었다.
43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대가 대부분의 유럽을 정복하였을 때 그들은 정복당한 많은 인민들의 원한, 때로는 염원을 자극하였다.
그러나 민족주의의 감정적 힘과 정치적 세력에도 불구하고 민족과 민족주의 이념은 많은 어려움을 낳았다. 그중 하나는 정확히 민족이 무엇인가를 결정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많은 인민들이 민족적 감성의 견인력을 느낄 뿐만 아니라 민족소속이라는 측면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지향점을 찾는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44
소련과 유고슬라비아를 지탱했던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했을 때, 두 나라는 민족소속에 따라 국가를 분리하였다. 그 결과, 이전 유고슬라비아의 보스니아 지역에서와 같이 어떤 민족 집단도 독립 국가를 세울 만큼 충분히 강력하지 못했던 이 지역에서는 과거의 이웃들과 비참한 전쟁이 일어났다.
무정부주의
44
대중적인 오해와는 반대로, 무정부는 카오스나 혼돈을 의미하지 않으며, 무정부주의자 역시 카오스나 혼돈을 선호하지 않는다.
따라서 무정부주의자는 국가를 철폐하고, 자유롭게 동의하고 협력하는 개인들 사이의 자발적인 협동체로 국가의 강제력을 대체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무정부주의자들이 볼 때 정부는 본성상 비도덕적이고 악이다.
45
간단히 말해 무정부주의자들 사이의 불일치와 차이점들이 그들끼리의 유일한 동의사항을 압도한다. 무정부주의를 추종하는 한 연구자가 말한 것처럼, “무정부주의는 사실상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여러 이데올로기가 교차하는 지점이다.”
결론 = 46
46
민주주의는 그 자체가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상이한 이데올로기들이 철저하게 거부하거나, 서로 다른 방식으로 추구하는 하나의 이상이다.
더 읽을거리
한나 아렌트의 혁명론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
제2장 민주주의의 이상 = 49
49
현대 정치에서 가장 놀랄 만한 양상 중의 하나는 민주주의가 보편적으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설명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위선 혹은 속임수로 ‘민주주의’라는 말을 사용한다고 보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아주 인기가 있어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이데올로기가 무엇이든 그것을 민주주의와 연결하려 한다는 설명이다.
50
두 번째 설명은 상이한 이데올로기의 추종자들이 민주주의를 성취하기 위한 방법을 놓고 저마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은 민주주의가 좋은 것이라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비록 위의 두 가지 설명이 유익하기는 하지만, 우리는 세 번째 설명이 문제를 좀 더 깊이 통찰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 설명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저마다 다른 의미로 파악한다는 것이다.
51
따라서 자유와 마찬가지로 민주주의도 본질적으로 논쟁적인 개념이다. 민주주의적 이상은 근대 세계의 이데올로기적 투쟁에 깊이 관련되어 있다.
민주주의의 기원들 = 51
‘민주주의’라는 단어와, 정치적 생활 형태의 민주주의 모두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 그 말은 ‘인민’ 혹은 ‘보통 사람’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명사 demos와 ‘통치하다’를 의미하는 동사 kratein의 결합에서 비롯되었다. 그리스인들에게는 demokratia는 특히 ‘보통 사람들, 즉 교육받지 못하고 똑똑하지 못하며 가난한 사람들에 의한 통치 혹은 정부’를 의미했다.
그러나 다수가 하나의 계급, 곧 demos를 주로 구성했다는 사실을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처럼 민주주의는 통치하는 데 가장 자격을 잘 갖춘 사람들인 aristoi(‘가장 능력 있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에 의한 통치, 즉 귀족정과 대비되는 정치 형태였다.
53
인민에 대한 아테네인들의 신임을 보여주는 더 직접적인 사례는 선거가 아니라 추첨을 통해 무작위로 선택된 시민들로 많은 공직을 채웠다는 사실이다.
아테네 민주주의에 더욱 중요한 것은 아테네인들이 이해한 시민권의 또 다른 측면이었다.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성인이면서 자유로운 아테네 남성이어야 했다. 여성, 외국인 거주자 그리고 (인구의 대부분을 구성하였던) 노예는 모두 배제되었다. 실제로 아테네 거주자 10명 중 1명만이 시민이었다.
54
민주주의에 우호적이었던 사람들은 다른 비판에 직면해왔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위험스러울 정도로 불안정한 정부 형태라는 불평이었다. 이러한 불만을 제기한 최초의 인물은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친구였던 플라톤이었다.
55
인민에 의한 통치인 민주주의에서 참주정까지는 단지 몇 걸음밖에 되지 않는다.
민주주의에 대항하는 이러한 논의는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를 포함한 많은 정치사상가에게 친숙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체제 분류에서 특히 두 가지 특징을 주목할 만하다. 우선 그 역시 플라톤을 따라 민주주의를 나쁜 것 혹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했다는 점이다.
56
아리스토텔레스의 분류에서 두 번째로 주목할 만한 특징은 다수에 의한 좋은 통치 형태로서 혼합정(polity)을 포함시킨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혼합정은 민주주의와 다른데, 소수에 의한 통치 요소와 다수에 의한 통치 요소를 혼합시켰기 때문이다. 이 혼합정체 혹은 혼합정부의 장점은 각 집단이 다른 집단을 감시하므로 -부유한 소수는 다수를, 다수는 부유한 소수를-어떠한 계급도 공동선을 희생시키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수 없다는 데 있다.
57
드물기는 하지만 운 좋게도 다음과 같은 환경, 즉 대부분의 사람이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으면서 “적당하고 충분한 재산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인민 다수가 신중한 방식으로 통치할 것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이것은 ‘중간계급’이 다수가 되면, 그들이 질투심 많은 가난한 자와 거만한 부자의 무절제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폴리스의 선을 자신의 선으로 보면서 중간적인 다수는 도시국가에서 중용, 평화 그리고 안정을 유지하려 할 것이다.
58
민주주의는 나쁘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는 민주주의가 참주정이나 과두정보다는 낫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민주주의와 공화국 = 58
인민정부는 고대 세계에서 민주주의보다는 공화국의 형태로 존속하였다. 공화국은 공적인 것 혹은 공적인 일을 의미하는 라틴어 res publica에서 나온 단어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 역사가 폴리비우스의 손을 거치며 더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공화국과 혼합정
폴리비우스는 자신의 <역사>에서, 로마가 성공한 핵심은 혼합정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폴리비우스는 선대 이론가들보다 훨씬 명확하게 그 논리를 발전시켰다. … 그것은 한 사람, 소수 혹은 다수 중 어느 누구도 권력 전체를 장악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대신에 공화국은 각각의 통치 형태에서 장점을 끌어내고 결점을 피하는 방식으로 세 개의 체제를 혼합하거나 균형을 맞추었다. 다른 말로 하면, 1인, 소수, 보통 인민 중 어느 누구에게 모든 권력을 주기보다 로마공화국은 셋 사이에 권력을 분할하였다.
60
(공화국)각각의 집단은 다른 집단을 감시하였고,
…
민주주의는 악-평면의 이기적인 통치-을 증대시키는 반면에 공화국은 덕성을 증진시킨다는 것이다. 공화주의적 덕성이란 개인이 자신의 개인적 혹은 계급적 이익 위에 전체 공동체의 선을 두도록 하는 능력을 말한다. 적극적인 시민만이 이러한 덕성을 달성하고 실행할 수 있다고 공화주의자들은 주장한다.
거의 1500여 년이 지나 공화주의적 이상은 르네상스 시기 북부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에서 완벽하게 재생되었다. 그로부터 또 400년이나 지나서야 민주주의적 이상이 재생되었다.
기독교와 민주주의
물론 그 중간 시기에도 의미 있는 발전이 많았으며, 아마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독교의 성장이었다. 몇 가지 점에서 기독교는 민주주의의 자연스러운 동맹자처럼 보였는데, 왜냐하면 기독교는 남녀 성차, 민족소속, 지위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신의 자녀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초기 기독교인들이 모든 사람은 정부에서 동일한 목소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이것은 초기 기독교인들이 반민주주의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반정치적이었기 때문이다.
62
우리가 중세로 알고 있는 시기인 대략 500년에서 1400년까지 계속 그렇게 존재하였다. 제국이 해체되면서 교회는 서서히 두 개의 날개로 분리된다. 하나는 콘스탄티노플에서 통치하는 비잔틴황제가 이끌던 동방정교였고, 다른 하나는 나중에 교황으로 불리는 로마 주교가 이끌던 가톨릭 교회였다.
63
부족에 대한 충성이나 과거 제국의 몰락한 군사적 지역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형태의 지역통치들이 발전하였고, 이것이 중세의 일반적인 지배 형태가 되었다.
이러한 지역적 유대와 충성심은 또한 봉건주의의 발생을 고무시켰다. 바이킹과 마자르족의 약탈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필요성에서 생긴 이 사회 조직의 형태는 ‘신분’, 즉 사회 속에서 그 사람의 위치를 매우 강조하였다.
르네상스와 공화주의
64
중세 후기, 특히 13세기의 몇 가지 발전이 르네상스로 가는 길을 준비하였다. 그중 하나는 서구문명과 동양이 접촉을 재개한 것이었다. 접촉은 부분적으로 중동에 있는 기독교의 신성한 땅을 ‘이교도’인 이슬람교도로부터 회복하고자 했던 십자군을 통하여,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700년대 초기 이슬람교도가 정복했던 이슬람 스페인과 접촉하면서 발생하였다.
정치적 분야에서 가장 의미 있었던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발전시킨 것이었다. 그 책은 ‘이교도’ 철학자의 이념이 기독교와 양립할 수 있는지 결정하기 위해 교회가 학자들의 위원회를 소집하고 토론한 후 1260년에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르네상스를 준비하기 위한 두 번째 발전은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도시국가의 부흥이었다. 많은 이탈리아 도시들 … ‘새로운’ 정부 형태를 정당화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들은 그 정당화의 논리를 고대의 공화주의 이론에서 발견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폴리비우스 저작 그리고 고대 로마와 스파르타 공화국의 사례들에 근거하면서 르네상스 공화주의자들은 시민적 삶의 부흥을 주장하였고 그 속에서 공공 정신에 충만한 시민들은 그들의 독립적인 도시나 나라의 통치에 활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 공화주의적 담론에서 핵심적인 개념은 ‘자유’, ‘덕성’, ‘부패’ 였다. 그리고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저작만큼 이 개념들을 명쾌하고 효과적으로 전개한 곳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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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에게 공화국은 어떤 단일 계급이 통치하지 않는 혼합정이다.
따라서 마키아벨리는 자유로운 정부의 가장 큰 적은 자기만족에 빠진 이기적인 시민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러한 시민들은 공동체를 보호하기보다는 돈과 사치를 추구한다. 공적인 업무에 대한 무관심이 만연하면서 나타나는 부, 사치 그리고 편안함에 대한 사랑을 마키아벨리는 ‘부패’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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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마키아벨리는 … 법에 의해 통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서양 공화주의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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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1600년대 혼란은 공화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다. 1642년 찰스 1세와 영국 의회는 각각 주권자 혹은 최고의 권위라고 주장하면서 내전을 일으켰다. 전쟁은 크롬웰이 지도하는 의회 세력의 승리로 끝이 났고, 찰스 1세는 처형되었다. 공화국을 세우려는 시도가 이어졌지만 비록 호칭은 달랐어도 크롬웰이 군주의 권력을 장악하면서 실패하였다. 1658년 크롬웰이 죽은 뒤 공화국을 성립시키려는 또 다른 시도 역시 실패하였다.
이 격동의 시기에 많은 영국인들이 공적인 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였다. 그중 한 명이 해링턴으로, <오세아나>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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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형성된 해링턴과 다른 공화주의 사상가들의 생각은 1660년 왕정복고로 무산되었고, 의회는 처형된 왕의 아들인 찰스 1세에게 왕관을 주었다. 그러나 공화주의 이념이 영국에서 희미해졌다면, 그것은 대서양을 건너 북미의 영국 식민지에서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민주주의의 회귀 = 70
